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재능, 거부할 수 없는 열정, 말릴 수 없는 고집, 그림에 대한 집착.
내가 이 영화를 알게 되고 이 영화를 보려고 애쓴 것은 그녀만의 본능적인 행동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본능이였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재능이라고 불리우는 그것.
다른 이들은 교육과 학습을 통해 얻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녀에게는 하늘이 주신 축복.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였을까? 아니면 지독히 가난했으므로 공평했을까?
그녀의 삶에 메스를 대고 이리저리 해부해가면서 분석하려는 우리들조차 아랑곳하지 않은채 계속 그림만 그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녀는 매사에 모든 것을 해부하려하지 않은다. 사물들과도 대화를 교류하며 그녀는 그들과 하나가 된다. 우리는 그것을 '영감'이라고 이름을 붙여놓고 또 그녀의 재능이라고 들먹일 것이다. 그녀처럼 시도조차 하지도 않으면서도 말이다.
다큐도 아닌 것이 흥미를 넣은 상업적 영화도 아닌 애매함 그 자체에 영화가 놓여있다. 지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미술학도도 아니고 미술에 대한 지식도 없는 나로써는 그녀의 그림에 무어라 대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나도 놀랐던 것은 그저그런 일상속에서 그녀가 그린 그림의 화려함이다. 어떠한 사물하나하나에서 뽑아내는 그녀의 상상력은 그녀의 그림속에서 재해석되었다. 그것이 놀라웠다. 사진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 것은 피사체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그 이상의 모습을 담기 위함이었으리라. 놀라운 사진의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림들이 그려지고 살아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였을지도 모른다.
돈이 많이 드는 예술로 손꼽히는 그림그리는 작업.
하긴, 꼭 물감과 캔버스지가 없다고 그림을 못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그림그리는 도구를 장만하는 과정은 기가 막히다. 어쩌면 그녀는 사람들이 정해놓은 색체조차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물감은 오로지 흰색물감뿐이였다. 그것으로 그녀는 모든 것을 표현했다. 세상 모든 재료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을 그림속에 담아내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반 사람들에게 멸시당했던 그녀의 그림이 유명한 미술평론가의 눈에 들어왔을 때의 장면을 보고 많을 것을 느꼈다. 때론 나도 내 감정이 아닌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하는 것 말이다. 피카소 그림을 좋아했던 것은 그림 그 자체가 아니라 유명세가 아니였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반문을 해보았다. 물론 그림에 문외한인 나로써는 그정도의 유명세가 없었으면 피카소라는 사람의 그림조차 보지도 못했겠지만, 내 자아 스스로가 내리는 평가와 감정이 타인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누구의 작품인지도 모른채 내 앞에 그림이 있다면 난 유명세를 벗어나서 내 기분대로 그 그림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했다.
그녀가 미술평론가의 후원을 받으면서 그리는 그림들은 대부분 크기가 컸다.
마치 담고자 하는 것이 너무 커서 다 담아내기 버거울 만큼.
여백의 미를 주는 공간조차 아깝다고 느낄만큼 가득채운 그녀의 그림은 현대시대에서 봐도 놀라울만큼의 세련미도 담겨져있다. 그녀의 삶과는 너무 달랐던 색채. 그녀는 그녀가 살았던 당시가 아니라 그 이후의 미래속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였을까? 화려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은 어쩌면 그녀가 꿈꾸웠던 유토피아였을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몇개의 그림도구로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들은 대단하다. (실은 내가 미술적인 재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서 더욱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머릿속으로 사진을 걸어놓은 것처럼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일까? 사람의 손에 저런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 난 너무 신비하다. 모 영화처럼 사람이 생각하고자 하는 영상들을 비디오로 뽑아내는 기술이 가능하다면 시도하고 싶을 정도다. 아마도 그게 가능하다면 그림이 아닌 머릿속 영상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생길지도 모르곘지만...... (아~~ 요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어처구니없는 상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래도 왠지 그녀의 작품이 좋아보이는 것은 꽉 찬듯한 풍요로움이다. 화려하면서도 꽉 찬 느낌은 가을볕아래에 풍년을 암시하는 벼를 보는 느낌이다. 그녀가 외로움을 벗어나는 수단은 외로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림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그림은 살아있을 것 같은 생기와 싱그런 향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그녀는 그림으로 영상을 만들었고, 냄새를 만들었다. 보는 이 각각의 상상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서 느껴지게 하는 그녀의 힘이 요즘 인기를 누리고 있는 4D영화와 사뭇 대조적이다. 보여주는 것은 적어도 상상의 힘을 발휘하는 책보다 보여주는 것이 더 많지만 책에 비해 실망적인 영화가 많아지는 가운데 직접 촉각과 후각까지 넘보는 최첨단 영화관이 상상의 힘보다 얼마나 더 작품에 몰입하게 할지는 의문스럽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지만,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발휘할 수 있는 상상이란 재능자체를 대신해줌으로써 우리스스로를 더 퇴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미술학도들이 보면 질투날만큼의 천재적인 미술화가 세라핀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다. 아니, 미술학도가 아닌 내가 봐도 질투가 났던 재능과 열정이 부러운 그녀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