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기본적인 구조에서 에머리히 감독의 전작 '스타게이트'를 연상시킨다.
어디선가 나타난 외지인에 의해 민중봉기가 일어나 압제자가 물러나고 자유를 찾는다는
큰틀을 놓고 본다면 말이다. 10000 BC 는 여기에 예언과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가는 영웅이란
신화적 요소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시대와 배경을 가지고
통속적이지만 볼만한 영화 한편을 만들어냈다.
주인공이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자신의 여자를 구하기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였으나 감독은 여기에 앞서 언급한 예언과 부족의 운명 이라는 요소를 끌어들여
좀더 드라마틱한 구성을 꾀한다. 물론 이러한 장치들이 썩 효과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분명 에머리히 영화는 아주 조금씩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있다.
10000 BC에도 전작 스타게이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주적으로 독립하지 못한채 압제속에 살아가는 노예들이
등장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노예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뒤엎을 영웅이 등장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점이고 주인공 들레이는 큰 문제없이 다양하고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이들 부족들을 규합하여 신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절대권력을 전복시킨다.
에머리히의 전작 스타게이트는 외지인들(데니얼 박사와 그 일행들)이
현지인 노예들을 각성시키고 봉기를 주도하는 과정이 과감히 생략되어 실소를 자아낸바있다.
단지 '선진화' 되고 '깨어있는' 외부 방문자들이 무지몽매한 현지인 노예들을 잔인한 압제자로 부터
해방시켜준다는 인종적, 문화적 우월주의의 냄새가 요란하게 진동했을뿐....
그래서일까? 에머리히는 들레이의 기나긴 여정과 노예해방을 개인적 이유에 국한시키지 않고 거대한 운명이란
수레바퀴속에 예정된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부족들의 전설과
들레이보다 먼저 길을 떠났던 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는 과정을 통해 필연성에 접근해 나간다.
그러나 단 한명의 압제자를 위해 희생당해온 다양한 부족들이 또 한명의 '파란눈 아가씨'를 구하고자
하나로 뭉쳐서 싸운다는 내용은 상당히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전설이나 예언이라는 단어아래 눈깜짝 할 사이 명쾌하게 교통정리가 되고
영화는 예정된 결말을 향해 전력질주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관객들은 골치아프게 서사적 구조가 맞는가 어떤가를 고민할 필요없이 에머리히 사단이
제공하는 '규모의 향연' 을 즐겨주길 강요 받는다.
지축을 울리며 질주하는 맘모스들과 인해전술의 스펙타클, 거대한 피라미드를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로 잡아낸 영상은 시나리오의 허술함을 잠시 잊게 만들정도다.
어쨌든 에머리히 감독은 뻔한 결말을 얼만큼 더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이끌어내느냐를 두고 고민할뿐
유장한 스토리로 폼잡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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