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다... 사랑스럽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 만에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연령대가 낮은 <벼랑 위의 포뇨>로 돌아왔다. 다섯 살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또 비슷한 연령대를 겨냥한 때문인지 스토리는 지극 단순하고, 그림도 전체적으로 부드러워지고 단순해졌다. 분명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를 경배했던 기존 팬이라면 어느 정도 실망한다거나 미흡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벼랑 위의 포뇨>는 보는 내내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행복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마력을 발휘한다.
아빠 몰래 해파리를 타고 외출을 나간 물고기 소녀 포뇨는 저인망 그물(아니면 청소용 그물인지 좀 애매하다)에 걸려 유리병 속에 갇히게 된다. 때마침 해변에 놀러온 소년 소스케는 포뇨를 발견하고 친구가 된다. 아빠 후지모토에게 끌려 다시 바다로 돌아간 포뇨는 인간이 되어 소스케와 지내고 싶은 마음에 거대한 파도(쓰나미)와 함께 소스케에게 돌아간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벼랑 위의 포뇨>엔 당연하게도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이 담겨져 있다. 내가 생각하는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은 지구 또는 세상은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환경 그리고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요괴들, 괴물들이 같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점이다. 그 세계는 모두가 주인이고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세계관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헬보이2>의 움직이는 거대한 나무를 보면 자연스럽게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환경 우화가 연상된다)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작품 속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감독의 작품이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능숙함이 그리고 진정성이 그의 작품엔 있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의 바다는 생명이 잉태하고 모든 걸 품에 안는 넉넉한 존재로 자리 잡는다. 심지어 쓰나미조차 달음박질하는 포뇨와 함께 물고기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으며, 쓰나미가 몰아친 결과는 폐허가 아니라 깨끗해진 물, 고생대의 생물이 등장하는 일종의 판타지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스토리를 보면 알겠지만 <벼랑 위의 포뇨>는 동화 <인어공주>의 미야자키 하야오 식 재해석 버전이다. 그러나 물에 빠진 왕자를 살리고 사랑에 빠졌지만, 끝내 공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왕자와 그로 인해 결국 물거품이 되어 버린 비운의 인어공주 이야기처럼 <벼랑 위의 포뇨>는 아이들 마음에 조그마한 생채기도 내지 않는다. 소스케는 자신의 손가락을 고쳐 준 포뇨에 대해 고마워하고 끝까지 보호해 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포뇨가 돌아간 다음에도 포뇨를 담았던 녹색 양동이를 집 밖에 걸어두고 언젠가 찾아올 포뇨를 배려하며 포뇨는 그런 녹색 양동이를 내내 가슴에 품고 다닌다. 바다의 여신인 포뇨의 엄마가 소스케에게 “포뇨가 인어라도 괜찮니?”라고 묻자 “무엇이라도 괜찮다”고 대답하는 소스케의 모습은 숱한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들에 대한 따가운 일침이다.
무엇보다 <벼랑 위의 포뇨>는 포뇨라는 캐릭터로 인해 너무도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단적으로 지금까지 나온 물고기 캐릭터 중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그건 당연하게도 포뇨의 차지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 눈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만약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니는 아이나 조카가 있다면 당장 손을 잡고 <벼랑 위의 포뇨>를 같이 보길 권한다. 아이와 함께 ‘포뇨~~ 포뇨~~’하며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며 아이와 같은 얘기를 하며 같은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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