생각해 보면 10대 때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이 조금 후회된다. 막 엇나가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것이 아니라, 학교-학원-집의 싸이클에서 벗어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게 후회된다는 얘기다. 지금은 오히려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어 안달인데, 왜 진작 이런 마음이 10대 때부터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땐 이상하게, 학교와 학원과 집을 주로 오가는 것이 빡빡했지만 일상으로 적응이 되어서인지 편했다.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도 학교 클럽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굳이 마다하고 집으로 향하는 것을 택했다. 바깥에서 무언가 다른 경험을 한다는 것이 마냥 귀찮기만 했던 것 같다. 유난히 경직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오히려 편안하다고 안주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교육은 때로 학교 밖에서 더 확실히 이루어지기도 한다. 모르는 사실에 대해 꼭 아는 사람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다. 몰랐던 현실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때론 그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교육이 되는 법이다. 알기만 하는 것과 느껴 본 적도 있는 것은 천지차이니까. '교육'이라는 뭔가 있어보이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이것이 특정 상황,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의 긴 과정에서 못 밟아본 길을 밟아보고 그 감촉을 깨닫는 것, 그런 것이라면 모두가 다 '교육'일테니까. <언 애듀케이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결국 이런 거다.
1961년의 런던. 16세 소녀 제니(캐리 멀리건)는 출중한 성적과 바른 태도로 학교와 가정에서 옥스포드 진학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지만 그 자신은 지루한 일상이 지겹다. 프랑스를 동경해 샹송도 듣고 따라 부르고 여행도 꿈꿔 보지만 아버지 잭(알프레드 몰리나)은 '남는 거 없다'는 이유로 매번 잔소리를 한다. 그러던 그녀에게 어느날 한 남자가 다가온다. 데이빗(피터 사스가드)이라는 그 남자는 비오는 날 하교길의 제니에게 '첼로가 걱정된다'면서 그녀를 차에 태워준다. 나이는 한참 많지만 신사적인 매력에 제니는 점점 끌리게 된다. 그런데 이뿐이 아니었다. 데이빗은 자신의 친구들인 대니(도미닉 쿠퍼), 헬렌(로자먼드 파이크)과 함께 제니를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외식과 음악과 미술의 공간들로 초대한다. 틀에 박힌 지난 일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험들에 제니는 매혹되고, 또래 애들과는 차원이 다른 데이빗의 감각과 그 고지식한 아버지까지 넘어오게 만드는 친화력 덕분에 점점 더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제니가 속한 세계는 이런 사랑에 대해 아직 그리 관대하지 않다. 공부와 결혼 둘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 제니는 점점 이 사랑에 미래가 있는 것일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영화 속에서도 <제인 에어>를 통해 암시되듯 10대 소녀와 성인 남자의 사랑이야기는 지극히 통속적이고 익숙한 소재이지만, 100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언 애듀케이션>은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아마도 배우들의 연기, 이야기의 배경, 시나리오 모두에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중심에 캐리 멀리건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다섯 자매 중 막내 키티 베넷 역으로 출연한 것 정도 밖에 알려진 게 없던 이 배우는 <언 애듀케이션>을 통해 단숨에 올해 가장 중요한 젊은 여배우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는 그 근거가 빼곡히 담겨 있다. 그녀가 연기하는 제니는 사실 이런 류의 영화라면 누구나 상상 가능한,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하고 솔직한 10대 소녀의 이미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아함과 시원시원함과 섬세함을 겸비한 그녀의 연기는 제니라는 캐릭터를 순식간에 이러한 예측 가능 범위에서 벗어나게 한다. 표정에서부터 당당함이 묻어나지만 절대 멀리 나가지 않으며, 소녀와 여인의 경계에 선 시점에서 풋풋함과 농염함을 아찔하게 오간다. 쟁쟁한 영국 배우들이 의외로 많이 나오는 영화를 홀로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전혀 달리지 않는 에너지를 자랑한다. 제니라는 캐릭터의 생명력은 캐리 멀리건의 재능에서부터 상당 부분 비롯됐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캐리 멀리건을 중심으로 굵직한 영국 배우들(단, 피터 사스가드는 미국 배우)이 펼치는 연기 또한 완벽한 짜임새를 자랑한다. 매력적인 성인남 데이빗 역의 피터 사스가드는 '키다리 아저씨' 이미지의 안과 밖을 교묘히 넘나드는, 도발과 젠틀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로맨틱한 분위기와 동시에 긴장감 또한 훌륭히 형성한다. 제니의 아버지 잭 역의 알프레드 몰리나는 전형적인 고리타분형 아버지일 수 있었던 잭의 캐릭터에 능숙하게 코믹함과 인간미를 불어넣으며 무게감을 더한다. 데이빗의 절친인 대니와 헬렌 역의 도미닉 쿠퍼와 로자먼드 파이크는 시종일관 잃지 않는 활기로 영화를 더욱 발랄하게 한다. 여기에 내색하진 않지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는 스텁스 선생 역의 올리비아 윌리엄스의 절제된 연기와 매너 있는 듯 하지만 은근 무서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교장 역의 엠마 톰슨까지,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영국 배우들의 담백하면서도 힘있는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충만하다.
빤하게 도발적인 로맨스나 감상적인 성장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 영화를 구한 또 다른 요인은 의외로 탄력 넘치는 시나리오에 있다. 이 시나리오를 만들어낸 이는 다름 아닌 닉 혼비다. <어바웃 어 보이>, <하이 피델리티>, <피버 피치> 등을 통해 남자들의 통상적인 애어른적 심리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예리하게 꿰뚫어 본 그는 이번에는 '여성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줄거리만 본다면 뭔가 도발적인 이미지이지만, 닉 혼비의 재치 넘치는 각본 덕분에 영화는 생각보다 부드럽고 감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엄한 시대 속에서 엄한 체제 아래 살아가던 소녀의 일탈에 대한 이야기를 인상쓰고 풀어가려 하기보다 10대의 싱숭생숭한 그 마음에 어느 정도 가깝게 다가가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제니 주변의 일상에 수학 공식과 도형에 덧씌워 풀어놓은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앞으로의 비교적 밝은 태도가 엿보인다.
세태를 꽤 솔직하게 풀어낼 줄 아는 닉 혼비의 표현력과 여성 감독 론 쉐르픽의 틀에 박히지 않은 감성에 힘입어 <언 애듀케이션>은 기대보다 더욱 다채로운 색깔을 지니게 되었다. 일단 영화는 예상보다 화려하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영국의 상황을 그린다고 해서 흔히 상상하는 마냥 점잖고 고상한 고전적 영국 영화를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영화는 당대를 풍미했던 음악을 수시로 틀어놓으면서(대표적으로 샹송) 요동치는 제니의 감성을 대변하고, 깔끔함과 대담함을 넘나드는 중상류층의 패션을 꽤 사실적으로 전시하면서 제니를 둘러싼 바깥 세상의 화려함을 대변한다. 더불어 영국 중상류층이 향유하던 사교계의 면면들, 미술품 경매장이나 경마장, 대형 레스토랑 등 당대 영국 곳곳의 문화적 풍경들을 섬세하게 풀어놓으면서 제니 뿐 아니라 관객들까지 매혹시킨다. 이처럼 영화는 정서를 대변하기에 앞서 그런 정서가 발현될 만한 환경을 구축해 관객들에게 사실적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도발이나 일탈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도 나름대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한다.
<언 애듀케이션>은 겉만 보면 10대 소녀와 성인 남자의 대담한 사랑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영화는 결국 교육의 틀에 갇혀 그것이 정말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던 어느 소녀가 그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나름의 방식대로 교육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데이빗과의 사랑은 넓게 보면 그러한 교육의 일부분일 뿐이다.(물론 제니는 당시에 그것이 교육이 될 줄은 몰랐을테지만) 교육이 아닌 줄 알았던 것이 진정 교육이 되고, 교육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 실은 진정한 교육이 아닌 게 되는 아이러니한 사회가 펼쳐진다. 결국 제니는 세상이 교육이라고 대놓고 규정짓는 틀에서 벗어남으로써 진짜 교육을 경험하게 된다.
1960년대 영국이라고 하면 그래도 당시 우리나라보다는 상식이 많이 진보되어 있으려니 했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진보한 것도 아니었나 보다. 영화에 따르면, 당시 여성들에게는 미래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였다. 공부 아니면 결혼. 공부를 계속하면 결혼을 못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공부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일과 사랑을 다 이룬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회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때가 그렇다고 독신주의가 지금처럼 많이 확산된 시기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동적으로 배움이라는 활동은 나의 가치를 키우는 작업이 아닌, 결혼을 위한 스펙을 키우는 작업으로 전락한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다녀봤자, 최종적으로 그것은 1급 신랑감을 얻기 위한 명함일 뿐이다. 결국 '교육'이라고 명명된 학습 활동은 여성들에게 진취적 이상을 실현하는 창조적인 일이 아닌, 스펙을 키우기 위한 반복적 노동에 지나지 않게 된다. 만족스런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제니 또한 이에 대한 염증은 당연히 갖고 있었고, 그래서 적극적으로 일탈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일탈의 과정에서 제니는 학교에만 있었다면 엄두도 못냈을 다양한 경험들을 한다. 오로지 즐거움을 목적으로 연주회에 갈 수 있게 됐고(제니의 아버지는 학교 오케스트라 연주는 교내 활동이니까 시키면서 연주회는 남는 것이 없다고 데리고 가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만 듣던 미술 작품의 진본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고, 어른들만의 엔터테인먼트 - 음주가무와 경마 등을 맘껏 누릴 수 있었고, 마음 속으로 동경만 하던 프랑스 파리에 직접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제니에게 이 모든 것은 학교에만 열심히 다닐 때에는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지만, 직접 경험을 통해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이성과 감성을 키워냈다. 물론 제니가 이런 화려한 경험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배운 것은 아니다. 데이빗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의 굴곡을 통해, 제니는 책만 읽었을 때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을 깊이를 지닌 사회의 단면, 인생의 순리를 깨닫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교과서를 읽어내려가듯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멀리서 지켜만 봤던 당대 교육의 어이없는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또래 친구들은 책이나 수업을 통해서만 접해오던 것을 그녀는 직접 겪어 보게 되고, 경험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현상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요지는, 우리가 지금 교육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정말 교육인가 하는 의문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지, 물고기를 잡아다 주면서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이건 맛이 이렇고 저렇다고까지 줄줄이 알려주는 걸 정말 교육이라 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바깥 세상의 맛을 어느 정도 보여주면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게 해야지, 바깥 세상과 아예 단절시켜놓고는 교육시켜서 바깥으로 내보낸다면 얼마나 현기증 나겠는가. 영화는 머리로 외우고 기억하는 것보다 때로는 직접 겪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더욱 우월한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 자리에 틀어박혀 앉아서 제공되는 지식들을 수동적으로 집어 먹기보다, 직접 일어나 세상의 안과 밖을 걸어보고 달려도 보면서 찾아 먹을 때, 더 많은 경험 속에서 나만의 주관을 더욱 객관적으로 확립할 수 있게 되고 나의 존재감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니 또한 10년 가까이 되는 수동적 학교 교육보다 몇 개월의 경험을 통해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하듯이 말이다.
<언 애듀케이션>은 '경험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고 해서 일탈을 종용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최소한의 경험도 담보로 하지 못한 채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관계를 그저 '스펙 공급자'와 '스펙 수요자'의 관계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현대 교육의 낡은 단면을 꿰뚫어 본다. 영화는 이런 낡아빠진 모습을 구태의연하게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그 반대편에서 제니가 겪는 한때 찬란했던 경험을 보여주면서 정형화된 교육을 상대적으로 초라해지게 만든다. '이것은 교육'이라고 생색을 내는 순간 교육으로서의 빛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는 사실, 따지고 보면 인생에서 마주치는 온갖 일들이 큰 의미의 교육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언 애듀케이션>은 겉으로는 그저 도발적인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육에 관해 근래 가장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제시하는 영화다. 포스터나 줄거리만 보고서는 이런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