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본 영화 중 <내사랑 내곁에>는 주연보다 더 기억에 남는 조연을 일컷는 '씬 스틸러'를 먼저 떠 올리게 된 영화입니다. 개봉 전부터 김명민이라는 연기파 배우의 체중 감량, 루게릭 병을 다룬 소재와 더불어 연기파 배우들의 출연은 영화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영화 <내사랑 내곁에>는 배우들의 투혼과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왠지 모를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주변에서 많이 눈물을 흘리셨지만 <애자>나 <마이 시스터즈 키퍼>를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던 저에게 이 영화는 눈물 한방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김명민이라는 배우의 연기에 다시 감탄했고 하지원도 이제는 외모만으로 흥행을 하는 배우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 연기였지만 영화의 흐름은 그들의 연기를 살리지 못한 채 아쉬운 연출과 편집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초반부 만남부터 사귀자로 시작해 급속도로 발전한 관계 후 간혹 볼 수 있는 육체 관계는 굳이 저렇게 오래 보여 줄 필요가 있을까라는 물음을 갖게 합니다. 물론 지수 (하지원)가 종우 (김명민)를 사랑해서 사랑의 결실을 갖고 싶어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영화가 최루성 드라마라는 장르와 맞지 않을 정도의 시간과 디테일은 양복에 운동화와 같은 느낌입니다. 또 종우가 병을 겪어 가는 과정도 넘실대는 파도를 타듯 급속도로 상황 변화가 이루어져 뭔가 감정을 잡고 몰입을 하려는 마음을 자꾸 방해합니다.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환자들을 조금씩 비추면서부터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굳이 보여줄 필요 없는 장면도 곳곳에서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점점 야위어가는 체중의 변화를 몸으로 보여주는 연기자의 투혼은 박수가 아깝지 않습니다. 혼자서 몸을 가눌 수도 없어 보일 정도로 야윈 모습에선 자연스레 탄성이 나오게 될 정도이죠. 그리고 이제 죽음을 현실로 받아 들여야하는 상황에서 종우의 급격한 강점 변화를 힘들어하는 지수의 마음은 보는 저까지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점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날아 든 모기조차 어쩌지 못하는 장면에서는 영화 속 대사처럼 어릴 적 곤충채집을 위해 잡은 잠자리가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느낌을 보는 듯 했습니다. 지금까지 몰랐지만 그 대사가 그처럼 가슴에 와 닿을 줄 몰랐습니다. 숨쉬고 몸을 움직이고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 모든 것이 삶에 축복이라는 것을 잊고 너무 당연하게 살아가는 이기심을 다시금 반성하게 하는 명대사입니다.
그런 공감과 열연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감정이입의 문제와 달리 눈이 번쩍 떠지는 조연들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의사인 김여진은 수도없는 죽음을 보고 있는 입장에서 보는 또 한명의 죽음을 앞둔 환자를 대하는 의사를 사실적으로 연기합니다. 중견 연기자이신 남능미와 임하룡은 여전한 입담과 맛깔 스러운 연기로 영화의 맛을 살려주고 계시구요.
조연 중 가장 빛나는 씬 스틸러 3명을 꼽으라면 아나운서에서 프리를 선언한 뒤 연기자로 다시 어려운 발걸음을 시작한 임성민을 꼽습니다. 그녀라고 생각하니까 그녀였다고 믿지 모르고 보면 정말 그녀였는지 모를 정도로 역에 맞춰 완벽한 변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힘든 생활을 토로하며 도와 달라는 방송을 많이 하고 있는 임형준은 그동안의 코믹 이미지를 버리고 잘 나가는 회사원에서 모든 재산을 형의 간병으로 날리고 퇴원 시켜달라는 애절함을 호소하는 동생으로 나와 환자 가족의 힘겨운 상황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타짜>에서 김혜수의 명대사 '나 .. 이대나온 여자야'처럼 '삼성전자'를 다녔던 회사원을 강조한 촌철살인격 대사도 귓가를 맴돕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씬 스틸러는 '브아걸'의 가인이라고 봅니다. 첫 장면에서 맨얼굴로 충격적인 인상을 남긴 그녀가 침 좀 뱉어 주시더니 엄마에게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장면에선 정말 왠만한 연기자 이상의 공감가는 연기를 보여 줍니다. 장래가 총망되던 피겨스케이팅 선수에서 훈련 중 척추를 다쳐 하루 아침에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녀의 심정을 정상의 신체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대사도 많고 힘든 감정 연기를 해야하는 역임에도 그녀는 노래만큼의 실력으로 훌륭한 연기자로서의 재능을 보여 줍니다.
김명민의 감량과 루게릭 병의 무서움을 보여주며 배우들의 열연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며 눈물을 허락할 수 없었던 <내사랑 내곁에>는 씬 스틸러들의 투혼이 특히 더 빛난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다시금 건강한 육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금에 행운을 감사하며 저의 메마른 감상이 이제는 감정이 서서히 굳어가기 때문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