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악몽으로의 초대... ★★★☆
세계 최초의 3D 스톱애니메이션이라 한다. 그게 정확히 기술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톱애니메이션이 끔찍할 정도의 노가다를 동반하는 작업이란 건 대충 알고 있다. 인형을 만들어 한 컷 한 컷 움직이는 걸 찍어, 그걸 연결해 동영상으로 재현한다는 게 솔직히 잘 상상도 되지 않는다. 거기에 이야기를 입혀 한 편의 장편 극작용 애니메이션이라는 결과물을 내 놓다니, 흥행에 대한 기대가 없는 한 제작비를 마련한다는 것부터 쉽지 않았으리라.
아무튼 3D 스톱애니메이션이라는 제작 기법과 관련해 헨리 셀릭이라는 이름을 상기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1993년에 공개된 헨리 셀릭 감독, 팀 버튼 제작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스톱애니메이션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헨리 셀릭은 2006년에 그 영화를 3D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만들어 세상에 내 놓은 바 있다. 그러나 분명 감독은 헨리 셀릭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팀 버튼의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거기엔 캐릭터의 묘사라든가 이야기 구조 자체가 팀 버튼적(?) 색깔이 강했다는 점에서도 기인하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 영화 제목이 아예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라고 소개된 것도 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 3D 애니메이션과 스톱애니메이션이 결합한 <코렐라인 : 비밀의 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헨리 셀릭이라는 이름은 한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한 주인으로 온전히 자리 매김이 가능할 것이다. 그 만큼 <코렐라인>은 대단히 매혹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 때, 현실에 대한 탈출 욕구를 경험했을 것이다. 거기엔 내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사실은 가상의 세계일지 모른다는 <매트릭스>적 상상도 있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현실의 부모는 가짜 부모이고 재력과 학식이 풍부한 진짜 부모는 다른 곳에 있다는 식의 만화적 상상도 가능했을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코렐라인(다코타 패닝)도 항상 바빠 자신을 돌보지 않는 현실의 부모 대신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이상적 부모를 찾게 된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찾게 된 것이지만, 어쨌거나 코렐라인이 작은 문을 발견하고 그곳을 통과해 가상의 세계에 다다르는 일련의 과정은 어린 시절 누구나 상상하던 세계에 다름 아니다.
엄청난 노가다를 동반하는 스톱애니메이션이란 형식에 비해 이야기는 좀 직선적이며, 단순하다. 특히 후반부, 가짜 엄마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부터 뒷심이 많이 딸린다. 거기엔 다분히 교훈적인 이 영화가 코렐라인이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는 담고 있어도,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 부모의 성장 과정은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러니깐 자칫 이 영화는 부모란 아무리 아이를 방치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그건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그런 것이지 시간만 있으면 언제라도 아이를 정성껏 돌볼 수 있다는 일종의 선험론에 기반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처럼 현실 세계는 어둡고 암울하게 그려진 데 반해, 가상의 세계는 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는 건 헨리 셀릭의 발 딛고 선 기본적인 좌표가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 지 가늠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코렐라인>은 어느 정도는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는 아이들용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도 충분히 재밌지만, 끔찍한 악몽을 동반하는 공포영화로도 손색이 없다. 영화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봉제인형의 제작과 단추 눈을 꿰매는 장면은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할 정도로 공포스럽다. 일부 아이들이 첫 장면부터 기겁해서 나가자고 칭얼댈 정도였으며, 누군가의 아이는 한 동안 단추 얘기만 나와도 식겁하더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이들만 그런 건 아니었다. 영화를 본 당일 날, 꿈에서 바늘과 실이 내 눈을 관통하는 꿈을 꾸고는 새벽에 놀라서 깨고야 말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런 무시무시한 영화가 전체 관람가라니 이런 영화야말로 청소년 관람불가에 처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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