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비주얼, 몽환적인 색채와 대비, 빛의 강약등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영상미하면 떠오르는 <인정사정볼것없다><형사> 의 이명세
감독이 들고 나온 한 편의 멜로와 미스테리의 혼합형 영화인 이 영화는
신기루같은 느낌을 준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는 속설처럼
첫 장면과 함께 보이는 미미(이연희)의 나레이션은 엔딩에서 그 빛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난 나중에 당신이 아주 많이 슬퍼했으면 좋겠어.
재미있는 영화를 보다가도 내 생각이 나서 펑펑 울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영화는 멜로와 함께 어지럽게 뒤엉켜버린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자이자 천재 베스트셀러 소설가 한민우(강동원)의 삶속으로 이끈다.
악몽의 시작과 함께 새로 시작한 소설을 쓰지 못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강하게 느끼는 민우의 삶속에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심스럽게
민우의 뒤를 쫓는 시선은 그를 향한 애정이 충만하다. 민우를 사랑한다
며 모습을 숨긴채 민우를 쫓는 미미의 모습, 그리고 그런 미미를 붙잡
아가려는 우산을 든 낯선 그림자, 민우의 현재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유한 아버지를 둔 약혼녀 은혜(공효진)와의 결혼을 앞 둔
민우는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다시 찾듯이 꿈과 환각을 넘나들면서 과거
와 현재를 공명시켜 간다.
'사람들은 살다보면 사랑했던 기억도 소중한 기억들도 잊어버려 망각속에
놓아 두곤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그 기억들은 마음속에 해일처럼 떠올라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다 '
마치 바다속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이끌리는 뱃사람처럼 루팡바로 이끌린
민우와 미미의 만남, 그리고 오래전 아버지가 술마시며 부르던 옛 멜로디의
이끌림은 은혜의 전화벨 소리로 꿈속에서 깨어나며 사라져 버린다.
분명히 가지고 있는 기억의 한조각은 그렇게 민우를 혼란에 몰아넣고,
그리고 동창의 결혼식에서 드디어 민우는 자신의 첫사랑 미미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 된다. 잊을수 없는 소중한 기억은 봉인되듯 민우의 기억속에
방치되 있다가 그 길을 찾아 불을 밝히고 민우는 미미의 행방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 꿈과 환상등 혼란스러운 영상이 어느새
퍼즐의 조각을 하나, 둘 끼워맞추고 완성될 준비를 한다. 드러나는 슬픈
현실과 자신의 상태와 자신을 잡아가려는 그림자의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미미가 민우에게 자신을 잊지 말고 추억하기를 바라며 내뱉는 대사들은
어둠속에서 불붙는 담배불에서 피어나는 연기처럼 서로의 소중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렇게 첫사랑의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이 아니었다면 신파적인 현대판
'플라토닉 러브'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누구나 사랑을 하지만
사랑은 미스테리다. 어디서부터 오는지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 오는지 모르지만
사랑의 기억은 잔인할 정도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든다. 사랑 자체를 미스테리
로 놓은듯한 이명세 감독의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퍼즐도 너무 뒤섞이면
산만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는 것은 피할수 없다. 강렬한 색채와 드러나는
진실속에 느껴지는 감정의 결정체를 매력적으로 세공한 부분은 이 영화의
장점이지만 그 과정의 산만함과 지루하게 느낄 정도로 질질끌리는 반복적인
느낌의 내용이 영화에 대한 집중력과 이해도를 확연히 떨어트리게 만든다.
그만큼 인간의 원천적인 호기심을 식상하게 만들어 딱히 좋은 영화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감각적이고 이색적인 멜로영화의 감정선을 느껴볼수
있는 영화라는데 나쁘지 않은 점수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