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무지와 선입견의 나라다. 혁명과 공산정권, 그리고 한국관 먼 나라이자 관계도 소원한 그런 나라 정도. 어떤 이들은 이 나라가 스페인의 식민지의 경험을 갖고 있는지도, 그리고 현재 스페인어를 쓰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그렇고 그런 나라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 이민을 간 한국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1905년, 한국인에겐 잊기 힘든 해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됐던 해이다. 한국, 아니 조선에겐 불행의 시작이 된 해이다. 을사 오적과 외교권 박탈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듬뿍 갖고 있는 이 해에 1000명의 한국인들이 인천항에서 멀리 멕시코로 가는 배를 타고 라틴국가인 멕시코로 향했다. 그리고 유카탄 반도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있던 그들 중 300명이 밀항으로 쿠바에 갔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지금 쿠바에서 한국인 후예들로 성장했다. 관객은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냥 추상적인 어휘로 비참한 정도로 살기 힘들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단 정도지, 그것이 얼마나 참혹했고 비극이었는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아니 멕시코에서 한국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쿠바에서의 한국인들을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간의 춤(Baile del Tiemp)’는 관객에겐 너무 낯선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들었던 한국인 후예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인지 내 머릿속엔 몇 가지 상식적인 단어들이 생각났다. 이민, 후손, 망향, 그리고 이질감. 영화는 한국인들의 다양한 경험과 계층, 그리고 그들의 현재들을 담고 있었다. 다소 체계가 없는 구성을 지녀서인지, 사실 영화의 흐름은 종종 나의 일관된 시각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독은 어떻게 하든 그들의 삶을 보여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어쩌면 단일한 주제를 갖고 영화를 찍는다면 그것은 영화를 만든 이들의 생각과 사상을 강제하는 우를 저지를 수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이면서도 억지로 만든 기승전결 속에 만들어진 감독의 시선을 위주로 만들 수도 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감독은 가능하면 그들의 시선과 역사, 그리고 그들의 감정과 즐거움을 위주로 모든 것을 담은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영화에서 최고의 화두는 이민이다. 왜냐 하면 문화적 동질성을 이루었던 과거의 체험을 공유한 자들이 과연 멀리 떨어졌으면서도 그것을 계속 공유했는지도 관심사이지만 과연 그들이 고향과 모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영화 자체가 좋은 Case Study 자료일 것만 같았고, 사실 그랬다. 관객이 본 쿠바의 그들은 어쩌면 더 이상 한국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또한 감독의 답변처럼 그들은 한국에 대한 호기심은 있을지언정 현재의 젊은 한국의 쿠바인들은 결코 한국에 와서 살기를 원하지 않아 보였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와는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쿠바에선 나름의 멋진 인생을 살고 있고, 그것들을 계속 향유하려 할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문화의 동질성이 얼마큼 지속하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바뀔 수 있단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인 쿠바인들은 지금은 아리랑이 아닌, 살사를 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노예로 왔던 흑인들의 종교인 el Santeria의 사제를 동양인이 맡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사회학적 시선으로 본다면 먼 곳으로 간 한국인처럼 멀리 한국으로 온 이방인들 역시 같은 입장과 상황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인구가 줄어서 그 대안으로 떠오른 해외로부터 온 이주민들을 한국은 강제로라도 같이 살아야 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마치 유카탄 반도로 간 한국인들이 모자란 인력을 보충했듯이 말이다.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어렵지만 또한 인간은 현실에 수긍을 하는 인간이다. 그들과 한국의 본토인들이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아련한 아픔이 느껴진다. 왠지 떨어져 산다는 것은 내가 아는 비극과 슬픔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Fin 이후 남녀가 추는 Salsa가 반가우면서도 묘한 기분이 그래서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멋진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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