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를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 처럼 영화 '렛미인'은 재생지에 쓴 연필 글씨 처럼 검소하게 문을 연다. 마치 그 안에는 뭐 별개 없다는 듯 조용히 그냥 하얀 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너무 조용한 시간이 흐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우리는 스크린 위쪽 어딘가에 하늘이 있었나 하며 자연스레 시선이 점차 위로 향한다.
똑하고 부러질 듯한 하얀 살결의 소년 오스칼은 왕따 소년들의 마음속에 늘 자리잡고 있는 복수의 칼날로 수도 없이 마음속 살인을 저지르고. 차갑고 깊은 밤에 마을로 숨어들어온 소녀 이엘리는 들끓는 흡혈의 욕구를 이기지 못하는 생존의 위협에 오늘도 살인을 저지른다. 뱀파이어로 변해버린 딸자식을 위해 또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들의 목을 따야하는 애처로운 아버지,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이웃들의 가여운 모습.
하지만 영화 '렛미인'은 그렇게 상상만으로도 살갗에 와닿을 듯한 모습들을 마치 먼 풍경 바라보듯 그렇게 원경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결코 호러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비록 뜨거운 피를 서걱거리며 빨아대는 광경일지라도 그것이 영하 수십도의 설경위에서 펼쳐진다면 어느 누가 그 광경에 심장을 데일 것인가.
가슴이 시리도록 여린 소년과 소녀, 그리고 그 어린 것들에게 던져진 잔혹함과 지독스런 외로움은 저것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배고픔에 하얗게 시들어가는 소녀의 애처로운 몸짓을 보고 있자면 흡혈의 두려움은 커녕, 선뜻 한쪽 팔 쯤은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갈 곳없이 헤매던 어린 영혼은 또 하나의 슬픈 영혼을 만나 '내가 너가되고, 너가 내가 되어줌' 으로서, 모습은 전혀 다르지만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낮과 밤 같은 존재가 된다. (기억에 오래 남을 것으로 확신하는) 마지막 수영장씬에서 소년의 부드러운 미소와 소녀의 강렬한 눈빛이 재회하는 장면은 관객들의 마음속 저 아래 고여들던 슬픔과 안타까운 감정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길어올려 격려와 안도의 그릇으로 이끈다.
영화 '렛미인'은 차가운 유리알처럼 맑은 아이들이기에 그 진한 외로움과 고통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아련하게 다가온다. 휘발적인 잔상에 그치는 감정의 폭발도, 찢기는 비명도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빈속에 차가운 물을 삼키듯 그렇게 온몸을 감싼다.
어떤 영화장르와도 다르면서 또 한편으로는 모든 영화장르이기도 한 이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는 살아있는 생명체 처럼 서늘한 피부와 그 속을 흐르는 온기를 가졌기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이 묘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뜨거운 원두커피 한잔을 손에 쥐고 조금씩 마시면서 함께 한다면 아마 이 겨울의 문턱에 선 당신, 정말 아름답고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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