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인상은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이들. 중국의 젊은 세대 tao, taisheng, niu, wei, chen zhijun, liao qun 등의 모습은 지금 한국의 20대, 30대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래서 영화의 내러티브를 따라가기보다는 그들의 모습과 삶의 이력에 집중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중국도 한국만큼이나 핸드폰 사용이 대중화돼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방 이후 중국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급속도로 변화했다고 하던데, 영화를 보니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중국은 개방 이후 댐의 닫혀있던 수문이 열렸을 때, 엄청난 양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듯이 세계의 여러 문물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느라고 몸살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그 문물을 적극 받아들인 젊은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 영화는 관찰하고 있는 것 같다. 정보화 시대의 상징처럼 돼버린 핸드폰, 그리고 이를 사용하는 젊은 세대. 지아장커는 개방과 핸드폰이 젊은 세대의 사랑과 소통, 의식, 생활패턴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관찰한다. 마치 영화는 하나의 사회변화 연구보고서와 같다. 개방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세계 공원. 이곳에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집트, 이탈리아 등 세계주요 도시나 문화유적지 등이 실제 크기의 삼분의 일로 전시되어 있다. 서구와 자본주의 문물이 유입되면서 중국의 젊은 세대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비행기와 같은 교통수단의 발전, 핸드폰,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발전은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묶었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사는 공간 이외에 다른 공간을 동경하고 가보고 싶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사는 공간과 삶을 답답하게 느낀다. 지금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면 분명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이러한 막연한 동경과 꿈을 영화 속 인물들은 가지고 있다. 세계공원에서 일하는 tao와 taisheng. 이들은 새로운 인생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갖고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베이징으로 왔다. 그러나 이들은 베이징에서의 삶에서 어떤 변화와 희망을 보지 못한다. 그저 매일같이 허구에 불과한 가짜 세계 공원을 답답하게 쳇바퀴 돌듯이 돌 뿐이다. 그들의 일상은 변화가 없고 늘 같다. tao는 세계 공원을 순회하는 공중 열차 위에서 taisheng의 전화를 늘 받고, 열차를 타고 있다. 친구와 밥은 먹었냐? 지금 인도로 가는 중이다. 등 따위를 대화를 나눌 뿐이다. 세계공원의 인도이니 인도이긴 하나 어디까지나 가짜 인도를 가고 있는 tao의 심정은 답답함의 연속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듯 이들은 세계 공원에서 세계를 꿈꾸지만 생계를 위해 세계 공원에 갇혀있다. tao와 taisheng에게 tao의 옛 연인 liangzil은 taisheng에게는 질투와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겠지만, 둘 모두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왜냐면 liangzil은 배낭을 메고 세계를 여행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몽골로 여행을 간다고 한다. taisheng은 그를 공항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하는데, liangzil은 기차를 타고 공항까지 간다고 하고, taisheng는 그러면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영화의 후반부 프랑스로 떠나는 패션 디자이너 qun에게도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taisheng의 입장에서 기차역이나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감독은 이러한 taisheng의 행동을 설정해서 보여주는가? 이다. 그것은 taisheng의 내면에 답답한 이곳을 떠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욕구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tao도 그런 면에서 마찬가지로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비행기를 타고 나가고 싶어 하는가?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 개방과 세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미디어의 영향이다. 개방 이전에 사회주의 시대에는 자신이 사는 현실을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그러나 개방과 미디어의 물결로 삶의 터전과 현실의 질을 비교할 세계의 여러 대상이 등장했고, 젊은 세대는 자신의 현실이 풍족하지 못함을 느끼고, 내재해있던 욕구들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베이징으로 오고, 베이징을 떠나 외국으로 간다. 핸드폰은 이러한 이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매체이다. world tracking(세계 위치 추적)이 가능한 모토롤라의 새 핸드폰을 구입하면,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을 보면, 핸드폰은 세계 구석 어디에도 통하는 매체이다. 즉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매체인 것이다. 그것도 손안의 조그만 LCD창 안에서 말이다. 그래서 tao와 taisheng은 여기서 세계에 대한 동경과 탈출의 희망을 꿈꾼다. 이들의 핸드폰에 문자가 오고 그리고 시작되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들의 욕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너무 적나라해서 문제긴 하지만. taisheng과 사랑의 문제로 소통하지 못하고 답답함을 느끼던 tao는 버스를 타다가 문자를 받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애니메이션. 문자의 내용은 이렇다. ‘너는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냐?’ 답답하고 비루한 현실에 사랑마저 아름답지 못하고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할 때 밀려오는 암담함이 핸드폰 LCD창에 투영된 것이다. tao의 판타지는 taisheng과 모형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와 같은 복장을 입은 채로 사랑의 진실성과 신뢰에 대해 그로부터 의심을 받는 장면에서 나온다. taisheng이 song으로부터 문자를 받아 song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하자, taisheng를 따라 가겠다고 한다. 여기서 하루 종일 있으면 자신이 유령이 될 것 같다면서.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시작된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빠져나와 중국의 주택가, 공장지대, 도심 곳곳을 비행하는 그녀의 모습은 즐겁고 자유로워 보인다. 베이징으로 온 것은 tao의 생각이었고, taisheng이 tao를 따라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베이징이 싫어져서 떠나고 싶어 한다. taisheng은 tao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tao가 더 나은 삶을 자신이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tao가 더 나은 남자를 만나면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을 의심하고 그녀의 기댐을 부담스러워한다. tao 또한 taisheng을 사랑하지만, 어느덧 그의 존재는 그녀를 여기서 벗어나게 해줄 희망으로 전락한다. 둘 사이의 사랑은 이렇게 변질된다. 무엇이 이들의 사랑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삶과 현실, 욕구의 문제 때문이다. taisheng은 tao가 다른 남자(liangzil)를 만난다고 하니까, 더 나은 남자를 만나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무전기로 그녀의 위치가 어디인지 추적해, tao와 liangzil이 있는 식당으로 쫓아간다. 그리고 liangzil은 tao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인물이다. tao는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liangzil을 따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tao는 파티를 열어서 즐겁게 놀자 라는 문자를 받고 잠시나마 행복해한다. 그러나 파티에서 tao는 돈 많은 남자의 유혹을 받는다. 여권을 만들어주고 홍콩으로 가서 보석과 향수 쇼핑을 하자는 남자의 유혹은 달콤하다. 그러나 tao는 낯선 남자의 제안을 거부한다. 즉 현실에선 tao의 욕구와 희망을 채우기 위해 버려야할 부분들이 많고, 결코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고, 갈수 있다면 낯선 사랑하지 않고 혐오하는 남자와 가야하는 현실이다. tao의 핸드폰에 전달되는 문자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꿈과 환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결국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로 허무만 남겨둔다. 현실과 판타지가 대배될수록 tao는 절망한다. 그것은 taisheng도 마찬가지다. tao를 잊고 패션 디자이너 qun과 사랑을 꿈꾸지만, 그녀가 남편이 사는 프랑스의 belleville으로 떠나면서, 현실화되지 못한다. qun으로부터의 ‘너를 알게 되어 행운이다. 난 널 잊지 못할 거야’라는 허무하고 의미 없는 문자를 받는다. qun이 taisheng을 잊지 못한 것이 현실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qun은 taisheng를 남겨두고 떠나지 않았는가? 이토록 핸드폰의 문자는 사랑과 탈출에 대한 동경을 부추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판타지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아장커는 문자가 오는 장면을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처리했다. 애니메이션은 비현실적인 세상을 만드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tao는 러시아에서 온 anna를 동경한다. anna의 외제 시계를 사고, 러시아를 떠나 중국으로 온 그녀가 자유로워 보인다. 그리고 anna의 여동생이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사는데, 거기로 가기 위해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다. anna에 여동생이 가르쳐준 ‘울란바토르의 밤’이라는 노래는 여동생과 anna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이지만, tao에게는 하나의 동경이다. tao가 콜럼버스처럼 세계를 보겠다며 베이징의 야경을 망원경으로 보며 세계의 밤을 꿈꾸듯이 말이다.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넘어온 anna에게는 처음에는 tao와 같은 희망이 있었겠지만, 곧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세계 공원의 패션쇼 행사 공연자에서 돈을 벌기 위해 술집작부가 된다. tao가 anna의 별 설명 없이도 함께 울을 수 있었던 것은 anna의 모습에서 절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tao도 다른 곳으로 나가봤자, 여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럴수록 taisheng에게 의지하고, 그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한다. taisheng도 뾰족한 수가 없긴 마찬가지다. 돈을 벌겠다는 희망을 안고 온 고향친구 sanfai와 어머니가 형을 딸이길 바랬기 때문에(딸을 낳으면 경제적으로 더 나은가? 이 이유는 잘 모르겠다), little sister라는 별명을 가진 chen zhijun이 베이징으로 상경해 건설현장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chen zhijun이 야근노동을 하다가 케이블이 무너져 크게 다친다. 그가 남긴 쪽지의 내용은 비루한 그의 삶을 잘 보여주고 눈물을 자아낸다. 이들도 anna, tao와 비슷하다. taisheng도 여기서 절망을 발견한다. 평양에서 온 sanming은 가족을 위해 건설현장에 취직한다. 그의 얼굴과 돈을 안주머니에 넣는 삼촌의 얼굴은 그 인상 하나만으로도 서글프다. taisheng의 눈에 이들의 모습은 안타깝다. 이들의 미래 또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커플인 wei와 niu는 핸드폰 시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niu는 wei가 핸드폰을 꺼놓고 받지 않는다며, wei를 의심한다. world tracking이 가능한 모토롤라 핸드폰을 사주라고 동료가 niu에게 말하자, wei는 즐거워하며 사달라고 한다. 핸드폰 세대인 이들에게 새 모델의 핸드폰은 매혹이다. 그러나 동시에 둘 사이의 사랑과 소통에 치명적인 장애를 일으킨다. 이들의 소통은 마치 핸드폰이라는 매체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여동생이 가르쳐준 노래로 소통한다는 anna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핸드폰은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통화하면서 끊임없이 상대방을 의심하게 한다. 직접 맞대하지 않고 음성으로만 통화하기 때문이다. 매체를 통한 소통은 편의성과 언제 어디서든 통화하고 둘이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거기에 집착과 의심을 만들어낸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애를 하는 남녀 사이에서 흔히 있는 일로, 핸드폰이 꺼져있거나, 받지 않거나,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으면 상대방이 무엇을 하는지 생각하다가, 연락이 계속 없으면 의심하고 불평하며 불안해한다. 사랑을 의심하고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는다. 핸드폰을 통한 소통은 이러한 온갖 억측과 집착을 만든다. 차라리 직접 찾아가 이야기하는 것이 낫지 않는가? 그러나 핸드폰의 소통에 익숙한 세대는 핸드폰의 통화량이 사랑의 기준인 것 같다. 핸드폰과 인터넷에 중독돼, 사람과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채팅과 핸드폰 음성, 문자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더 익숙하다. 최근 한 간호조무사가 싸이월드라는 사이트의 미니홈페이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신생아를 가지고 장난친 사진을 올린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어느덧 우리는 인터넷과 핸드폰 등 첨단 매체의 노예가 되면서 환상과 착각 속에 살고 거기에 집착한다. 리니지라는 RPG 게임에 청소년들이 몰리는 것도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 부재의 단적인 예다. 영화 속 인물들도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언제나 사랑과 관계를 의심하며 불안해한다. 사랑에 확신을 심으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tao는 tasheng의 핸드폰에 온 현실이 될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한 qun의 문자를 보고 taisheng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핸드폰에 익숙한 그녀의 눈에 qun의 문자는 현실로 보이겠으나, taisheng은 qun과는 끝이 났다. taisheng은 결국 tao가 식모살이하는 집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한다. 뭐가 문제냐? 라고 하면서. 문제는 둘 모두에게 있다. 희망을 꿈꿨던 둘은 좌절했다가 잠시 사랑의 일탈을 통해 희망을 다시 실현하기를 바랬지만 더 큰 좌절과 절망을 보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죽음을 택한다. 마지막 대사 우리가 죽은 것이냐? 아니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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