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끔찍하고 선연한 경계의 세계... ★★★★
영화의 전반부는 한 소녀의 복수극이다.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고문을 당하던 한 소녀가 탈출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대체 이 소녀는 무슨 이유로 납치되어, 왜 고문을 당한 것일까? 매일 악몽을 꾸며 힘들어하던 소녀 루시(밀레느 잠파노이)는 안나(모르자나 아나위)의 보살핌을 받으며 조금씩 심신을 회복해 간다. 탈출 후 15년이 지난 어느 날, 여전히 탈출할 때 도와주지 못했던 여인의 환영으로 인해 고통 받던 루시는 행복해 보이는 전형적인 프랑스 중산층의 가정집에 들어가 부부와 어린 남매 등 네 명을 잔인하게 총으로 살해한다. 뒤늦게 달려온 안나에게 루시는 이 부부가 자신을 납치해 고문한 범죄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게 진실인지 아니면 고통에 시달리는 안나의 정신병적 착각인지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으며, 안나 또한 루시를 완전히 믿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영화의 주인공으로 보였던(?) 루시가 갑자기 자살을 한다. 주인공을 죽이다니, 꽤나 당황스러운 설정이다. 루시가 죽은 후 안나는 그 집에 숨겨진 비밀 공간을 발견하고, 루시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 이 때 갑자기 들이닥친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붙잡힌 안나는 끔찍한 고문을 감내해야 한다. 복수극으로 시작한 영화의 후반부는 고문극으로 넘어간다.
<마터스>의 후반부는 관객을 마치 시험에 들게 하는 것 같다. 그만 보고 싶은 마음과 계속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의 격렬한 충돌. 표현상 고문극이라고 쓰긴 했지만, 이 영화의 후반부는 기존의 고문영화와 같이 취급받을 영화는 아니다. 영화 후반부를 장식하는 고문 장면은 <쏘우>나 <호스텔> 류의 피가 튀기고 뼈가 깎이는 식의 고문이 아니다. 묶여 있는 안나를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빰을 때리고, 주먹으로 구타하며, 발로 걷어찬다. 왜 고문을 하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으며 안나도 묻지 않는다. 꽤 긴 시간동안 대사 한 마디 없는 가운데 암흑 속에서 현실적인 구타 장면만이 되풀이된다. 이건 말 그대로, 미칠 것 같은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안나의 고통은 곧 관객의 고통이 되고, “이제 그만!”하고 소리치고 싶은 유혹에 휩싸인다.
거의 극단에 왔다고 느껴질 때쯤, 비로소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왜 안나를 고문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유가 드러나면서 왜 안나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종교적 순교자처럼 느껴졌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딛고 선 철학적 기반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마터스>는 한 마디로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영화다. 이건 중세의 수도사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의 육체에 강한 형벌을 내리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옳으냐, 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 그랬다는 것이고, 현재도 누군가는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음악의 사용도 일반적인 공포 영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지속되는 고문 속에 점점 표정이 달라지는 안나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깔리는 어쿠스틱한 음악은 묘하게 경건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시계를 보니 생각보다 별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무지 피곤하다.
※ <메신져 : 죽은 자들의 경고>와 <마터스 : 천국을 보는 눈>의 공통점은? 제목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원제는 그냥 <메신져> <마터스>인데, 한국 개봉시 뒤에 설명을 붙여 놨다. 영화를 이해하지 못할까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영화의 핵심을 부제로 붙여 놓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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