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지기 성태와 주연은 매사에 티격태격 하지만, 한편으론 상대방을 가장 배려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동창회에서 만난 둘은 어김없이 서로 헐뜯고, 깎아내리는 데 여념이 없지만, 술 한잔에 금방 유야무야되기 일쑤다. 친구들을 다 보내고 두 사람만 덜렁 남은 어색하면서도 익숙한 상황. 둘은 곧바로 2차로 돌입하고, 거나하게 취해서 한창 흥을 돋우다 이윽고 모텔로 직행한다.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대면한 두 사람은 일단(?) 결혼을 하게 된다.
첫 주연을 맡은 탁재훈과 염정아의 파격 변신에 기대를 갖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어쩌면 입맛만 다시고 문을 나설지도 모른다. 한 영화를 이끌고 갈 만큼 탁재훈의 역할이 비중 있게 묘사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염정아 역시 깔끔하게 허물을 벗지 못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업영화에 대한 관객의 선택 기준이 상당 부분 배우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허점은 생각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공교롭게도 배우에서 파생한다.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며 남다른(?) 우정을 과시해 온 성태와 주연.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시도 때도 없이 으르렁대지만 위기 때마다 서로를 감싸주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기도 하다. 술김에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두 사람은 가까스로 결혼을 하게 되지만,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을 보낸다. 결혼하자마자 자신의 이상형을 만난 것.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이혼을 할 수 있을까에 골몰하던 주연은 돌연 망가지기로 작심한다. 염정아는 이번 영화에서 작정하고 나사를 풀어버린다. 그러나 앤틱 마호가니 소파에 앉아 궁상을 떨고, 병째로 술을 마시며, 봉에 매달려 야릇한 춤을 추는 등의 장면은 실소는 자아내지만, 이야기와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을 풍긴다. 또 진지한 연기에 몰입하는 탁재훈은 ‘첫 주연’이란 타이틀을 의식한 탓에 재치 있는 대사치기나 순발력 있는 연기 등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한다. 다행히 중간중간에 합류한 신현준 신이 등 조연들의 활약은 꽤 강력한 웃음을 유도한다.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일종의 변칙적인 영화다. 로맨틱 코미디의 틀에 멜로를 살짝 끼워 넣어 캐릭터가 아닌 이야기로 승부를 건다. (홍보를 위해) 영화 전면에 나선 캐릭터 역시 정작 영화가 시작되면 자취를 감춘다. 탁재훈과 염정아의 결합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산화돼 버리는 아쉬움을 남기는 이유다.
비록 상업영화의 카타르시스를 뿜어내지 못하고, 장르의 미온한 결합이 극의 몰입을 방해할지도 모르지만, 결혼에 대해 현실에서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실감나는 대사로 묘사한 부분은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특히 이별 후에 다시 결합하는 두 캐릭터의 못 말리는 사랑 타령은 일단 설득력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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