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디 포스터,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총을 들다....
아름다운 도시 뉴욕을 예찬하는 라디오 진행자 에리카 베인(조디 포스터)은 애인과의 결혼을 눈앞에 두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영화가 으레 그렇듯이 참혹한 비극이 발생하기 바로 직전의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은 지나칠 정도로 감미롭게 그려지고는 한다. 아마도 그래야 그 다음에 닥칠 비극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지며, 그로 인한 주인공의 분노가 공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이런 식의 묘사는 이런 식(!)의 영화에 일종의 법칙화된 묘사인 듯하다.
결혼반지를 받고 청첩장을 주문하는 등 감미로운 나날이 비극적 사건으로 종지부를 찍은 후 극중 머서 형사(테렌스 하워드)의 말처럼 '범죄 피해자의 다수가 삶에 복귀하지 못하는' 상황이 에리카에게도 발생한다. 그 전까지 어느 도시보다 안온한 삶을 제공했던 도시 뉴욕은 이제 공포의 도시, 범죄의 도시로 탈바꿈했으며, 거리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에리카에게는 잠재적 범죄자로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힘들게 거리로 나와 권총을 구한 에리카는 겁에 질린 시민에서 뉴욕의 밤거리를 지키는 일종의 영웅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에리카가 애인을 죽이고 자신의 육체를 망가뜨린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곧바로 나서진 않으며, 그런 직접적인 복수가 관심사도 아닌 것처럼 비춰진다. 그리고 그런 무관심은 어쩌면 에리카가 아닌 감독의 의도라고 보이는데, 감독이 조디 포스터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건 범인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범죄 피해자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와 그로 인한 내면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레이브 원>은 사실상 동일한 얘기를 하고 있는 <데스센텐스>와 같은 영화의 액션을 기대하고 보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범죄 피해로 인한 한 인간의 변화를 심도 있고, 내밀하게 그려내지도 못하고 있다. 액션과 심리, 양 쪽에 한발씩 딛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형국인데, 영화는 결국 에리카와 머서 형사의 이해하기 힘든 교감으로 어정쩡한 상황을 돌파하고 급하게 상황을 종료시킨다. 대체 환경으로서의 뉴욕과 개인으로서의 에리카에게 남은 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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