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영웅은 전환기에 등장하는 법... ★★★☆
최소한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보면,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는 성실한고 소박한 가장이다. 결코 사치하는 법도 없고,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일정을 소화해 낸다. 그리고 항상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과 함께 한다. 그런 프랭크 루카스는 피도 눈물도 없는 갱이다. 반면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우)는 집안은 엉망이고 이혼남이며, 여색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리치 로버츠는 결코 로비가 통하지 않는 정의로운 형사다. 즉, 완전히 상반된 듯한 둘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철저한 직업의식이랄 수 있다.
프랭크 루카스가 마약사업으로 큰돈을 벌던 당시는 이탈리아 마피아와 흑인 갱단이 서서히 세력 교체하던 시기였다. 아니, 프랭크 루카스가 바로 그 세력교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값싸면서도 질 좋은(?) 마약이 대량 유통되고 있음에도 경찰들은 프랭크 루카스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이들의 관심은 주로 기존 어둠의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이탈리아 마피아들에게 쏠려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사준 화려한 모피를 입고 권투경기를 관람한 프랭크는 단숨에 경찰의 시선을 끌게 된다. 단 한 번의 실수로 그의 기반은 흔들거리고, 수사망을 좁혀오는 리치 로버츠에 대한 어설픈 로비 시도는 오히려 자신의 목을 더 옥죄게 만든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거창한 제목이 의미하듯 프랭크로 대표되는 미국 흑인 갱스터의 초장기 역사를 세밀하게 살핀다. 세밀하게 살핀다는 건 제목이라든가 분위기에서 기대되는 거창한 액션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음을 의미한다. 액션 장면 대신에 영화가 택한 건 당시 시대의 철저한 고증과 재현 그리고 묵직함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덴젤 워싱턴, 러셀 크로우라는 두 배우로 인해 무게감이 가중된다. 특히 리들리 스콧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기도 하는 러셀 크로우는 사실상 주연이 아닌 조연을 맡고 있음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만의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상영 시간이 156분에 달함에도 <아메리칸 갱스터>는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걸출한 두 주연배우는 영화가 끝나는 시점까지 서로 조우하지도 않고 각자 묵묵히 자신의 역할만을 수행하는데도 둘이 내뿜는 긴장감은 충분히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물론 캐릭터 상의 허점은 존재한다. 특히 러셀 크로우가 분한 리치 로버츠가 왜 이리도 정의로운 형사인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프랭크와 리치가 조우한 이후에 전개되는 상황은 다른 영화에서 많이 봐 왔던 전형적인 구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화려한 액션으로 치장, 눈요깃거리로 빠질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친 <아메리칸 갱스터>는 그런 의미에서 오래가는 명품으로서의 충분한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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