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클.주영훈.강타.클릭B.베이비복스.NRG.샤크라.하리수.코요테.김장훈.홍경민.신화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인기 가수들이 카메오로 대거 출연했다.
이들을 따라다니는 오빠부대와 누나부대만 극장을 찾아도 흥행은 어느 정도 보장된 듯 보인다.
잠시 짬을 내 출연한 가수들도 홍보를 톡톡히 했다. 꿩먹고 알먹기인 셈이다.
강타는 멋진 고공 발차기를 선보여 함성을 자아냈고, 신화는 코믹 연기로 박수를 받았다.
이수만이 운영하는 SM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은 친절하게 위치까지, 그것도 여러번 대사를 통해 소개된다.
처음부터 가수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꾸미다보니 줄거리는 황당무계 그 자체다.
미 대선에서 마이클 잭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에 위협을 느낀 한국의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계엄령 '긴급조치 19호'를 선포, 전국의 모든 가수를 입건시키고 음악 활동을 금지한다.
이에 가수와 팬클럽이 정부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의 코미디.
극중 '빨간 대가리'로 불리는 김장훈과 홍경민이 주축이 돼 극은 전개된다.
배우 공효진이 '홍경민 팬클럽' 회장역을, 주영훈이 동료를 배신하는 비겁한 가수 역을 맡았다.
'긴급조치 19호'는 영화 전문 배우가 거의 출연하지 않는 이색적인 영화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드는 공효진(민지 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출연진 모두 첫 영화인 셈이다.
그 덕분에 여느 영화에서 맛볼 수 없는 감칠맛과 신선함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투 톱 김장훈 홍경민은 시트콤에서 단련된 순발력 넘치는 연기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가치관이 해학이라는 김장훈의 능청스런 코믹 연기는 단단히 물이 올라있다.
뮤직비디오 등으로 카메라에 익숙한 탓인지 가수들의 연기 또한 편하고 자연스럽다.
테너 김동규가 나훈아식 꺾기 창법으로 뽕짝을 부르는 장면, 무기밀매상 역의 원상연이 넉살을 부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
스타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이 많은 관객들을 겨낭하다보니 대사 역시 스타들의 신상에 관한 잡담이나 농담으로 채워져 있다.
동료를 정부에 고자질한 주영훈에게 친구들은 "그러니까 여자에게 채이지"라고 말한다.
주영훈의 실연내막을 아는 사람들만 웃을 수 있는 대목이다.
MBC「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러브하우스' 코너에 출연, 인기를 끈 건축가 양진석은 극 중에서 "나도 가수"라며 자수하지만 경찰들은 "당신도 가수냐"며 본체만체한다.
양진석은 최근 3집 앨범 '10년의 사랑'을 출반했지만 그의 가수경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그맨 못지않은 입심으로 유명한 그룹 캔은 목숨에 위협을 느끼자 "우린 개그맨이라니까요~"라고 말하고,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쫓기는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는 "저, 군대 면제라니까요"라고 소리친다.
가수 방실이는 김흥국에게 "이제 월드컵도 끝났는데 뭐 먹고 사냐"며 비꼰다.
유명 스타들의 이색 변신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반갑다.
그러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와야 할 가수들의 입에서 한결같이 거친 욕설 대사나 비아냥이 나오는 모습을 보는 게 편치만은 않다.
30만원에서 400만원 선의 헐값만 받고 대거 등장한 인기 가수와 연예인들이 개인기에 열중하느라 이야기가 늘어지는 것은 흠이다.
영화는 긴급조치를 최대한 상업화했다.
마구잡이 욕설과 유치한 농담, 그리고 시끌벅적한 액션이 지배했던 '조폭마누라' 코드에 부모.자식간 대화 단절과 문화에 무지한 정치권에 대한 풍자를 덧붙여 고단위의 폭소를 자아낸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수미일관한 구성이나 영화가 끝난 뒤에 남는 여운을 기대할 필요는 전혀 없다.
순간순간 터져나오는 개그적 웃음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영화는 겉으론 제법 정치 비판적인 발언을 하려는 듯하다.
인기 가수이자 주연 배우인 홍경민과 김장훈의 입을 통해 힘만 앞세우려는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꼰다.
'정치나 노래나 모두 사람을 즐겁고 편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정치권'을 야유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차원이 낮다. 또한 신파적이다. 일반 대중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영화라기보다 장편 TV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TV만 틀면 언제나 볼 수 있는 인기 가수.개그맨 60여명이 단체 출연해 마치 대규모 토크쇼마저 연상케 한다.
1970~80년대 시위 장면을 다큐멘터리로 재연하는 등 사실성 확보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이나 한국사회의 모순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로 보기엔 거리가 한참 멀다.
연예계의 '파워맨' 서세원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것이다.
토크쇼 '서세원쇼'의 디렉터스 컷 같은 분위기다.
아버지와 딸의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도 조금은 도식적이다.
영화의 잔재미에 주목한다면야 이런 문제들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겠지만.
휘발성 웃음으로 무장한 탓에 감동이나 메시지는 찾아 보기 어렵다.
기성세대에 대한 신세대의 반감을 도드라지게 엮어낸 이 영화가 젊은 관객의 호응을 얼마나 받을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조폭마누라'에 이어 다시 한번 대박을 노리는 제작자 서세원은 지나친 자본주의적 노림수에 한국영화를 왜곡시킨다는 지적을 받고는 있지만 시의적절한 기획과 25억원이라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제작했다는 점은 최근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국내 블록버스터들에게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