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그래픽, 어느 것이 진짜 영상이고, 어느 것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낸 것인지, 둘 사이의 연결이 너무나 매끄러워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영화다. 언젠가 이런 유의 영화에 관해 썼던 영화평에서도 말했듯이, 사실과 가상이 점차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고, 이것은 교회 공동체에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아니, 이미 다가왔다.)
이 영화에 대해 혹평을 하는 평론가들은 대부분 영화에 스토리라인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사실 그 부분은 시대적 조류이지 이 영화만의 책임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스토리보다는 이미지에 더 많은 관심을 두면서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기보다는 느끼기를 더 좋아하고, 글을 읽어내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영화라는 장르의 속성상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한데, 사재를 털어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인 법이고, 대부분은 투자한 금액에 얼마를 더 얹어서 벌어야 하는 것들이다. 당연히 관객의 경향을 따라가는, 그래서 팔리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때문에 소위 ‘대박 영화’들을 잘 보면 시대의 가치와 과제를 읽어낼 수가 있다) 물론 나는 영화가 단지 ‘상품’으로만이 아니라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무튼 이 영화가 잘 팔리는 이유는 단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변신로봇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감독은 시대적 감각을 잘 읽어내고 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영화에 스며들게 했다. 예를 들면 로봇들은 인터넷을 통해 인간들의 언어를 배우는데, 이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새로운 용어를 배우는 절차를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소재는 ‘변신로봇’이다. 원하는 대상으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로봇들의 모습에서 ‘정형성’에 대한 부정이 느껴진다. 여기에는 근대 이후 인간들의 삶을 인도해왔던 이성(과학적 원리)도 적용되지 않으며, 오히려 ‘신비적인 힘’(큐브)이 더 큰 동인이 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이런 상대주의적인 경향(고정되지 않고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과 신비주의적인 경향은 자연스럽게 절대적인 진리의 개념을 약화시키고, 모든 것을 일시적인 무엇인가로 전락시킨다. 여기에 ‘가상의 세계’라는 설정까지 더해진다면...
확실히 재미는 있다. 하지만 너무나 빠른 영화의 속도는 영화를 ‘읽어내기’ 어렵게 만든다. 점점 더 생각하기는 어려워지고, 화려한 영상에 그냥 ‘반사적 반응’만 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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