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영화의 매력은 Fantasy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탈피하기 힘든 도시인들에게 청량적인 요소는 점차 비현실적인 곳에서 찾기 때문인가 보다. 의식주와 같은 물질적인 것을 해결하는 곳에서 인생의 낭만과 행복과 같은 정서적인 만족을 겸하여 얻을 수 없는 현대인들은 확실히 불행해 보인다. 이런 아픔을 그나마 위로해주는 것이 비현실적인 Fantasy라면 그 뒷면에 존재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 Fantasy 한가운데 있는 것은 바로 로맨스와 평범하지 않은 사랑이다. 평범하지 않은 사랑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문학은 물론 영화에까지 미치고 있다. 과거보다 다른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오늘도 고심하고 있는 영화제작사들의 고충은 참으로 슬프다. 비현실적이고 동화 같은 작품을 만듦으로써 물질적인 욕구를 해결해야 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 고충은 이루 말하기 힘들 것만 같다. 이런 고민에 따른 영화의 낭만적인 사랑이 진화해서 이젠 인간끼리의 사랑이 아닌 더 이상의 곳까지 다가왔다. 남녀의 사랑이란 방정식을 깨고 등장한 동성간의 사랑은 그래도 현실이란 곳에 발판을 두고 있지만 강원도 동해바다에 위치한 항구도시의 이름을 빌린 영화 ‘주문진’은 과거와는 조금 색다른 Fantasy를 선택한다. 즉 인간과 고스트와의 사랑이 그것이다. 과거 ‘데미 무어’와 지금은 세상에 없는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한 ‘사랑과 영혼’이 있었지만 이전의 연인관계를 바탕을 했다는 점에서 인간과 영혼의 최초의 만남은 아니었다. 도리어 인간으로서의 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인 것이다. 이 점에서 ‘주문진’은 과거의 인연이란 매듭이 전혀 없는 인간과 영혼의 만남이란 점에서 과거와의 단절을 시작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영화다. 아마 가장 환타스틱한 로맨스이리라. 그래서 이 영화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강원도 동해가에 있는 ‘주문진’이란 항구 이름을 제목으로 채택하는 이유는 우리들이 접근하지 못한 한국 내의 이국적인 장소를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 Fantasy를 갖는 로맨스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부여한 것이리라. 그래서 가을의 풍광이 더없이 펼쳐진 영화의 영상은 확실한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강원도의 매력 중 하나를 자그마한 암실에서 보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재미는 기이한 사랑일 것이다. 한국 영화계의 거두인 ‘하명중’ 감독이 새롭게 기지개를 펴며 제작한 이 영화는 과거의 특색이 아닌 새로운 감각으로 한국 영화에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극 진행에서 매끄럽지 못한 이어짐은 영화를 보는 내내 당혹스럽게 했다. 갑작스런 장면 전환 역시 마찬가지의 효과를 보였다. 어떤 이는 Old한 표현력이라고 비평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강원도 사투리의 매력은 이해하지만 사투리가 사랑영화에 적당한지에 대한 의문도 만들고 있었다. 반면 기이한 사랑의 구조는 물론 뒤편에 현실과 환상을 뒤섞은 묘한 종결은 분명 색다른 시도다. 과연 영혼이 있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인간이었는지 모를 명백하게 뒤섞인 이야기에서 이 영화는 보는 이들의 명확한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그런데 이 점이 무척 재미있었다.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서사는 언제나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이란 배경을 강제한다. 그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구별과 헤어짐은 공식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죽은 자가 과연 죽었을까 하는 의심을 자아냄은 물론 사랑한다면 어떤 상황이든 꼭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주제를 만들기 위해 현실적이라는 서사를 뒤집고 진정한 Fantasy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다. 영화에서 사랑을 보기 위해 온 관객들을 향해 그들이 가장 보고 싶은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장치는 과연 영화의 구성이 현실이었을까 하는 의심을 자아내게 하는 묘한 즐거움을 준다. 현실을 뒤틀면서 극장 안에서라도 Fantasy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인 사랑의 결실을 보여주면서 현실의 강인함을 약화시킨 것이다. 영화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 그리고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우린 어쩌면 과도한 현실적 개연성에 집착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고통이 다반사인 이 시점에서, 현실의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줌으로써 검은 암실에서 행복의 마음을 일깨우는 것도 사실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억지스런 구성이겠지만 그 억지 뒤에 숨어있는 감독의 배려는 분명 예의주시할 내용이다. 여기에 황보라의 열연은 인상 깊었다. 로맨스에서 다소 아쉬운 매력을 보여줬지만 사투리의 완벽한 구사와 과도한 만화 캐릭터의 연기력을 보여줌으로써 밋밋할 것만 같았던 영화에 즐거운 활력을 제공했다. 아마도 사랑에서의 약점은 그녀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가 갖고 있었던 매력의 한계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언젠가 황보라는 ‘주문진’에서 보여주지 못한 사랑스런 매력을 쏟아낼 것이다. 그때가 매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