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위치한 남아공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엔 아프리카 대륙의 원초적인 색깔과 뜨거운 야생의 외침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케이프타운 거리에는 좀 처럼 흑인을 만날 수가 없을 뿐더러 도시의 풍경 또한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1652년 경에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네델란드들로 주축을 이룬 유럽 이민자들에 의해 차츰 간섭 당하기 시작했고 1913년 에는 흑인들의 토지소유권에 제한을 받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1921년에는 퀸즈타운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을 총으로 학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1948년에는 백인들의 정당이 선거에 승리 하면서 그 악명높은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흑인과 백인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며, 흑인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유색인종들의 거주지를 분리 하는 홈랜드 정책을 법제화 하였다.
케이프 타운 중심가, 디스트릭트-6 (제 6구역) 에는 다양한 유색인종들이 모여살고 있었는데 백인들은 1966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근거로 이 지역을 도박, 매춘이 판을 치는 유해지역으로 지정하여 이 곳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몰아내고 백인 거주지역으로 선포했다. 백인들이 보기에는 디스트릭트-6 가 깜둥이들이 살기에 지리적으로 너무 좋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특수효과를 전공한 남아공 출신 감독인 '닐 블롬캠프'는 지구에 거주중인 외계인 난민의 집단 난동과 그것을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 7분짜리 가짜 다큐멘터리 영화인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스' 를 통해 불과 15년전까지 유지되었던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을 빗대었다. 반지의 제왕으로 최고의 감독 반열에 올라선 피터잭슨 감독이 이 기발한 단편영화에 자신이 가진 힘을 실어줌으로서 "디스트릭트 6" 는 [디스트릭트 9]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28년전, 핵심 비행체인 수송선을 잃어버린 초대형 우주선 한대가 지구에 불시착하게 된다. 그 안에 타고 있던 백만명의 외계인들은 졸지에 난민의 신분이 되어 추락지인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 머물게 된다. Multi National United 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인 MNU는 세계적인 관심속에 인도주의적인 체스쳐를 취하며 그들을 디스트릭트-9 에 수용하게 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그 곳의 외계인들은 식량부족으로 폭동과 무질서를 초래하고, 주변 흑인 갱단의 이권개입으로 주변의 주민들과 큰 마찰을 일으키는 등 디스트릭트-9 은 점차 통제불능 상태로 치닫게 된다.
성실한 MNU 직원 인 비커스는 디스트릭트-9 에 거주하는 외계인들을 보다 먼 외곽으로 강제이주 시키는 작업의 팀장으로 임명된다. 청소반장도 반장이라고, 고지식하고 성실하기 짝이 없는 비커스에게는 큰 감투다. 의욕이 충만한 비커스는 드넓은 난민촌을 뛰어다니며 업무를 수행하다가 정체불명의 외계물질에 노출되어 MNU 의 실험실에 감금된다. 그 곳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된 그는 디스트릭트-9 으로 달려가는데...
이번주에 개봉예정인 영화 [디스트릭트-9]은 가짜 다큐멘터리,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다큐멘터리를 흉내 낸다고 해서 모큐멘터리 (MOCK DOCUMENTARY) 장르 영화이다. [디스트릭트-9] 은 가짜 상황을 마치 실제 상황인 양 마구 이야기를 꾸며댄다. 가짜를 진짜처럼 믿게 하는데에는 두 가지 요령이 있다. 하나는 실제 발생 가능성이 있는 것을 보여주거나 둘째는 '이것은 실제상황' 이라고 끝까지 일관성 있게 우기는 것이다. 최근 몇년 동안에 개봉한 모큐멘타리 영화중에는 공포영화 [R.E.C]가 전자에 해당하고 SF영화 [클로버필드]가 후자에 해당한다. 두 영화 모두 다큐멘타리의 형식을 빌어 해당 장르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디스트릭트-9] 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영화가 첫번째 작품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닐 블롬캠프 감독은 매우 진심어린 어조로 끝까지 관객들을 코너에 몰아 넣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라니깐요!!".
28년 동안 백만명에 가까운 외계인이 지구에서 공식적으로 거주중이라는, '진심을 다하는 새빨간 거짓말' 앞에 관객들은 점차 의심의 눈초리를 걷고 그의 거짓말에 풍덩 빠져들게 된다. 더구나 영화배우라고는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등장 인물은 모두 일반인이다) 사실과 촬영지가 흑인들이 실제로 거주했던, 쓰레기매립지 위에 위치한 판자촌 지역에서 이루어 졌다는 점은 제작비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감독의 정치적 의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효과적인 결과물 얻게 되었다.
[클로버필드]나 [R.E.C] 가 단지 관객의 흥미를 극대화 시키기 위한 형식 파괴를 시도한 것 이라면 [디스트릭트-9] 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남아공의 흑인차별 상황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SF 하드코어 액션 영화" 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SF 영화가 이번이 최초는 아니다. 이미 영화 [맨인블랙 1,2]가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를 외계인으로 표현하여 미국내 인종불평등을 코믹하게 그려내었던 적은 있지만 [디스트릭트-9] 은 '풍자' 라기 보다는 시종일관 '비판'의 관점으로 무겁고 둔탁하게 끌고 나간다.
그렇게 외계인들을 앞장서서 몰아내던 주인공 비커스는 불행하게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계인의 편에 서서 인간들을 바라보게 된다. 공포와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것도 잠시, 영화는 매우 강렬한 기세로 인간의 잔인함을 까발리고, 그 잔인함에 더욱 강렬한 힘으로 맞설 수 밖에 없는 약자들의 분노와 폭력을 쉴 새 없이 보여준다. 사회 내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지배층의 불합리한 억누름은 결국 더 큰 폭력으로 얼룩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 "놀랍도록 폭력적인 비폭력영화" 는 통쾌하고 환타스틱한 멋진 결말을 보여주지만 결코 상쾌하지는 않은, 관객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무겁게 만드는 뒷맛이 오래 남는 영화이다.
하지만 주제의식이 강하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지루하거나 무겁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정치적인 영화지만 부담 없이 즐겼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말 처럼 [디스트릭트-9] 누가 뭐라고 해도 "액션 SF" 영화이다. 그것도 매우 빠르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만큼 손에 땀을 쥐는.
우리가 단지 이땅에 먼저 살고 있었고 숫자가 월등히 많다는 이유만으로 외계인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폭력과 불평등이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인간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곤충을 닮은 외모 때문에 '프런' 이라는 호칭으로 경멸하고 (실제로 남아공에서는 골치덩이인 왕귀뚜라미를 'prune' 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매우 뛰어난 지적능력과 따듯한 동족애를 가졌음에도 지배인 이라는 명목하에 외계인들이 가진 문화를 짓밟고 그나마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모조리 강탈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대한민국에도 수 많은 외계인들이 오래전부터 우리 옆에 거주하고 있다. 누가 백의민족 아니랄까봐 백인만 좋아하는 우리들, 그리고 돈없고 빽없어서 살던 곳에서 쫒겨나는 가난한 철거민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외계인들을 키우고, 외계인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힘으로 몰아내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 보자.
이 서울 안에도 엄연히 디스트릭트 6, 7, 8, 9, 10 이 존재한다.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디스트릭트 9" 인 용산 지역에서 외계인 철거민들이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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