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로봇의 사랑... ★★★★☆
오염으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인류가 떠나면서 실수로 전원을 끄지 않아 홀로 남겨진 로봇이 있다면? <월이>의 전제가 되는 이 얘기는 1994년 픽사 창립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의 하나로 책상 위에 던져진 것이라고 한다. 픽사의 창립 작품은 <토이 스토리>로 결정되었지만, 너무나 외로운 로봇에 대한 이야기는 <토이스토리>와 <몬스터 주식회사>의 각본을 쓰고, <니모를 찾아서>를 감독한 앤드류 스탠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니모를 찾아서>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자, 그는 결국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왔던 외로운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애닮은 사랑이야기
너무나 사랑스럽고, 애처롭고, 안쓰러우며, 계몽적인 애니메이션 <월이>는 무엇보다 애닮은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는 월이가 첫눈에 이브에게 사랑에 빠지는 게 조금은 작위적인 거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하곤 하는데, 난 이 부분을 ‘군인들은 치마만 두르고 있으면 할머니건 아줌마건 환장한다’와 동일한 심리적 발동이라고 본다. 고작 20여 개월, 그것도 몇 개월에 한 번 외박과 휴가를 나오는 군인도 그럴진대, 700년 동안 바퀴벌레 외에는 혼자서 모든 걸 감내해야 하는 ‘외로운’ 월이가 매끄럽게 잘 빠진 이브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일 터이다.
그렇다면 월이와 이브의 만남과 사랑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그것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 기계 산업과 IT 산업의 만남이며,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환경에 대한 경고와도 연관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랑은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당사자의 변화를 넘어서서 월이의 사랑은 결국 인류의 지구 귀환을 가능하게 한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처음 월이는 이브라는 이름의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브는 몇 차례나 가르쳐주지만 월이는 ‘이~~???’. 아무튼 제대로 발음을 할 수 없다. 왜냐면 월이는 그저 자신의 이름 정도(사실은 상품명)나 말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월이는 거의 정확하게 ‘이브’라고 발음한다. 사랑은 이처럼 타고난 한계마저도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다.
월이는 아이포드로 오래된 뮤지컬 <헬로, 돌리>를 감상한다. 이 뮤지컬에서 월이가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은 바로 두 남녀가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서로 손을 잡는 장면이다. 영화의 제작진이 인간과 로봇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사랑을 서로의 손을 잡는 행위로 그린 것은 매우 영리한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접촉만큼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이성과 사귀고 싶으면 자주 몸을 접촉하라는 조언도 있다. Love Is Touch, Touch Is Love (John Lennon의 <Love>).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새롭게 리셋되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월이의 손을 이브가 잡자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은 그래서 너무 감동적이다.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 - 영화 <이터널 선샤인>)
거대한 환경 우화
그저 가볍게 <월이>를 로맨스 영화로 감상해도 좋지만, 이 영화가 그려내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영화를 보고 나서 한번쯤은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거나 하지는 않으니깐. 영화는 처음, 넓은 우주공간에서 수많은 인공위성과 우주 쓰레기들로 둘려 싸여 있는 지구로 시선을 좁혀 온다. 지구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자그마한 쓰레기 폐기물 처리 로봇인 월이와 그의 애완곤충(?)인 바퀴벌레 뿐.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감정도 없는 기계일 뿐인 로봇과 밟아 죽여야 마땅한 바퀴벌레가 생존해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부터가 좀 의미심장하다. 거대한 쓰레기 마천루를 배경으로 깔리는 음향효과는 음산하며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실감나게 한다. 그리고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욱 두려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우리는 파편적으로 던져지는 정보들로 인해 어떻게 해서 지구가 이렇게 된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사실상 정부를 대신해 통치하는 것은 거대 다국적 독점 기업, <Buy And Large(BNL)>. 쓰레기로 인해 살 수 없게 된 인류는 5년 후에 귀환할 것을 약속하고 거대한 우주선 액시엄을 이용, 우주로 피난 생활을 떠난다. 그러나 5년을 기약했던 귀환은 700년이 넘도록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외롭게 혼자서 쓰레기를 치우며 살던 월이가 이브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1막이라면 2막은 이브를 따라 액시엄에 간 월이의 활약상이다. 액시엄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곳엔 바로 지구 자원을 마음껏 쓰며 환경을 해치다 결국 지구를 쓰레기더미로 만든 우리의 후손들이 기계문명이 제공하는 안락한(?) 환경에 빠져 괴물이 되어 버린 모습이다. 여기에는 로봇과 인간의 도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랑을 찾아 모험 끝에 우주선에 들어온 인간 같은 로봇 월이와 여전히 쓰레기로 우주를 더럽히고, 철저하게 프로그래밍화된 기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인류. 우주선에 사는 인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의자에서 내려오는 법이 없고, 모든 걸 기계가 제공하는 것에 의존한다. 직접 걷는 일도 없으며, 바로 눈앞에 수영장이 존재하는 줄도 모른다. 서로의 손을 잡아 본 적도 없고, 사람이라든가 취미는 컴퓨터 화면에 존재하는 가상 현실일 뿐이다.
이들이 지구 귀환의 신호로 삼고 있는 것은 식물의 존재이며, 탐사 로봇인 이브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얘기했던 아날로그(월이)와 디지털(이브)의 만남은 어떻게 환경에 대한 경고와 연관되는 것일까? 오래전 우리 집에는 진공관으로 된 20년이 넘은 전축이 있었고, 10년이 넘은 문이 달린 TV가 있었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명품으로, 예술로 인정받는 제품들이 있었다. 라이카 카메라가 그렇고, 진공관 오디오들이 그렇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 제품들은 그저 제품일 뿐이다. 이제 어떤 물건이든지 10년 이상 사용되는 제품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가격이 싸지도 않은 많은 디지털 기기들은 출시된 지 조금만 지나면 급격하게 낡은 중고품이 되어 버리고, 버려진다. 월이는 이름이 아니라 사실은 제품명에 불과하다. 이브 역시 마찬가지다. 이브를 찾아 액시엄에 들어간 월이는 그곳에서 똑같이 생긴 여러 대(?)의 이브를 만나지만, 월이가 사랑하는 건 오로지 자신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브 밖에는 없다. 디지털에도 사랑을 불어 넣으면 무수한 동종 제품 중 그 제품만이 나에겐 특별하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도 그럴 수 있을까? -,-;;
어쨌거나 디지털 시대에 들어오면서 인간들의 소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그 첨병은 뭐니 뭐니 해도 미국이다. 미국은 전체로서만이 아니라 일인당으로 따져도 최고의 CO2 배출국가이고, 최고의 석유 소비량을 과시하고 있으며, 최고의 일회용품 사용량을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업들의 로비에 막혀 환경규제에 대해선 소극적이다. 그러다보니 환경관련 기술 개발 투자에 미흡했던 미국 자동차기업들은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해 환경 규제를 느슨하게 적용한 것이 오히려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회의 마이너리티, 비주류, 내지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 액시엄의 선장은 식물의 존재를 확인하고 지구 귀환을 추진하지만, 일부 로봇의 저항을 받는다. 선장을 도와 지구 귀환을 위해 노력하는 건 뛰어난 전투로봇이나 똑똑한 상황 통제 로봇이 아닌 폐기물 수거 로봇 월이, 식물 탐사 로봇 이브, 미생물 박멸 로봇 모, 그리고 많은 불량 로봇들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로봇들의 캐릭터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물론, 오랫동안 액시엄에서의 삶에 적응해왔던 인류가 이곳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지구 귀환을 결정하게 되는 과정은 좀 느닷없으며, 설득이 부실하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인류를 설득하려는 영화가 아니며, 영화를 보고 있는 현재의 인류를 설득하기 위한 영화라는 사실이다. “이런 미래를 향해 그냥 달려갈래. 아니면 지금이라도 잠깐 멈추고 다른 미래를 만들기위해 노력해 볼래?”
당연하게도 지구 자원은 유한하다. 그래서 <월이>가 그리는 미래는 단순히 만화적 상상력만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런 암울한 미래는 생각보다 빨리 도래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월이>의 인류는 우주로 피해갈 거대한 우주선이라고 있지만, 실제 대부분의 인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에서 그냥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어서인지 미국 보수 세력은 <월이>가 반자본주의, 반미국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감독은 말한다. “쓰레기를 줄이고 인간답게 살자는 것에 무슨 대단한 정치적 해석이 필요한가. 그걸 이해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단 하나, 상식뿐이다”
무슨 애들(?) 만화영화가 왜 이리 무겁냐고 푸념할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멜로 영화이며, 월이의 모험담을 담은 어드벤처 영화로서 최고의 재미와 감동을 만끽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다크 나이트>와 <월이> 중 굳이 한 편을 선택하라고 하면 <월이>를 선택하겠다) 영화의 처음 부분은 픽사 애니메이션의 전통에 따라 <프레스토 Presto>라는 제목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며, 월이가 우주여행을 하며 토성의 띠를 만지는 장면이라든가 월이와 이브가 우주에서 유영을 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한 편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마도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만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재밌게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지구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거창한 일이라면 부담 때문에라도 실천하기 힘들겠지. 그냥 나 혼자라도 조금만 쓰레기 줄이고 조금만 육식을 줄이자. 이것도 쉽진 않겠지만.
※ 월이, 이브, 모는 로봇들의 이름이 아니라 제품명이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월ㆍE : 지구 폐기물 분리수거 로봇(Waste Allocation Load Lifter-Earth Class)
- 이브 : 외계 식물 탐사용 기계(Extra-terrestrial Vegetation Evaluator)
- 모 : 미생물 박멸 로봇(Microbe Oblite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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