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묵은 때까지 씻겨준다... ★★★★
세상에. 영화를 보고 나서 일단 감탄이 먼저 나온다. 최근에 본 그 어떤 영화보다 <버터플라이>는 착해도 너무 착한 영화이고, 말 그대로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가족이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가족 영화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고 하든가. 이 말이 노인과 아이의 동일성에 주목하는 말이라고 하면 반대로 아이는 강아지와 닮았고, 노인은 고양이와 닮았다고 하는 말은 노인과 아이의 차별성에 주목하는 말일 것이다. 이는 그만큼 노인과 아이는 다르면서도 닮은꼴이라는 것이고, 둘을 붙여 놓은 모습만으로도 많은 얘기들이 솟구치는 원천일 수 있다는 얘기다.
불행은 아이를 성숙하게 한다는 노인 줄리앙(미셸 세로)의 말처럼 미혼모인 엄마 밑에서 거의 혼자 생활하는 엘자(클레어 부아닉)는 또래에 비해 무척이나 되바라진(?)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인지라 궁금한 건 도저히 참지 못해 들어가지 말라는 방에 들어가기도 하고 쉬지 않고 떠들어 대며, 심지어 어렵게 잡은 이자벨을 놓침으로서 할아버지의 화를 돋우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둘은 좋은 친구가 되고 좋은 동반자가 된다.
과거의 아픔을 담고 있는 할아버지와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어린 소녀가 만나 동행을 한다. 둘은 외로움이라고 하는 동일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둘의 목표는 이자벨이라고 하는 희귀 나비를 잡는 것이다. 동행 과정에서 둘은 투닥거리고 오해를 하기도 하지만, 서로 이해하면서 좋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엘자는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엄마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토록 둘이 찾아 헤매던 소중한 보물은 알고 보니 바로 근처에 있었다. 너무 뻔하다고? 솔직히 말해 이 영화의 전개 과정이라든가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거기에 처음엔 연락을 하기 위해 노력하던 줄리앙이 충분히 연락을 취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집으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설정도 좀 무리하다.
이야기가 뻔한 만큼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지루하다. 특히 줄리앙과 엘자가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이자벨을 찾기까지는 이야기의 고저도 없어 심심한 편이다. 그런 심심한 공간을 메우는 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아이의 마음이다. 엄마 사슴과 아기 사슴을 줄리앙과 엘자가 숲에 숨어서 몰래 보고 있다. 이 한편의 그림 같은 풍경을 깨는 건 한 방의 총성. 어디선가 나타난 사냥꾼이 사슴을 메고 간다. 줄리앙은 “나쁜 밀렵꾼”하며 화를 낸다. 얼마 뒤 줄리앙은 나비를 잡아 병 속에 가둔다. 엘자는 줄리앙에게 “밀렵꾼”하며 사냥꾼을 향한 줄리앙의 비난을 고스란히 돌려준다. 아이가 보기에 이유가 뭐든 사슴을 해치는 사냥꾼이나 나비를 잡아 표본을 뜨는 줄리앙의 행위나 똑같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생태적이다.
왜 줄리앙이 이자벨에 집착하는지는 영화 후반부가 되어야 밝혀진다. 그 이유는 관객의 마음을 촉촉히 적시지만, 예상하지 못할 뜻밖의 이유는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전형적이며 뻔하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묵은 때까지 씻어주는 영화의 착함과 따뜻함마저 훼손되는 건 아니다.
※ 영화를 보고 나서야 줄리앙 역을 맡았던 미셸 세로가 2007년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정이 많은 할아버지 연기, 특히 천 뒤에서 펼치는 그림자극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뒤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가끔은 짜증나기도 하지만, 엘자 역을 맡은 클레어 부아닉의 연기는 정말 귀엽다.
※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마자 나오는 미셸 세로와 클레어 부아닉이 함께 부르는 귀여운 노래는 오래 전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1980년대 초반인가 안소니 퀸과 한 아이가 같이 부른 노래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 아이가 물어보고 아빠가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던 이 노래는 한국에선 최불암과 정여진이 <아빠의 말씀>이라는 노래로 번안해 부른 바 있다. <버터플라이>에서 나오는 노래도 아이가 물으면 할아버지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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