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조심하세요)
<R U Ready?>
<아유레디>가 <인디아나 존스> 같은 어드벤처 영화인가'라고 묻는다면, 일단 아니라고 대답해야할 것이다. <아유레디>에는 마초도 없고 공주님도 없다. 보물도 없고 팔보다 긴 칼을 들고 쫓아오는 아랍인도 없다.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대한민국 사람중 무작위로 표본을 뽑았다고 해도 무리 없을 다섯명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이들이 죽도록 고생하는 이유 (진짜 죽기도 한다) 역시 보물을 구하거나 야만인들에게서 도망가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이 정체 모를 사파리에서 빨리 나갔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다. 어찌보면 <아유레디>는 영웅이 없는 히어로 물이고, 모험 없는 어드벤처 영화이다. <아유레디>가 분명 어드벤처 영화이지만 여타 헐리웃 어드벤처 영화와 차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아유레디>의 주제가 뭐냐고 묻는다면, 다섯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재미없는 해석이긴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아유레디>의 액션과 어드벤처는 각각의 인물이 스스로의 부정적인 면과 마주치게 되는 상황을 이어주기 위한 복잡한 연결고리에 불과하다. 액션과 특수효과는 이런 연결고리에선 한참 고조되다가, 막상 실질적인 클라이막스에 오면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영화에 쏟아부은 모든 특수 효과는 클라이막스와 클라이막스의 다리 역할을 할뿐이지 중심은 아니다. <아유레디>의 곳곳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기존의 몇몇 어드벤처 영화에서 본듯한 장면이고, 그것이 마치 '패러디'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유레디>는 누구도 시도한적 없는 어드벤처영화이며, 기존 어드벤처 영화에대한 우월감 같은 것이 묻어있다. 과시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특수효과를 전면에 내세운 것 역시 특수 효과만 나오면 기가 죽어야 했던 한국 영화가 외국 영화에 내세운 자신감의 표현같다.
<아유레디>에서 '어드벤처'라는 요소를 빼보고 생각하자. 남는 건 무작위 표본 추출된듯한 다섯 인물과 그들의 드라마이다. 다섯명 모두 낯선 사람에게 그다지 친절한 사람도 아니고 다들 어딘가 비뚤어져 있는 사람이다. 이유는 그들의 과거에 있고, '아유레디'라는 곳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니 일단 찾아야 한다. 이야기의 골격을 이루는 다섯명의 과거는 영화 초반에 주인공의 회상이나 꿈을 통해 약간씩 힌트를 준다. 우리는 눈으로 어드벤처를 따라가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클라이막스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드라마를 펼쳐 놓을지 계속 고민하게된다. 그리고 앞에서 무작위 표본 추출이라고 했지만, 사실 다섯명의 구성원은 잘 조절돼있다. 다섯명중에는 젊은 사람도, 늙은 사람도 있고, 어른도 어린이도, 남자도 여자도,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있다. 구성원만큼 그들의 드라마도 다양하고 게다가 잘 균형잡혀 있다. 두서없는 드라마의 병렬이 됐을수 있었을텐데도 그 함정을 잘 피해간 것이다.
각각의 드라마를 죽 놓고 생각해보면, 드라마는 뒤로 갈수록 개인적이고 비틀려 있다. 첫 번째 황노인의 드라마는 가장 강렬하고 누가 봐도 극단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목숨이 걸려 있는데다가 공포도 그 못지 않게 극심한 상황이다. 서로 라이벌이라고 생각해서 서로를 경멸해온 정현우와 봉준구의 이야기는 타자가 보기엔 별 문제 아니고, 그 때문에 우습기도 하다. 그렇게 황노인의 이야기는 동정심으로, 정현우와 봉준구의 이야기는 유머로 넘겨버릴수 있다. 하지만 강한 여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단주희의 이야기에 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녀는 과거의 상처를 이기지 못해 비틀려 있다는 인상이 강하며 이건 누구와 화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것이다. 이런 경향은 클라이막스, 유강재가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되는 것에서 가장 확실해진다.
사회적이고 폭넓은 것에서부터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까지, <아유레디>는 많은 드라마가 나온다. 후회스러운 삶, 이유없이 싫은 친구,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잊고 싶은 과거, 비틀린 성격, 자기 혐오 등등. 하지만 모든 것의 원인은 한가지이다.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인이 비틀려 있는 이유는, 삶을, 행복을, 우정을 잃어버린 이유는 자신을 긍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어드벤처'로 시작했던 이 영화는 우리에게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속의 슬픔과 싸우고 결국 극복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아유레디>는 영화는 80억짜리 블록버스터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열등감 치유를 위한 싸이코 드라마와 같다. 총으로 아랍인을 쏘며 뱀과 거미를 피해 보물을 들고 도망 다니는 백인 남녀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열등감, 누구에게나 있을 것같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을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위한 영화인 것이다.
정말 분통터지는 것은 <아유레디>를 다른 어드벤처 영화와 같은 선에 놓고 '그런 영화들보다 재미없기 때문에 나쁜 영화이다'라고 못박아 버리는 자세이다. '그 영화처럼 매끄럽지 않으니까', '그 영화처럼 놀랍지 않고 시시하니까'라는 이유는 <아유레디>에게 내릴 수 있는 올바른 비판이 아니다. <아유레디>는 기존의 한국 영화와도 전혀 다르며 소위 '헐리웃 액션 어드벤처'라는, 제국주의와 가부장제도의 표본과도 같은 장르보다는 훨씬 우월한 장르의 영화이다. <아유레디>가 최고의 영화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단점만을 가지고 얼토당토 않은 영화들과 비교를 해대며 깎아 내린다면 그건 절대 사양이다. <아유레디>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뛰어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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