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이 있는, 그것도 너무나 훌륭한 작품을 자궁으로 하여 잉태된 영화는, 잉태 사실 만으로 후광을 얻지만 동시에 그것은 원작의 무거운 그늘 아래에서 태어난다. 마치 명배우의 2세들이 데뷔하기는 쉽지만 성공하기는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왓치맨(Watchmen)] 은 휴고상을 받은 유일한, 그리고 타임지가 선정한 1923년 이후 최고의 100 대 영미소설에 포함된 "단 한편의 그래픽노블" 이다. 비록 만화 부분과 소설 부분이 번갈아 가며 펼쳐지기는 하지만 두껍지 않은 단 두 권(한국 출판 기준) 짜리 분량의 작품 치고는, "너무나 섬세하고 촘촘하게 묶여진 거대한 형체" 때문에 시간이 지날 수록 읽어 내려가기 힘들고 무거운 작품이다.
원작을 탐독한 사람이라면 "영화화 할 수 없는 작품" 이라는 높은 악명에 주저없이 한표를 던질 것이다. 하지만 드디어 공개된 영화 [왓치맨]은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원작에 충실한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 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바이다. 훌륭한 원작이 있는 영화를 원작과 별개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 터, 영화화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끔찍한 이 원작을 잭스나이더는 탁월한 솜씨로 영상화 하는데 성공했다.
전작 "300" 으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감독 대열에 올라선 잭스나이더는 '코미디언'의 살해장면으로 시작 하는 첫 씬 만으로도 적어도 원작을 망치지는 않으리라는, 성급하지만 불안하지 않은 확신을 갖게 한다. 원작에서 매우 집요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된,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한 히어로 집단 (미닛맨 혹은 크라임 버스터즈 로 불리우는) 의 탄생 배경이 오프닝의 짤막한 장면들로 과감히(?) 정리되어 지는 아쉬움은 있지만 원작을 아는 관객들에게는 꽤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선사했으리라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 달러빌이 거추장스럽게 디자인 된 망또가 문에 끼는 바람에 은행강도에게 죽임을 당하는 묘사의 재미가 영화 속에서는 단 한 컷으로 축약 된다. (이렇듯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게 더 큰 재미를 선사할 것이 역력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이 작품의 배경을 모르고 배트맨이나 슈퍼맨 같은 액션히어로를 생각한 관객이라면 매우 당황스럽고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한명씩 돌아가면서 전개되는 히어로들의 개인사가 문어발 처럼 펼쳐지고, 그 중에서도 좀 처럼 와 닿지 않는 '닥터 맨하튼' (최초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이름을 딴) 의 생소한 외모와 심오한 대사들, 그리고 쉽게 다가오지 않는 주제의식. 겉으로 보기에는 도시의 범죄나 부패와 싸우는 버림받은 외로운 영웅들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훨씬 더 무섭고 피하고 싶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주무대인 40~80년대는 세계대전과 월남전,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시대가 이어지면서 개인은 물론 국가간에 '보이지 않는 위협'의 두려움이 팽배해져 가고 있었다. 2차대전 승리의 견인차였던 핵무기 보유가 경쟁적으로 일어나고 3차 세계 대전은 핵전쟁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찬 인류멸망의 시나리오가 써내려 가고 있었다. 영화 자막으로도 번역되지 않는, 특히 역사적으로 통치가 비교적 수월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한 단어인 "자경주의(自警)"는 미국처럼 중앙정부의 치안능력이 미치지 못했던 특수한 상황에 놓여진 나라에서 발생한다. "석양의 무법자" 라는 제목에서 풍겨지듯, 말 그대로 무법 천지였던 서부 역사를 가진 미국은 오래전 부터 자경주의가 뿌리깊어질 수 밖에 없는 토대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신화와 영웅들이 만들어져 왔다.
왓치맨의 영웅 들 역시 그러한 영웅주의 혹은 자경주의의 산물이지만 법집행의 정당한 절차를 무시 하고, 피고인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무자비함, 그리고 자칫 균형을 잃기 쉬운 자경주의자 들의 불완전한 정신상태 때문에 결국에는 스스로 물러나거나 버림을 받는다. 더군다나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수준이 일정 궤도에 오르게 되면 그들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감과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왓치맨]은 '법위의 영웅'이라는 자들의 역할 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벽에 부딪히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류의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이며 또 얼마나 불안한 형태로 유지되어 지고 있는 것인지를 표현한다.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목하에 군사력을 키워가고, 그 군사력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이 극심할 때 비로소 평화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가장 커진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전쟁과 평화라는 것이 결국 위태로운 밸런스를 유지하는 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 [왓치맨]이 훌륭한 이유는 원작이 갖는 깊고 섬세한 묘사들은 적절한 이미지로 잘 묶어 정리하고, 표현하기에 매우 난감한 화성 씬 같은 것들은 최대한 이해도를 높힐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주제의식을 말할때는 조리있고 또박또박하다는 점이다. . 영화 [왓치맨]은 '선택과 집중'의 묘를 최대한 잘 살린 작품이며 원작의 팬으로서 썩 괜찮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이유 이기도 하다. 비록 마지막의 대규모 폭발이 외계인의 침입처럼 묘사되었던 원작과 많이 다르지만 최대한 포커스를 잃지 않고 옮긴것은 감독의 '운영의 묘' 라고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원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중에 하나는 닥터 맨하튼이 로리(실크스펙터)와 화성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인데, 거대한 유리의 성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가 극적인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클라이막스 장면을 보고 있으면 원작에 대한 감독의 애착과 이해도가 어느 정도 인지 깨닫게 된다. 막대한 피의 댓가로 이루어진 평화라는 것, 우리는 병을 치료한다고 말하면서 증상만 치료할 수 밖에 없는 미천하고 이기적인 인간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은 우리를 무겁게 한다.
얼마전에 (존경하는) 이동진 교수가 해가 갈수록 깊어지고 공고해지는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을 보고 있자니 두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왓치맨]을 마주하고 있자니 소위 엄친아를 대하고 있는 심정처럼 부럽기도 하고 기운이 쏙 빠지기도 한다. 다양한 문화와 그 속에서 스며나오는 자유롭고 풍부한 그들의 상상력은, 경직되고 좁아터진 대한민국 의 현실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취향은 편향되고 포용력은 부족해지는 경향이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꽤나 철저히 배척당할 것이 뻔하다.
Filmania CROPP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