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에 박찬욱감독이 참여를했고 봉준호감독이 까메오로 나오며
단편영화로 실력을 인정받은 보기드문 여류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소식에
이거 놓치면 후회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초반부까지는 브리짓일기시리즈의 한국판인가 했다.
콤플렉스 덩어리의 한 여자가 누군가를 짝사랑하면서 많은 해프닝들이 벌어지는데
마치 뭔가 또 시시콜콜한 소재를 비슷한 방식으로 재탕하려는건 아닐까하는 불안한 기운이
엄습하기도 했다.
어라? 그런데 슬슬 뭔가 하나씩 튀어나온다. 후반부로 치닫을 수록 분명해지는건
곧 노처녀라는 딱지가 붙을 29살 우울한 삽질여인의 성공기가 아니요,
그렇다고 학창시절 왕따의 인생역전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영화,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아주 막나간다.
막나간다는건 대놓고 비상식적라는 말이다. 비상식적인데 몰입이 된다.
코미디 영화가 나에게 있어서 비상식적인데 몰입까지 잘된다는건
최고의 호평이다. 뻥뻥 터진다는 얘기다.
(잘 안웃는 사람도 최소한 라이터에선 터진다.)
상식을 깨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영화의 흐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소재는 진부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굉장이 신선했고 예측할 수 없었다.
여감독이 메가폰을 잡아서 그런지 여자들의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변화들을 놓치지 않고 스크린으로 잘 끄집어 냈는데
이부분에선 남자인 나보다는 여자들이 더욱 공감하고 재밌었을거라고 본다.
또한 그렇기에 여자들은 보면서 살짝 눈물이 고일 수도 있겠다.
작정하고 관객들을 웃길려고 만든 코미디영화들이 있다.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역효과를 내다가
본연의 길을 잃고 졸작이 되기 마련이다. 어떤 작품은 웃기는게 잘 안되니 울리기라도 해보자며
이판사판 신파극으로 마무리짓기도한다. 돈낭비, 사람낭비다.
미쓰 홍당무는 진지하다. 작정하고 웃길려고 하지 않는다. 신파극으로 치닫지도 않는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이 그렇다. 어떻게 보면 영화속 인물들은
힘든 상황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볼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들 또는 우리 주변에 꼭 있을 법한
사람들과 많이 닮아 있기에 웃음의 강도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었던건 아닐까.
겨울에 얼어붙은 거리를 걷다가 뜬금없이 누군가 훌러덩~ 넘어질때
뿜어져나오는 웃음참느라 고생해본 사람들 많을 것이다. 일상의 진지함 속에서 나오는
뜬금없는 소소한 사건들이야말로 진정한 코미디를 이루는 근간이 아닐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사회의 의지로 탄생된 미숙아. 안면홍조증에 걸린 양미숙의 고군분투기.
그녀는 같이 울어달라고 애원하지만 관객은 웃는다.
쓸데없는 메세지 전달과 웃겨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영혼의 간지럼을 구사하는
한국코미디영화의 수작.
미쓰 홍당무 - 2008
ps. 남자든 여자든 저처럼 재밌게 보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내가 지금 왜 이걸 봐야하나라고 떨떠름하신 분들도 많을겁니다.
마치 영화속 양미숙을 피해다니는 피부과 의사 박찬욱처럼 말이죠.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