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신체적으로 거의 성인에 가깝게 성장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유로 방황하며 고뇌한 시간들... 대학입시라는 사회의 첫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3년이라는 시간을 공부와 씨름하며 보낸 땀의 순간들... 친구와 어울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 행복 뒤에는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그때는 몰랐습니다. 유아기때 아버지는 엄마를 두고 보이지 않게 대결했던 존재였고 청년이 되어서는 무섭고도 큰 존재감에 함부로 대들지도 못할 엄한 분이셨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아버지의 뒷 모습을 보니 흘러간 시간의 무게만큼 작아져버린 존재가 되신 아버지...
<바람>이라는 영화제목과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무슨 영화일지 참 궁금했습니다. Wind인지 Wish인지 의미가 모호한 제목이었고 <친구>를 떠 올리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교내 불량써클의 내용도 다룬다니 다분히 폭력적이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했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모든 기우와 선입견을 깨고 남자 고교생이 경험하는 일상 생활을 즐겁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중학교에서 좀 놀았던 이정우(짱구)가 상고에 입학하는 첫날부터 2학년까지가 주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불량써클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가고 있고 고3때부터 졸업까지 아버지와의 이야기가 눈물겹게 마무리됩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넘치는 혈기를 주체할 수 없어 누가 짱인지만이 중요한 고교생 시절. 수업시간에 땡땡이치다 걸리고 흡연을 자유롭게 하다 선생님께 걸려 매 맞는 일이 부지기수인 그 때, 선생님의 몽둥이에 한치에 움직임없이 맞는 녀석이 왜 그리도 멋있어 보였는지...그런 반항적인 모습이 진짜 남자다운 것으로 비춰지던 철없는 시간들. 힘없는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이 나쁜 일이고 그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지 몰랐던 그 시절엔 동물의 왕국처럼 힘 세고 모두들 무서워하는 선배들처럼 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신입생때는 몰랐던 후배라는 존재가 생기면서 조금 더 어깨에 힘을 주고 떠 받들어 진다는 것에 뿌듯해했던 2학년. 머지않아 나도 최고의 위치인 3학년이 되어 저렇게 멋있게 호령하리라는 꿈을 꾸지만 정작 3학년이 되어서는 주먹보다 대학이라는 존재에 기가 눌려 뒤 늦은 후회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커버린 자신과 비교해 이제는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작아진 아버지를 보게 되지요. 무섭고 감히 대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아버지가 이제는 늙고 병들어 내가 들어도 무겁게 느끼지 못할 존재가 되어버린 그를 보며 뒤늦게 후회합니다.
늘 걱정만 하셨던 아버지께 '괜찮은 사람이 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싶었는데...왜 그때는 아버지가 지금껏사랑으로 키웠는지 기억하지 못했을까 뒤늦은 반성을 합니다. 늘 곁에 있을거란 생각으로 '나중에'라며 젊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영원히 계실 거란 착각에 허비한 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요...
남자의 이야기라 내 이야기를 하듯 더 공감하고 재미있게 웃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 흘렸는지 모르지만 정말 기억에 남을 영화였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라 알아 듯는 것이 어려웠을 뿐... <7급 공무원>이상 웃었고 <애자>, <워낭소리>만큼 울었습니다.
자식을 키워보니 나를 키웠던 아버지의 마음도 조금은 알게 된 이때 <바람>은 제게도... 묻습니다. 지금 너에겐 어떤 바람(wish)이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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