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하게 파고든다... ★★★★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제목으로만 보면 왠지 묘한 삼각관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실제로도 그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절친한 두 친구, 미인인 아내. 남편의 부재와 그 부재의 틈을 노리고 접근하는 남편의 친구. 밝혀지는 과거와 징벌.
이렇게만 써 놓고 보면 이건 TV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끝장 드라마’의 전형일 수도 있다. (막장이란 말을 쓰지 말자는 것에 동의해 ‘끝장 드라마’라는 용어로 대신해 봤지만 어감으로는 확실히 ‘막장’의 이미지를 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쓰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절친한 두 친구의 관계가 한 명은 자본의 인격체를 대표하는 잘 나가는 성공한 외환딜러요 다른 한 명은 노동계급의 인격체를 대표하는 요리사(노동계급)라면 결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을 보고는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4명의 남자관계가 평등하지 않으며, 그런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이었다. 밴드가 유지되는 데 들어가는 자금은 전적으로 김상호가 분한 중고차 판매 사장이 도맡는 반면, 나머지 세 명의 경제력은 거의 제로다. 그럼에도 영화에선 김상호의 발언권이 별로 강해 보이지 않는다. 현실이라면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 해도 계급적 분화 과정에 따라 실질적인 종속 관계로 이어질 것은 뻔하다. 이걸 부정하고 ‘역시 친구는 의리야’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이가 어리거나 너무 순진하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과거 운동권 학생이었던 잘 나가는 외환딜러 예준(장현성)은 공항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요리사 재문(박희순)과 절친한 친구 사이며, 재문의 아내인 지숙(홍소희)과도 친하게 지낸다. 그런데 가장 친한 둘의 관계는 좀 묘하다. 재문과 지숙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소망하고 있는 미국 이민이 가능하려면 예준의 절대적인 조력이 필요하다. 특히 재문이 사기로 모든 돈을 날린 후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 예준이 재문과 친구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운동권 출신으로서의 허풍에 다름 아니다. “나에게 제일 친한 친구는 노동계급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함의는 자본에 예속된 노동자 계급의 문제, 한 국가에 예속 또는 종속(이 단어가 싫다면 그저 눈치 보기 내지는 은혜를 갚는다고 표현해도 좋지만)된 다른 국가와의 관계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세계화’ 라든가 암튼 양극화된 사회의 표상에 다름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세 장면만으로도 박수 받고 평가 받아야 옳다. 첫 번째는 재문의 아기가 죽는 장면(과거 운동권 출신의 자본가의 손에 민혁-민중혁명-이가 죽는다)에서 재문이 예준에게 “너 여기 안 온거다”라며 오열하는 장면이다. 정말 이 장면은 몸서리처절 정도로 끔찍하다. 자신의 아기가 죽어 미칠 듯한 상황에서도 계급 관계는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예준 대신 교도소에 수감됐던 재문이 출소해서 예준과 만나는 장면이다. 예준이 내미는 두부를 거절하며 재문은 말한다. “내가 언제 죄 지었냐” 그럼에도 자본주의에서 돈이 없다는 건 어쩌면 죄수의 입장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예준이 자신도 모르게 지숙에게 소리치는 장면이다. “나 때문에 먹고 사는 주제에” 빈말이라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예준의 계급적 입장은 이 때 노골적이면서도 천박하게 드러난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뒤늦게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문제, 특히 양극화된 현대 사회의 불안한 표상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생채기를 남긴다. 언뜻 새로운 출발로 보이는 마지막 장면조차 담담히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인물들의 삶이 여전히 불안한 기반 위에 서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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