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알려진 대로 인터넷 범죄를 다루고 있는 수사물이다. 언제든지 범죄에 잔혹하게 악용될 수 있는 그 디지털의 역기능성은 영화에서처럼 이렇게 이 인간의 책임과 윤리라고 하는 고전적인 문제를 항시 반복적으로 불러들인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유와 내면이 저변을 깊게 침식시키고 있는 오늘의 감성 시대이지만 아직도 이 고전적인 과제는 이렇게 단 한 걸음의 진척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또다시 이 지점에서 사물의 주체적 범위를 굵게 한정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환될 수 없는 사유의 구축점의 기초를 계산해 보아야 할까?
결국 천사와 악마라고 하는 인간내면의 두 얼굴은 손쉬운 키보드를 두드리는 첨예의 문명노동으로도 그 기능적 현실결과에서는 얼마든지 양가적으로 확대되고 심화될 수 있다. 그 폭발력은 바로 경이이자 동시에 그 역기능성을 향해서는 또 공포의 광폭 그 자체다. 살인 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되는 잔혹범죄, 접속자가 폭증할수록 피해자의 죽음 속도는 배가된다. 표면위에서는 양성화된 휴머니티를 부르짖지만 익명의 밀실 저층에서는 폭력과 죽음, 은밀한 자학적 피학을 즐기고자 달려드는 유령 같은 인간군상들---영낙없는 좀비들이다!
결국 삶과 업무, 지식과 정보, 속도의 숨을 쉬고자 키보드 앞에 앉아 있는 현대인들은 디지털 감성이라고 하는 그 외피의 치장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표면위의 건조한 인간이며 또한 그 한 몸에서 수면하의 유령들이자 동시에 영화가 고발하는 사태의 공범자들이 아닌가? (생중계카메라의 눈을 향해 정면에서 팽팽하게 총을 겨누는 마지막 장면은 그러므로 그만큼 직설적이지만 이유가 있다)
의외로 영화는 이런 도덕교과서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데 워낙 현실성 있는 적실성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뚜렷한 문제적 인상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스토리 라인에도 위기와 긴장은 나름대로의 힘을 갖추었고 호소력도 그만큼 배어있다. 특히 IT강국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는지 곳곳에 한국관련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잘 짜여진 이 긴장의 정글 속에 멜로는 없다. 세상에! 남녀가 한 침대에 누워 잤는데도 아무 일이 없는 장면은 내가 지금까지 본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단연코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 무 관능은 이 영화가 언표 하고자 하는 현실언어---그 지점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일말의 장치로 보인다. 그리고 중요 배역으로 나오는 톰 행크스의 아들(콜린 행크스)은 언제 저렇게 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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