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한 작품 때문에 고은님의 광팬이 된 내가 '아유레디?'를 기대했던건 너무나 당연했다. 어제 시사회에서 아유레디를 보고난 나는 많은 혼란을 느꼈다. 기대가 너무 컸던 때문일까? 감독의 연출력 때문인가? 일단 한번의 감상만으로 판단하는걸 유보하기로했다. 그게 광팬의 자세(?)아닌가? 그리고선 미뤄두었던 아유레디 시나리오를 출력해 단숨에 읽어버렸다. 역시나 아리송했던 많은 의문점들이 하나씩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나같은 일개 관객에 불과한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난다 긴다 하는 평론가들은 좀더 신중했어야 했다. 그 사람들 고은님 작가 욕한거 분명 실수한거다. 적어도 시나리오상의 결함 어쩌구 저쩌구는 해서는 안되는거였다. 물론 이거야 그저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디 하나하나 따져볼까? 우선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주인공 강재의 화해장면부터 따져보겠다.
Q. 왜 주인공 강재는 자신의 과거속 분신과 그렇게 쉽게 화해하는가??
내 나름의 Answer.
강재의 직업은 성형외과 의사이다. 왜 하필이면 성형외과 의사일까? 성형외과 의사는 남의 상처가 보이지 않도록 치유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강재는 남의 상처는 치료할 수 있어도 자신이 간직한 상처(손목의 흉터로 상징되는)는 치유하지 못했다. 그게 의지에 의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어쨌든 성형외과 의사가 가장 잘할 수 잇는 일은 말하나마나 성형수술이다. -_- 강재는 고등학교 시절 가난하고 냄새나는(생선냄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짝사랑하는 여학생 앞에서 자해를 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기억은 손목에 흉터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기서 두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1. 그 흉터를 일부러 지우지 않았을 경우.(수술을 통해) 강재에게 흉터는 비참했던 학생시절의 자기를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물인셈이다. 비록 비참했던 자신의 환경을 비관했었지만 그걸 지워버리거나 (분신의 표현에 의하면 '죽여버리거나')하는 최종적인 결심을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어리석었던 과거를 잊어버려선 안된다는 최소한의 양심과 자아 정체성(? 마땅한 단어가 생각안남)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강재의 분신(그림자)와 맞딱뜨렸을때 강재는 지니고는 있었으나 회피했던 자신의 자아를 이루는 일부분인 그 분신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재의 분신은 그런 강재의 태도변화를 확인하고선 더이상 강재를 죽여야할 정당성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그들 두 자아는 서로 화해하게된다.
2. 그 흉터가 어쩔 수 없이 남게된 경우 강재가 성형외과 의사가 된 이유는 그 흉터를 지우기 위함일 수 있다. 바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지워버리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성형외과 의사가 되고서도 그는 자신의 흉터를 없애버리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환청과 악몽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강재가 자신의 분신과 대면했을때 그는 자신의 흉터가 그런 기계적 시술과 같은 소극적방법(회피)로는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 나를 죽였냐는 분신의 원망과 분노에 그는 그 자신은 그 분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걸 그 흉터를 보여줌으로써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이 부정하려고 했던 자기의 아픈 기억 또한 자신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위의 두 가능성을 혼합한 해석도 가능하다. 그만큼 강재의 스토리에서 '흉터'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끝부분 사파리차에서 내릴때 강재가 머리를 쓱 쓰다듬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볼때는 뭐 저리 상투적인 장면, 쓸데없는 장면이 다 있나 했었다 -_-) 그 장면에서 그의 손목에는 아무런 흉터도 남아있지 않는 것이다. (이건 다시 보게되면 꼭 확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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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체적인 스토리 자체가 잘 이해가 안가더군요..개연성이 쫌 부족한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