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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걸>[집으로] 건도한 도시생활에 한줄기 물같은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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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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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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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8 오전 10:2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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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향이라는 여성감독이 있다. 4년전 자신의 각본을 영화화한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작품으로 장편감독 데뷔를 하였던. 그 당시 난 생각했었다. 그때만해도 신인급에 속했던 이성재 같은 배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심은하나 안성기씨 같은 지명도 있는 배우들이 이름도 생소한 이정향이라는 감독의 작품에 그것도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이는 영화에 출연한다는 소식에 의아하기만 했고 따라서 영화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다. 그리곤 너무도 털털한 모습의 심은하가 공연하는 <미술관 옆 동물원>이 관객에게 소개되었을 때 저 영화 “며칠 걸리다가 내리겠군”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리고 직접 접한 나 자신도 이 영화를 보고 당황하였다. 기존의 멜로 영화에선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하고 경쾌한 느낌의 이야기 구조, 이야기 속의 이야기 더구나 그 속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세련되게 연출한 화면, 섬세한 대사의 표현 등, 신인감독의 연출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노련함이 베어있어 감탄을 했었더랬다. 특히 그녀가 쓴 시나리오의 대사하나하나는 지금까지도 관객들에게 오랫동안 남아있는 명 대사들이 많아 많은 관객들과 비평가 들에게 인상이 깊은 작품으로 자리매김 하였었다.
그런 멋진 출발을 했던 이정향 감동이 신작 <집으로>를 들고 다시 영화 판(?)에 돌아왔다. 데뷔작을 내고 오랜 침묵 끝에 두 번째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기에 설레임과 두려움 이 교차될 법도 할 것 같은데, 그녀가 관객들을 대하는 모습은 꽤나 담담해 보였다. 더구나 두 번째 작품은 전작인 <미술관 옆 동물원>보다도 더 볼품이 없어 보인다. 알만한 배우 하나 없고 시골에서 막 농사를 짓다가 튀어나온 듯한 시골스런 할머니와 몇편의 CF에서 얼굴이 익숙한 소년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영화가 난 예사롭지가 않아 보인다. 이정향감독이 다시 각본과 연출을 하고 내놓은 작품이니 더욱더.
<집으로>는 요즘 한국영화의 제작 추세를 역행하는 영화다. 전작이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고 비평가들로부터 연출가로 각본가로 인정을 받았으면 그 다음의 작품은 안전하게 가는 것이 인지 상정이다. 물론 전작이 흥행에는 성공을 하지 않았더라도 능력을 인정 받게되면 이름있는 투자사와 결탁(?) 시나리오를 선정, 안전한 제작비를 지원받고 괜찮은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자신의 연출력을 맘껏 선보이고도 흥행에 부담이 없는 차기작을 도모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꽤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둬 흥행감독이라는 이름이 붙은 감독도 몇몇 있다. 대표적으로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나 <접속>, <텔미 썸딩>의 장윤현 감독,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 등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시나리오를 직접 연출하는 스타일로 자신의 영화적 스타일이나 작품성을 일반 관객들에게도 인정받는 흥행감독의 반열에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이정향 감독의 행로는 의외다. 그녀가 두번째 작품의 소재로 선택한 것은 시골의 외할머니와 도시에서 온 손자의 야릇한 동거이야기. 대부분의 감독들이 차기작을 준비 할때마다 더 사회비판적이고 더 오락적이고 더 멋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인데 그녀는 전작보다 더 초라(?)해 보이는 두번째 연출작 <집으로>를 들고 관객들의 심판을 기다린다.
영화 <집으로>는 초라하다. 유명배우 하나 나오지 않고, 물량이 많이 투입된 듯한 또는 멋진 CG 화면이 보이지도 않으며 감독이 특이한 앵글로 영화를 치장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다만 도시에서 온 손자가 시골에서 주변사람들 어울려가고 할머니의 깊은 사랑에 감화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말 한마디 안하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너무도 버릇없는 손자를 묵묵히 감싸고 아끼는 한 없는 할머니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 사랑의 표현에는 요란한 것도 별난 것도 없다. 라면봉지에 싸 두었던 쌈지 사탕을 준다거나 나물팔고 번돈으로 초코파이를 사주는 것이 고작이며 캔터키 치킨이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닭 백숙을 만들어 주고도 어린 손주의 원망을 조용히 감수해야 했고 건전지를 사겠다고 할머니의 비녀를 가져간 손주 때문에 수저로 머리를 틀어 올려도 아무 원망을 않는 할머니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영화 속 할머니의 모습은 정말이지 보잘 것이 없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라 더더욱 도시에서 온 손주에게 해 줄 것이 없다. 몰라서 못해주고 (돈이) 없어서 못해준다. 그냥 뭐든 주고 싶은 것이 손주에 대한 할머니의 마음인 데 손주는 그 마음을 모르는 것같다.
이 정향감독의 영화를 만들 때 각본과 연출을 겸임해서일까 ? 그녀의 작품 속엔 늘 투영된 자신의 인물이나 주변인물들이 투영된다. <미술관옆 동물원> 속의 춘희는 각본을 쓰던 스스로의 모습의 투영이라 말할 수 있고 영화 <집으로>속의 할머니는 자신이 부모님 보다 더 의지했던 외할머니의 모습이라고 한다. 물론 철없는 어린 손주의 모습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속을 썩이던 감독 자신의 모습의 부분적 투영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감독이 자신이 선호하는 이야기가 있듯이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해 주는 것을 그래서 관객과 공감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따라서 그녀의 영화는 신변 잡기주의의 영화들이 많다. 심각하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아름답다기 보단 투박하고 표현하는 사랑보단 은근히 젓어드는 사랑을 보여준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남녀의 사랑 <집으로>에서의 할머니와 손주의 사랑이 모두 그러하다. 그런데 그 투박함이 그 은은함이 더 가슴깊은 곳에 자리매김 하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어쩌면 감독은 굉장히 머리가 좋은 것 같다. 비극적이지도 요란하지도 그렇다고 아름다운 것 같지도 않은 사랑을 보고도 이렇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감동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난 작품을 연출하는 그러한 고집스런 시선이 너무도 좋다. 요즘의 겉으로만 비대해 지고 내실이 없는 한국영화들에 비해 투박하지만 수수한 그녀의 작품은 보석처럼 다가왔다. 흥행이나 비평의 틈바구니에서도 자신만의 고집스런 연출 영역을 구축하는 그녀의 모습이 존경스럽기 까지하다. 꾸미지 않은 아름다운 시골풍경,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처럼 친숙하고 투박스런 모습과 행동의 동네 어르신들 그리고 아이들. 그냥 아무런 각본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은 것마냥 자연스럽고 정겨운 모습의 인물들(난 그들을 배우라 칭하기 싫다. 배우처럼 가장함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장인물이라 칭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영화가 <집으로>로 완성된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져서 헐리웃 시스템을 쫓아가는 한국 영화 판.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수 십억 원의 제작비와 스타가 나오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실정. 이 모든 것을 역행한 영화 <집으로>가 제작될 수 있고 개봉이 될 수 있다는 건 아직까지 소신있는 감독의 소신있는 작품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한국 영화의 한가당 희망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우리나라 제작사 중 규모가 제법 되는 영화사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져주고 제작을 한 것에 대해 너무도 고맙게 느껴졌다.
<집으로> 같은 영화는 우리의 건조한 도시생활에 한줄기 물줄기 같은 영화가 될 것이다. 잊고 살았던 지금의 부모님 세대의 고향과 그곳에 계신 부모님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골생활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준다. 우리들이 잊고 있었던 할머니에 대한 “정”을 느끼게 해 준다.
무비걸 www.onrevi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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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2002, The Way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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