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유쾌하고 감동적인 성장영화... ★★★★
독특함으로 많은 화제를 낳았던 Blur의 <Coffee & TV>의 뮤직 비디오를 혹시 기억하는가? 밀크 우유와 딸기 우유가 사랑을 나눈다는 -,-;; 바로 가스 제닝스 감독의 작품이다. 물론 가스 제닝스 감독과 연출을 맡은 닉 골드스미스는 항상 같이 움직여 왔다. 비단 블러의 뮤직 비디오만이 아니라 수많은 뮤직 비디오를 통해 독특한 상상력을 과시한 둘은 첫 영화로 자신들의 어릴 적 얘기를 토대로 한 성장 영화 한 편을 구상한다. 바로 원제가 <람보의 아들>인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그러나 데뷔작을 준비하던 이들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영화화를 제안 받는다. 많은 감독들이 거부한 끝에 이들에게 도달한 기발한 상상력이 담겨 있는 소설은 역시 상상력이 풍부한 둘과 합쳐져 한마디로 골 때리는 영화로 탄생되었다. 기본적으로 거액의 자금이 들어간 SF 블록버스터이고 우주의 기원과 함께 우주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살피는 거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미니멀한 감각이 살아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어쨌거나 기본적으로 원작소설의 상상력에 기댄 작품이긴 하지만 그것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건 또 다른 상상력이 필요했음은 분명하다.
한 마을에 풍부한 상상력을 가졌지만 강한 종교의 틀에 얽매여 사는 얌전한 소년 윌(빌 밀러)이 있다. 음악감상은 물론 TV도 못 보게 하는 종교 교리로 인해 시청각 수업시간엔 아예 복도로 나와 있어야 하는 윌은 어느 날 복도에서 벌을 받고 있던 사고뭉치 리 카터(윌 폴터)와 엮인다. 리의 집에서 우연히 <람보>를 본 윌은 람보의 매력(사실은 영상 매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 리와 함께 BBC 프로그램인 ‘나도 영화감독’ 콘테스트에 출품할 영화를 만들게 되고, 두 소년은 온갖 아이디어를 이용해 둘만의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두 소년의 우정이 깊어가면서 다른 곁가지가 뻗어 온다. 프랑스 교환 학생인 디디에(쥴 시트럭)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와 리의 형 로렌스(에드 웨스트윅)의 이야기.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윌과 리는 성장 배경이나 환경이 극단적으로 다름에도 누구보다 진한 우정을 교환하고 같이 성장해간다. 둘 관계의 매개 역할은 단연 영화라는 매체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둘은 허무맹랑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동원해 영화를 촬영해 가는데, 그 과정은 정말이지 유쾌하고 귀엽다. 개 모형에 날개를 달아 하늘을 날기도 하고, 정신병 환자에게 가발을 씌워 람보라며 구출해 내기도 한다. 둘만 엉뚱한 건 아니다. 디디에는 영국 여학생들을 줄 세워 놓고 키스를 하고, 그를 추종하는 영국 학생들과 함께 손에 손을 맞잡고 전봇대에서 빠져 나온 전선을 잡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런 대책 없는 놈들.. 이런 녀석들이 뭉쳐서 만든 영화가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의 보고일지는 안 봐도 훤하다.
이 영화엔 또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감동의 순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말썽장이이면서 유독 형에게만 절대 신뢰를 보이는 리의 마음과 윌과 리 사이에 비집고 들어온 디디에 등의 학생들로 인해 소원해진 둘의 관계가 봉합되는 <Son Of Rambow> 시사회 장면은 가슴 가득 따뜻함을 안겨주며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제2의 미셸 공드리로 불리며 마음껏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가스 제닝스 감독과 연출자인 닉 골드스미스, 이들의 어린 시절이야말로 이들 상상력의 원천이었음을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이 심각할 정도로 나쁜 한국 제목은 아니지만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를 바꾼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떠올려보면) 그래도 <람보의 아들>을 그대로 사용했어야 했다. 그런데 실제 람보의 스펠링은 Rambo인데 영화엔 Rambow로 사용되었다. 이는 실베스터 스탤론까지 나서서 이 영화의 제작을 지원했음에도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끝에 w를 붙였다고 한다. 영화가 다 끝난 뒤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는 도중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리 카터 왈(曰) “그런데 영화 제목에 오타났어”. 아... 너무 사랑스럽다.
※ 윌 집안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TV, 음악감상을 금지하는 교리라니. 어쨌거나 그걸 떠나서 역시 어린 시절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라면 영화 찍겠다고 집에 있는 캠코더 들고 다니며 오도방정 떠는 아이들을 가만 놔뒀을까 싶다. 종교라는 틀을 벗어나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윌 엄마의 결단은 또 다른 감동과 생각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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