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기묘하게 지루하네..... ★★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의 사연이야 익히 아는 이야기다. 군 관련 실험 중 감마선에 노출된 과학자 브루스 배너는 화가 나면 통제 불능의 거대한 녹색 괴물, 헐크로 변한다. 군 당국은 배너의 안에 들어 있는 녹색괴물을 이용, 슈퍼 솔저를 만들려 하고 배너는 정체를 숨긴 채 도망 다닌다. 영화에선 도입부의 짧은 시간에 헐크의 탄생 비화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장 신나고 재밌는 부분이 바로 이 도입부이다. 도입부가 끝나면 이미 도망자가 되어 있는 배너의 현실을 보여주며 본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에서 주요한 액션 시퀀스는 3개로 브라질의 한 공장에서 배너를 잡으려는 군인들과 부딪치는 장면, 베티와 같이 있다가 대학 교정에서 군인들과 대치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어보미네이션을 무찌르기 위해 스스로 헐크가 된 배너가 최후 결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액션 장면만 놓고 본다면 <인크레더블 헐크>는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과시하고는 있다. 헐크가 집어던지는 자동차에 맞을 까봐 몸이 움찔했을 정도였으니깐. 그래도 손뼉으로 불을 끄는 장면은 너무 과했다. 문제는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이 긴장감이 없이 맥 빠지고 지루하며 느슨하다는 점이다.
영화는 마치 3개의 액션 장면을 적당한 시간대에 배치해 놓고는 액션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음 액션 장면으로 가기 위해 대강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을 준다. <디워>를 보진 않았지만, 어떤 글에서 진중권 교수가 ‘디워는 특수효과를 과시하기 위한 장면을 적당히 배치한 영화같다’는 평이 생각나게 하는 지점이다. 물론 영화 여기저기에 꽤 흥미로운 요소들이 담겨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런 흥미로운 요소들조차 창의적이라고 평가해주긴 힘들다. 예를 들면, 스스로 원치 않았음에도 슈퍼 파워를 가지게 된 배너가 도망 다니면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다는 설정은 <스파이더맨>을, 사랑하는 베티와 함께 산속 동굴에서 비를 피하는 장면은 <킹콩>을, 좁은 골목을 뛰어 다니는 숨 가쁜 추격전은 <본 얼티메이텀>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인크레더블 헐크>가 지루하게 느껴졌던 건 웃음이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요즘 나온 블록버스터 슈퍼 히어로 영화 중 이렇게 유머 감각 없는 영화를 본 적 있는가? 내 기억엔 없다. 헐크라는 존재가 인간들 내부에 존재하는 폭력적 성향의 외화라는 점에서 과거 TV드라마인 <두 얼굴의 사나이>에 사회적 명제를 적극적으로 부여하기도 한다. 만약 영화도 그런 의도로, 그런 주제를 전면에 내건 영화라고 하면 이해해줄만도 하련만, <인크레더블 헐크>는 그런 진지한 영화가 아니다. 웃음이 없다면 진행의 속도감이라도 빨라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다.
내내 썰렁한 농담 한 번 없이 진행되던 영화는 후반부에 와서야 농담이랍시고 약간 풀어진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미 표정이 굳은 관객은 웃을 줄 모른다. 그나마 영화에서 관객들이 가장 크게 반응을 보인 장면은 헐크가 아닌 존 스타크(아이언맨)가 나온 마지막 장면이었다. 거대한 녹색 괴물이 도심을 가로지르며 장쾌한 액션을 선보인다. 그런데 영화는 기묘하게 지루하다. <본 얼티메이텀>과 <아이언맨>이 왜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는지 <인크레더블 헐크>는 두 영화에서 배운 게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인크레더블 헐크>는 반면교사의 역할에 충실하다.
※ 2003년판 헐크를 만든 이안 감독은 처음에 주인공으로 에드워드 노튼을 캐스팅하려 했으나 노튼이 고사한 사실이 있다. 에드워드 노튼을 유명하게 만든 <프리미얼 피어> 이후 두 얼굴의 사나이 하면 누구나 에드워드 노튼을 먼저 떠올리게 되나 보다.
※ 리브 타일러의 등빨은 좀 부담스럽다. 헐크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헐크가 두 명처럼 느껴진다. 반면, 스스로 괴물로 변하는 블론스키 역의 팀 로스는 단독으로 걸어 나오는 장면에선 꽤 그럴싸한데, 다른 배우들과 같이 놓고 보면 너무 왜소해 안쓰러울 정도다. 주사를 맞기 위해 윗옷을 벗었는데, 역시 갈비씨. 그런데도 미국 최고의 특수요원이라니. 좀 안습.
※ 배너 박사가 자신의 데이터를 찾기 위해 피자 배달부로 변신한 채 대학 연구소로 들어가려고 경비원에게 피자 한 판을 뇌물로 안긴다. 씩 웃는 경비원의 얼굴. 어디선가 본 듯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바로 TV드라마 <두 얼굴의 사나이>에서 헐크역을 맡았던 루 페리그노라고 한다. “반갑습니다~~~” (이 부분은 시나리오상 확실히 허술하다. 첨단 연구를 맡고 있는 연구소 출입과 컴퓨터를 만지는데 고작 피자 한 판으로 다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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