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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살아남는 법 판타스틱 Mr. 폭스
jimmani 2009-12-29 오전 2:15:24 1070   [0]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겉모습에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면, 그는 어떤 장르를 가든 그 생각을 오롯이 여전하게 표현해 낼 줄 안다. 나치 역사극으로 돌아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지만 결국은 전작들을 뛰어넘을 만한 강펀치를 날린 쿠엔틴 타란티노나, 전작과 다른 완벽한 가상 세계지만 이에 절대 뒤지지 않는 흥분과 감동을 몰고 온 제임스 카메론 감독처럼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자신만의 확실한 세계관을 갖춘 감독이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전에 일단 그의 주관을 믿고 기대해 볼 만하다. 줄곧 R등급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던 웨스 앤더슨 감독이 가족용 애니메이션을 내놓았을 때도 역시 그러하다.
 
그는 언제나 성인용 코미디를 통해서 헐리웃의 낯익은 가족영화들처럼 절대 그렇게 쉽게 합쳐지지 않는 현대 미국 가족의 웃기는 진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왔다. 쟁쟁한 배우들을 시니컬한 유머로 물들이며 성인 관객들을 매혹시켰던 그가 가족용 애니메이션이라니. 거기다가 내용인즉슨 핍박하는 인간들을 상대로 여우 가족들이 벌이는 고군분투라는, 여느 동화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리하여 그가 내놓은 영화 <판타스틱 Mr.폭스>(이하 <미스터 폭스>)는 그런 겉모습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영화다. 이것은 웨스 앤더슨이 돈 좀 더 벌기 위해 타협하여 만들어낸 유들유들한 가족용 오락물이 아닌, 그의 독특한 세계관과 기상천외한 유머감각이 빠짐없이 들어간 온전한 그의 영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가족이 함께 볼 수도 있는.
 
Mr. & Mrs. 폭스(조지 클루니 & 메릴 스트립) 부부는 인간들 집 주변을 신출귀몰하며 한때 이름 제대로 날렸던 도둑 부부다. 그러나 Mrs. 폭스가 아들 애쉬(제이슨 슈워츠먼)를 갖게 되면서 Mr. 폭스는 손을 씻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12년 간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평화로운 가정을 꾸려나가고 어두침침한 땅굴집에서 전망 좋은 나무집으로 이사도 한다. 그러나 지나친 모범시민으로서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온다. 도둑질을 하지 못하는 여우에게 존재 가치가 있는가 하는 그런 것. 결국 Mr. 폭스는 동료인 카일리를 꼬드겨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도둑질을 결심하는데, 그 대상은 바로 악명 높기로 소문난 세 명의 농장주 보기스, 번스, 그리고 빈(마이클 갬본)의 집이다. 이들의 도둑질은 곧 농장주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셋 중 가장 악랄한 빈을 중심으로 폭스네 가족을 몰아내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생존의 위기에 봉착했음을 깨달은 Mr. 폭스는 자신의 가족 - 왜소한 체구에 운동신경도 영 없어 컴플렉스 투성인 아들 애쉬와 반대로 능력을 골고루 갖춘 사촌 크리스토퍼슨(에릭 앤더슨)은 물론, 애증의 변호사 친구 배저(빌 머레이), 동물 세계 최고 인기 스포츠인 '웩뱃'의 코치 스킵(오웬 윌슨) 등 동물 사회 구성원들을 총동원해 탐욕스런 인간들에 맞설 준비를 한다.
 
 
이 영화를 여느 가족용 애니메이션으로 취급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일단 쟁쟁한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빌 머레이, 오웬 윌슨, 제이슨 슈워츠먼, 마이클 갬본 등 대다수의 배우들은 스타성보다 출중한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들이다. 심지어 그들이 선보이는 목소리 연기는 정말 연기파라 할 만하다. 그들은 애니메이션에서의 목소리 연기라면 으레 나올 법한 약간의 과장이나 뚜렷한 발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여느 실사 영화에서 보여주는 연기처럼 낮게 중얼거리길 잘 하고, 무슨 신세 한탄하듯 구시렁거리길 잘 하고, 감정이 폭발하면 앞뒤 재지 않고 마구 소리지르기를 잘 한다. 실제로 이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할 때 목소리만 녹음을 한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장면들을 몸으로 연기해 가면서 녹음을 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웨스 앤더슨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전형적 틀 안에서 타협을 보는 대신 자신이 추구해 온 영화의 색깔을 그저 애니메이션으로 살짝 바꿔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덕분에 영화 속 많은 캐릭터들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틀 안에서 구속받지 않고 다른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에도 흔히 등장하는, 낮은 목소리로 틱틱거리며 불평 불만많은 인간적 캐릭터로서 생동감 있게 거듭난다.
 
이 영화는 많은 돈을 들인 볼거리에도 전혀 욕심내지 않는다. 요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큰 흐름인 3D 컴퓨터 그래픽도 아니고, 그렇다고 2D 셀 애니메이션도 아닌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유달리 만들기 어렵다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또 그 와중에도 영화는 진짜 실물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매끄러움과도 한 뼘 정도 거리를 둔 채 조금씩 끊어지고 투박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카메라의 움직임 또한 전경을 비추는 풀 샷과 인물의 얼굴만 비추는 클로즈업을 수시로 넘나들고, 상황에 따라서는 주인공의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기 위해 좌에서 우로 속도감 있게 가로지르는 촬영도 마다하지 않는다. 유연하기보다는 일부러 툭툭 끊는 듯한 편집을 구사하고, 입체적이기 보다는 전후좌우로만 움직이는 데 충실한 촬영을 보여준다. 시대를 의도적으로 역행하려는 이러한 비주얼은 오히려 이전에 보던 애니메이션들과는 사뭇 다른, 살짝 투박하지만 오히려 사람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는 듯해 인간적인 훈훈함을 풍긴다. 게다가 이런 와중에 빛나는, 만져질 것만 같은 동물들의 사실적인 털 감촉은 최첨단 3D 애니메이션 부럽지 않은 리얼리티까지 획득하기에 이른다.
 
 
<미스터 폭스>를 전형적인 가족용 애니메이션처럼 보이게 매우 짧게 요약한다면 '탐욕스런 인간들을 골탕먹이는 영리한 동물들의 활약' 정도로 얘기할 수 있다. 물론 전체 관람가이니만큼 이 영화를 가족용 애니메이션으로 포장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고, 가족 관객들은 거기에 걸맞게 영리한 동물들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춰 부담없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치는 이 정도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웨스 앤더슨이 기존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현대 가족의 자화상을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타협을 보고 할 것 없이 여전한 모습으로 투영시킨 이 영화는, 아동용 동화같이 단순한 구도로부터 나이를 막론하고 가족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겪기 마련인 씁쓸한 애환을 발견하게 하는 신통한 효과를 발휘한다.
 
감독은 일단 영화 속 캐릭터들을 동물이지만 최대한 인간에 가깝게 표현함으로써 괴리감을 최소화한다. 우스꽝스러운 2등신, 3등신으로 표현된 게 아닌 진짜 인간과 같은 '등신 구조'를 지니고 있는 동물들은 그 자태에서부터 '동물의 탈을 쓴 인간들'의 분위기를 풍긴다. 신문 칼럼니스트, 운동 코치, 변호사, 의사 등 직업 역시 인간 사회와 다를 바 없는 직종들을 그대로 적용시키며, 집 내부 구조 또한 미국의 평범한 가정집을 연상케 하는 형태를 지닌다. 이렇게 외형에서부터 '유치한 아동용 동물 이야기가 아닌, 인간에 대한 우화'임을 선언하는 영화는 캐릭터들의 면면을 통해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씁쓸하지만 유쾌한 비유임을 드러낸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긴 하지만 억제할 수 없는 본연의 욕망에 때론 가족을 살짝 뒤로 밀어둘 생각도 적잖이 하고 사촌의 출중한 능력을 바람직하게 키워주려 하기보다 자기한테 유리하게 이용할 생각부터 하는 Mr. 폭스, 그와 같은 욕망을 내심 지녔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우선시하여 겉으로는 일단 남편을 말리려 드는 Mrs. 폭스, 사촌보다 여러모로 달리는 자신의 모습에 하루에도 수십번 콤플렉스를 느끼지만 그것을 사촌에 대한 불타는 경쟁심으로 표출하는 아들 애쉬 등 이 폭스네 가족은 어린이들이 본받을 만한 모습이라는 결코 볼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가족을 이용하기도 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불만도 적잖이 품고 있는 이들은 어딘가 끊임없이 썩어들어가고 흔들리고 있는 현대 가족의 단면이자 현대인들 각자의 단면이다.
 
본능에 충실했다가 위기에 몰리는 Mr. 폭스는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는 대신에 해야 하는 일을 추구하게 되면서 겪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공허함과 맞닥뜨리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촌에 대한 경쟁의식을 느끼는 아들의 모습 역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상황'을 숱하게 겪는 현실 속에서 조금이라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면 되려 미운털 박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렇게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렇게 꽤나 냉정한 현실을 가족용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소극적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고 캐릭터 하나하나를 통해 피부에 와닿게 던진다. 대신 무표정으로 툭툭 던지며 관객들을 피식피식 웃게 하는 특유의 유머를 통해, 이 밝지만은 않은 현실을 굳이 무게 잡지 않고 발랄하게 전한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가족 구성원들이 힘을 합치고 그 과정에서 우스꽝스럽게 엉키기도 하는 모습은 팍팍한 현실을 굳이 팍팍하게만 볼 필요는 없다는 감독의 기분좋은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하다.
 
 
이렇게 현실을 쿨하게 드러내는 방식은 결말에 이르러 한껏 빛을 발한다. 막말로 목숨이 걸린 상황 앞에서 폭스 가족과 동물들은 새삼 무게 잡고 가족의 소중함을 역설하며 '얘들아 사랑한다'와 같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날리지 않는다. 위기에 봉착하면 유쾌하게 새로운 방법을 찾고, 악질 농장주들이 바로 쳐들어오려는 와중에도 그들은 기분 좋게 생존을 위한 건배를 올린다. 내 생각대로 살려면 삶이 전쟁같이 변하는 세상이지만, 엎어치나 메치나 어차피 다가오게 마련인 위기들은 어떻게 보면 살면서 누구나 겪게 마련인 수많은 시험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수많은 시험 앞에서, 우리는 괜히 내일 죽을 것처럼 비장한 마음을 먹을 필요 없이,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하루하루를 치열하고 활기차게 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또 한번의 생존 기회를 얻은 것을 자축하며 흥겹게 춤을 추는 폭스 가족의 모습은, 험한 세상 속에서 불필요하게 전전긍긍하지 않고 쿨하게 살아남는 법을 아는 듯해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미스터 폭스>는 결국 '살아남기'에 대한 영화다. 의지를 꺾어버리며 기어코 정체성까지 위협하는 모진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 갖고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엣지 있는 우리 폭스 가족은 무겁게 매달리지 않고 발랄하게 즐기는 순간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 해도 대단히 잘 한 거니까, 앞으로 눈 앞에 놓인 인생의 온갖 돌부리들은 사뿐사뿐 넘으며 즐기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삶은 가치가 있다'고 연설하지 않고 '어쨌든 한 번 살아볼 만 하죠'하고 윙크하며 손가락을 튕기기에 그들의 조언은 전혀 부담이 없다. 뭉치기 쉽지 않고 각자 놀기 십상이라는 점에서 폭스 가족은 본받을 만한 가족은 못 된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고속도로처럼 거침없는 마인드를 지닌 이들은 참 친구 삼기 좋을 것 같은 유쾌한 가족이다.
 

(총 1명 참여)
yapopoya
저도 꽤 즐긴 영환데 평이 갈리네용   
2010-04-30 20:20
hssyksys
잘봤습니다^^*   
2010-04-11 00:40
kimshbb
유익한 정보였어요   
2010-01-04 18:25
spitzbz
정말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그 영상들하며.. 재밌는 블랙유머..
오늘보고왔는데 얘들은 그다지 재밌어하지 않고 어른이 더 재밌어하던구요.. 제발 애들은 발로 앞좌석좀 차지 않았으면.. 거의 99% 뒤에 앉으면 콩콩콩.. 애들도 자기가 당하면 좀 안하려나.. 애니메이션도 좋아하는데 항상 애들땜에 겁난다는.. 막 혼낼수도 없고.. 차분하게 타이르는건 더   
2010-01-03 00:27
man4497
잘 읽었습니다.   
2009-12-30 14:53
snc1228y
감사   
2009-12-29 22:07
naredfoxx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같이 안보였는데~ 글쿠나~ 재밌을 것 같아요.
캐릭터들도 넘 귀여워요~   
2009-12-29 11:56
sopia7609
그런방법 어디 없나요?   
2009-12-29 10:02
wolf1980
나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09-12-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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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Mr. 폭스(2009, Fantastic Mr. Fox)
제작사 : Blue Sky Studios / 배급사 : 20세기 폭스
수입사 : 20세기 폭스 / 공식홈페이지 : http://www.foxkorea.co.kr/Mr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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