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이트를 보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깐 유비, 관우, 장비라는 세 의형제의 활약과 조조라는 악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얘기는 기본적으로 소설이라는 것이다. 삼국지 정사에서 고작 두 줄에 불과하다는 ‘적벽대전’을 역사상 엄청난 전쟁으로 살을 붙인 것도 나관중의 소설이다. 그러므로 삼국지연의를 고려하지 않고 정사를 기본으로 삼는다면 적벽대전이라는 도화지에 어떠한 그림을 그려 넣어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나관중의 소설이 적벽대전을 제갈공명의 신묘한 재기와 이를 질투하는 주유의 대립을 위주로 그렸다면, 오우삼 감독이 그린 적벽대전은 기본적으로 영웅(남성)과 영웅(남성)의 대립, 그리고 참혹한 전쟁의 끝에 찾아오는 짙은 허무를 그리고 있다. 그러니깐 <적벽대전>은 오우삼 감독이 만들어 온 기존 영화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오우삼 감독이 그린 대립의 축은 공명과 주유가 아닌, 공명-주유를 한 축으로 한 조조와의 대립이 중심이다. <적벽대전>에서의 조조는 삼국지연의에서 그려지듯 잔머리 뛰어난 악인이 아니라 비록 적일지언정 의리를 알고, 신의를 지키는 영웅의 풍모를 가지고 있다. 비록 그는 주유의 책략으로 수전에 능한 채모의 목을 베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배포와 지략을 뽐낸다.
삼국지연의에서 내내 대립하는 공명과 주유는 영화 <적벽대전>에선 아름다운 가야금 합주가 상징하듯 은유와 비유로서 톱니바퀴 같은 조화를 일구어 나간다. 말없이 통하는 둘의 관계는 마치 염화시중(拈華示衆)의 경지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한 편으로 손권의 입장에서 보자면 <적벽대전>은 일종의 성장 영화다. 손권은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조에게 ‘어린 애’라는 치욕적인 말을 듣기도 하지만, 마지막 그가 날린 화살은 손권이 당당히 세 다리의 한 축을 담당할 만큼 성장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오우삼의 해석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소설을 통해 익숙해진 여러 에피소드들이 빠진 건 어쨌거나 아쉬운 지점이긴 하다. 즉, 노장군 황개의 고육지책이라든가, 공명에 버금간다는 방통의 연환지계, 패배한 조조군이 후퇴하는 길목마다 매복해 있던 조자룡, 장비, 관우가 조조를 공격하는 장면 등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특히 그러하다.
정사는 아니지만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의 100만 대군 중 고작 27명만이 살아서 도망쳤다고 한다. 어느 정도 부풀려졌다고 해도 엄청난 인명이 희생됐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삼국지의 하이라이트가 적벽대전이고, 적벽대전의 하이라이트가 연환지계라고 할 때, 영화 <적벽대전>에서 불에 타는 적벽을 보기 위해 가는 여정은 꽤나 늘어지고 나름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그리고 쳐내도 별 무리 없는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하이라이트는 인내심을 극복할 만큼의 시각적 쾌감을 안겨주지도 못한다. 누군가는 더 태웠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전쟁씬이 부실하다고 여겨지는 건, 기다림에 지쳤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속에서 벌어진 엄청난 살상 장면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유(양조위) 공명(금성무) 장첸(손권) 등의 눈에 비친 쓰러진 병사의 모습이나 조조(장풍의)의 눈에 비친 모습이나 특별히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오우삼 감독이 마지막 전투 장면에 죽어가는 병사의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다각도로 비춘 건 분명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얻어지는 권력의 무상함을 그리고자 한 의도라고 보인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죽자 살자 싸우던 상대를 쿨하게 보내주는 건 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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