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평이 많았지만 전 이 영화가 좋았습니다. 비록 산산이 부서져버리는 우정에 대한 이야기지만 친구라는 존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잊어버린... 날 잊어버린... 친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으니까요. 제가 바라던 가슴이 따뜻해지는 스토리는 아니었지만 그런 차디찬 모습을 통해 오히려 현실을 더 살펴보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곽경택 감독의 차기작이 무엇일지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김득구라는 인물에 대한 영화를 찍는다고 하더군요. 김...득...구??
김득구에게 내일은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사람에게는 평생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죠? 그에게 첫 번째 기회는 무일푼으로 서울에 상경해서 고생만 하던 그가 김현치 관장을 처음 만나던 날이었고, 두 번째 기회는 지금은 그의 약혼녀인 경미가 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두 번의 기회이자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은 그의 인생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시켜 주면서 고단한 인생에 새로운 빛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일생 최대의 기회를 맞이하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 거울을 보고 있습니다. 전에 관장님은 그러셨죠. 싸워야 할 존재는 다른 복서가 아니라 거울 속에 보이는 자기 자신이라고... 먼 이국땅까지 와서 그가 이겨내야 하는 건 WBA 라이트급 세계챔피언 자리를 두고 싸워야 할 맨시니가 아니라 거울 속의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는 꼭 이겨야만 합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자신의 목표가 코앞에 다가오면 그 목표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최선을 다합니다. 당연히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무리를 하게 되죠.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걸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는 더더욱 그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 시점에서는 이미 이성적인 생각은 포기했다고 봐야 하죠. 그런 맹목적인 돌진이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자멸을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김득구 선수의 이야기를 보며 바로 그런 안타까움을 느꼈죠. 하지만... 제가 그일지라도 좀 이상하다는 변화를 느꼈겠지만 아마 끝까지 달려들었을 겁니다. 여기까지 버텼는데 조금 더 기운을 내서 한 주먹만 더 내민다면 잠깐의 고통이 큰 행복으로 변할 게 이렇게 분명하니까요. 어쩌면 바로 그 순간이 그의 운명을 가르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이건 김득구 선수만이 아니라 이 영화를 만든 곽경택 감독의 처지와도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 나름대로 정말 착실히 준비했고 노력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자료를 모으고 너무 그 대상에 대해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챔피언]에서 느껴지진 감독의 모습이 그랬거든요. 영화를 본 후 피상적인 모습만 남은 채 공허했던 뤽 베송의 [잔다르크]가 생각났습니다. 주인공에 대해 관객이 감정이입을 시킬 여지를 만들어주지 않은 타이트함도 문제였지만 마치 스텝을 잃은 복서처럼 권투영화다운 역동성마저 잃은 [챔피언]의 모습은 마치 잘 싸웠으나 결국 죽어서 링을 내려와야 했던 주인공을 보는 듯한 착잡함 그 자체였습니다. 잘 싸웠다는 말로 위로하기엔 결과가 너무 허무하잖아요.
전 김득구라는 복서를 몰랐는데 어른들께 여쭤보니까 많이 아시더군요. 그 정도로 유명한 선수였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말이죠.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자식이 권투를 한다면 어떻게 할 건지... 그에게 권투란 바로 삶이었으니까요. 대답은 14라운드 벨소리와 함께 일어서던 마지막 모습 속에 들어 있지 않을까요? 전진하기 위해 투쟁적으로 살아간 실존인물은 그 자체가 커다란 에너지입니다. 주관객 층인 젊은 세대에게 그 에너지를 제대로 전해줬다면 눈물나도록 멋진 스포츠 영화를 될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드물게 기대했던 영화였기에 실망이 더 큰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