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영화의 기본적인 바탕은 조폭의 세계이다. 유하감독의
<비열한 거리> 에서 맛보았던 치열한 배신과 비열한 약육강식의
법칙을 느낄수도 있지만 영화의 주요내용은 조직세계의 생리를
따라 야망과 친구들간의 의리,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버무려내려고 하는 의도가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가 클라이막스를 향했을때 이 영화의 타이틀을 왜 '숙명'
으로 붙였을까 하는 의문이 사그라들었다. 김해곤 감독은 아마도
조폭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채 삶을 살아야했던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조명하며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맞물리는
운명과도 같이 반복적으로 조우하며 만들어지는 인연의 굴레를
말하고 싶었던 듯 하다. 우민역의 송승헌은 결코 운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구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은영(박한별)등을
통해 그 굴레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야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철중역의 권상우는 거칠지만 코믹한 말투와 달리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동생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야망을 불태우며 친구들을
짖밟고 서라도 올라서려는 인물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도완
역의 김인권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재기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약으로 망가진 흐린정신상태에서 그에게 우일한 지지대와
같던 우민에 대한 잘못된 송곳니를 드러내는 아이러니한 인물로
모습을 보인다. 영환(지성)은 지적이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이면서 암흑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상황을 이용해 살아
남는 최후의 승자적 인물로 모습을 드러낸다. 우민,철중,도완의
기질과는 달리 상황에 따라 지적인 플레이를 보이며 결국 자신을
위해 친구 세명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결정적인 역활을 보여준다.
영화속에서 우민은 자신의 어머니와 은영, 영환은 아버지, 철중은
자신의 동생, 도완은 자신의 옛애인인 미선이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나온다. 그리고 결국 돈에 대한 집착이 이들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부분들이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암흑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틀에서 이루고자 한다. 유일하게 빠져나가려 한 인물이
있다면 우민일 것이다. 하지만 우민의 삶은 도환을 비롯한 그의
형님이었던 강섭(안내상), 보스인 두만등 다양한 인물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국 파국적인 삶을 맞게 된다. 그러한 우민의 삶을 빗대어
타이틀이 정해진 듯 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의리보다는 돈과 야망
이 빗어내는 비열한 조폭세계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즉, 각 캐릭터들
의 이야기는 영화가 마지막에 드러내는 결말을 통해 그들의 순수하게
보이는 서로의 의리를 챙기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의
운명과도 같은 것임을 이야기하려고 한듯 보여진다. 세소적인 때에
물든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듯하다. 하지만 너무 극단적이고 다소
의아하게 비춰지는 부분과 이 영화의 기본적인 바탕이 조폭세계라는
데에서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 영화들이 보여
주었던 요소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뿐 액션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철중의 코믹스런 말투정도 외에 남긴 것이 없다. 스토리의 구조와
연결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의리, 야망, 사랑을 어지럽게 이야기하는
탓에 몰입하기 힘든 구조를 보여주다가 마무리되어 버린다.
조금 더 설득력있는 결말을 보여줄수 있는 영화이길 기대했지만
상업적인 코드와 배우들의 브랜드 파워, 그리고 액션적인 부분과
볼거리위주로 치장되어 스토리의 맥을 살리지 못한 영화로 느껴져
많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송승헌을 비롯한 김인권, 권상우 등 모두
괜찮은 연기를 선사하지만 그것도 결국 개개인에 대한 느낌일뿐
영화의 감상에 이어지진 않는다. 이제는 좀더 새로운 시각과 다른
느낌의 영화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영화에 비해
'추격자' 가 남겨준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의 찰떡궁합을 생각
해 본다면 이러한 아쉬움이 관객으로서 보는 당연한 마음가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