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애쉬:달리가 사랑한 그림 (Little Ashes, 2008)
영화는 살바도르 달리(로버트 패틴슨 분)에게 미학적인 눈을 깨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하비에르 벨트란 분)와 영화감독 루이스 부뉘엘(매튜 맥널티 분)을 만났던 마드리드의 대학에서부터 시작된다. 18세의 달리는 학생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이는 영국식 기숙학교를 본뜬 기숙사로 사범대학을 비롯해 여러 단과대학에 소속된 500여 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그는 긴 머리에 큰 리본과 프릴이 잔뜩 달린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자신을 천재라고 칭했지만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입체파적인 그림이 친구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루이스 부뉘엘은 그를 자신들의 모더니즘 예술가 그룹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달리는 우스꽝스러운 스타일을 모던하게 바꾸고, 그곳에서 당시에도 이미 유명한 시인이었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만나게 된다.
달리와 로르카는 서로의 예술 세계에 큰 매력을 느끼며 예술적 영감을 주고 받기 시작한다. 둘의 우정은 카다케스로의 여행을 계기로 특별해진다. 그곳에서 달리는 시를 쓰고 있는 로르카의 뒷모습을 보며 그림을 그린다. 로르카는 그 그림의 제목을『작은 먼지들 Little Ashes(Cenicitas)』이라고 지었는데, 이는 '사람은 모두 죽음을 향해 가는, 재로 변해가는 것'임을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달리의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선보이며 그 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달리와 로르카는 정신적 교감 뿐만 아니라 육체적 교감도 시도하게 되는데, 달리는 로르카와 관계를 하려고 할 때마다 자신을 비난하는 듯한 환청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결국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장면에 대해 영화는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넘어가는데, 달리의 일대기를 찾아보면서 조금은 이해가 됐다. 달리는 어릴 때부터 엄격한 성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의 영향 때문인지 그는 누군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평생의 반려자였던 갈라와도 단 한번의 잠자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아마 같은 이유 때문에 로르카를 거부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멀어진 두 사람은 8년 후 재회하지만 로르카는 무정부주의를 주장했고, 달리는 파시즘을 옹호했다. 그 길로 스페인으로 돌아간 로르카는 동성애적 성향과 급진적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납치 당해 그라나다에서 처형당한다. 영화는 이 비보를 접한 달리가 검은색 캔버스에 몸을 던지며 울분을 토하다가, 그를 찾는 소리에 검은색 물감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손님을 맞으러 나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이 영화는 달리를 간판에 내걸긴 했지만 로르카의 이야기가 중심이 아닐까 한다. 로르카는 공공연하게 달리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지만, 달리는 로르카와의 사랑을 부인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 3년 전,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집필했던 전기작가 이언 깁슨에게 "색정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이었다. 나는 그런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라며 로르카와의 관계를 털어놓았다.
이 영화는 이 고백에서 영감을 얻어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퀴어 영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영화는 달리와 로르카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고, 달리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예술가, 시인 로르카와 영화감독 부뉘엘의 작품도 두루 맞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다소 지루하고 어려운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로르카의 시가 중간중간 상당 부분 삽입되는데 난해한 시적 언어를 번역된 자막만으로 이해하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시대적 배경이 1920년대라는 점. 잘 차려입은 여자와 남자들의 의상도 그렇고, 흘러나오는 음악이며 분위기도 매력적이다. 그래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1920년대의 풍광은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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