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 이것은 1970년대 포드에서 생산한 차의 이름이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이 단어의 뜻을 잘 몰랐다. 사실은 라디오로 영화 도입부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잊고 있었다. 늦은 밤 약간 산만한 시간에 집중력 있게 들은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었고, 좋아하는 배우이자 감독의 작품이다 보니 주저없이 보았다. 결과는 만족이다.
영화에 대해 라디오에서 들으면서 초반 정보가 너무 많아 영화 앞부분은 사실 지루한 점이 있었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장면들로 가득한 부분인데 며칠 사이에 두 번 듣고 보다 보니 집중력이 깨어진 것이다. 하지만 사소하거나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전반적 흐름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디오에선 인상에 집중한 것이고, 그 인상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전환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차이가 영화를 보면서 매꾸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차이도 장면이 흘러가면서 사라진다. 영화 소개를 앞부분만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 도입부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는 이유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역할 때문이다. 그는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훈장을 받았지만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괴팍한 노인이다. 예전보다 훨씬 늙은 모습으로 아내의 장례 미사에 인상을 쓰고 서 있는 장면과 집에서 손님들을 접대하면서 그가 보여주는 반응과 인상은 그의 과거와 현재를 예측할 수 있다. 단단한 벽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자식들이나 이웃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점점 동양인들로 가득한 동네를 불만 가득한 시선과 말로 표현한다. 이런 그가 변한다. 자신이 아끼는 그랜 토리노를 훔치러 온 도둑 타오와 그의 누나 수 때문이다. 먼저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인물은 수다. 남자 친구와 길을 가다 흑인 깡패에게 희롱을 당하는데 이를 우연히 본 월터가 그녀를 구해준다. 여기서부터 수와의 친구 관계가 형성된다.
수를 통해 몽 족의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월터가 보여주는 변화는 엄청나다.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그가 자연스럽게 수를 받아들인 것이다. 단지 수만 받아 들인 것이 아니라 그녀의 동생이자 영화 속에서 또 다른 주연이라고 할 수 있는 타오도 받아들인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다. 문화도 사고방식도 다른 이 두 사람이 속죄 형식으로 타오가 일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밝은 장면들이 나오는 대목이다. 옆집에 찾아오는 몽 족과 함께 하는 그의 모습과 피를 토한 후 장남에게 전화를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급하게 끊는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 장면들 때문에 지독한 외골수 노인이 수나 타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의 가치는 곳곳에 드러난다. 외롭던 노인이 몽 족의 파티에 참석하여 오랜만에 음식을 허겁지겁 먹거나 어색함을 넘기기 위해 틀어진 세탁기 다리를 고치거나 하는 장면에서 한 인간의 외로움이 인종의 벽을 넘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두 부분이 있다. 하나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그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대목과 그 슬픔과 아픔을 평생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고백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월터의 복수 방법이다. 이 장면들을 보고 난 후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극장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늙었지만 아직도 매력적인 그의 영화를 본 후 다시금 그의 전작들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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