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찾아 나선 아버지의 모험담... ★★★☆
오래 전에 봤던 <니모를 찾아서>를 굳이 다시 보게 된 것은 <월ㆍE>의 감독인 앤드류 스탠튼이 <니모를 찾아서>를 감독했다는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클라운 피쉬인 말린은 아내 코랄과 함께 2세의 부활을 기다리던 중 상어의 습격을 받고 아내와 많은 알들을 잃는다. 그에게 남은 건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개의 알. 말린은 그 알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아내가 아이의 이름으로 희망했던 니모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놉시스에 자세히 나와 있다. 아마 모든 영화의 시놉시스 중에서 <니모를 찾아서>의 시놉시스만큼 자세히 나온 건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줄거리를 다 알고 본다고 해도 특별히 무리가 없다. 그리고 <니모를 찾아서>는 설명을 듣는다고 해도 직접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시놉시스에 나온 것처럼 <니모를 찾아서>는 치과의사의 수족관에 갇혀 있는 아들을 구하러 나선 아버지의 모험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모험의 강도도 일개 물고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 있다. 영화 속 바다는 너무나 위험한 곳이라 단 한 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공간이다. 상어가 출몰하며, 아귀가 덤벼든다. 고래의 입 속에 빨려 들어가기도 하고, 갈매기의 공격을 받는다. 마치 우리들이 살아가는 거친 사회를 그대로 재현한 듯 보이는 바다 속 풍경.
물론, 픽사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는 모두가 예상하는 뻔한 얘기를 전복시킨다. 무섭게 생긴 상어는 알고 보니 ‘물고기는 먹을 게 아니라, 친구’라며 얘기하는 채식주의 지망생들이고, 아귀가 먹이를 유혹하는 밝은 미끼는 니모의 소재를 알 수 있는 후레쉬로 이용된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 각각의 캐릭터들은 놀랍게도 구체적이며 살아 숨 쉰다. 그 중에서 말린이 니모를 찾아 나선 길에 뜻하지 않게 동행자가 된 단기 기억 상실증의 도리는 관객의 웃음을 터트리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린이 떠나고 난 후 “내가 누구지? 여기가 어디지?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데 그게 뭔지 기억이 나지 않아”라고 주절거리는 도리의 모습은 웃음을 넘어서서 보는 관객의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그리고 ‘아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린의 약속을 ‘웃긴 약속’이라며 부모들의 교육 철학에 일침을 가하고, 니모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헤엄쳐야 해”라고 용기를 불어 넣어준다.
아들을 찾아 나선 아버지의 모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에서 내 관심을 가장 집중시킨 건 니모라는 캐릭터였다. 니모의 지느러미는 양 쪽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한 쪽은 짧고 다른 쪽은 길다.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 장애를 앓고 있는 니모에 대해 이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버지가 니모의 장애에 대해 걱정한다든가 수족관에서 만난 길이 장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난을 헤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지만 잠깐이며 니모의 장애를 가지고 별로의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였다면 니모의 장애로 인한 사회적 편견과 극복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실제를 반영한 측면이라고 생각된다. 주위에 양 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는 아는 형이 있다. 주로는 휠체어를 이용하며, 짧은 거리인 경우 목발을 짚고 다니기도 한다. 이 형과 예전에 런던을 잠깐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장애를 대하는 한국과 일본과 미국 내지는 유럽의 차이점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실제 이 형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한국은 거리를 장애인이 다니는 거 자체가 끔찍할 정도라고 하고, 일본은 많은 관심을 보이며 서로 도와주려 한단다. 그런데, 미국에 갔더니 너무 무관심하더란다. 그래서 처음엔 그게 좀 서운하기도 했었는데, 정말 자기가 도움이 필요할 땐 어김없이 주위 사람들이 나타나 도와주는데, 이 사람들 눈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게 별다른 특이사항으로 인식되지 않는 거 같아 나중에 더 편해지더란다. <니모를 찾아서>의 많은 물고기들은 처음 만난 니모에게 ‘너는 왜 지느러미가 다르니’라고 물어보는 일 조차 없다. 우리는 가끔 나와 다른 걸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건 다른 것일 뿐이다. 그건 결코 잘못되거나 틀린 게 아니다.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물고기들은 이 상식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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