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의 ꡐHARDꡑ 함에 머리는 냉랭해지고 한동안 ꡐDRYꡑ한 세상풍경이 눈에 들어오는가 싶었는데, 치밀하고 치열한 그의 복수극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몸둥아리 저 밑바닥으로부터 힘차게 솟구치는 에너지에 활력을 찾은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오대수(최민수분)가 내뱉는 ꡐ복수는 건강에 좋다ꡑ는 ꡐ이 영화는 당신의 정신건강에 좋습니다.ꡑ 로 들린다.
영화는 시작부터 ꡐ강ꡑ으로 출발한다. 카메라의 익스트림 클로즈업에 비친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푹 꺼진 눈 밑으로 패인 주름. 비트 섞인 음악과 함께 죽으려는 자와 살릴지 내버려둘지 갈등하는 자 간의 긴장이 팽팽해진 넥타이끈을 사이에 두고 오간다. 두 인물의 무언가를 상징하는 듯한 포즈는 15년 감금이라는 복수극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한눈에 봐도 강렬하고 독특한 화면구성이 주는 신선함은 보는 이의 핏줄기를 솟구치게 한다. 그러나 막 끓는 점을 향해 힘차게 들끓기 시작한 심장동맥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듯이 ꡐ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살자ꡑ 식의 자포자기 신념에 의지한 별 볼일 없는 샐러리맨 오대수가 하루의 막판을 대충 수습하고 있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게 등장한다. ꡐ강ꡑ에서 ꡐ약ꡑ으로 리듬감을 타면서 오대수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복수는 나의 것>에 담긴 복수의 악순환처럼 복수 당하는 자에서 복수하는 자로의 인생역정에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ꡐ난 누구냐?ꡑ
박찬욱의 복수극 1탄 <복수는 나의 것>이 외면을 받은 반면 2탄 <올드 보이>가 이토록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낸 이유가 궁금하다. 같은 맥락의 복수극이지만 둘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와 시간차를 사이에 두고 놓여 있다. ꡐHARD DRYꡑ한 <복수>가 대중의 정서적 공감을 얻어내기에 어려운 스타일을 지녔다면, ꡐBOILꡑ한 <올드>는 대중의 의식과 무의식을 자극하기 위해 스타일의 과잉과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장치를 활용한다. 그렇다고 박찬욱의 근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ꡐ명심하라, 모래알이든, 바윗 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긴 마찬가지다ꡑ 이는 <올드보이>가 <복수는 나의 것>을 계승한 연작임을 의미하듯 죽음을 죽임으로 갚는 동진(송강호분)의 복수나 근친상간의 고통을 근친상간으로 갚는 이우진(유지태분)의 복수나 치밀함과 난이도의 차이를 보일 뿐, 그 원칙은 대동소이하다. ꡐ이에는 이 눈에는 눈ꡑ 원시적 복수의 법칙은 그대로인 것이다. 한편 시간의 흐름은 대중이 박찬욱의 이야기를 공감하는 여건을 마련해준다. 이우진의 부드러우면서도 냉소적인 여운을 남기는 음성처럼, 이 세상은 탈출구 없는 넓은 감옥이요 고로 부조리 덩어리라는 박찬욱의 시선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대중에게 내재한 불명불만의 표출과 그로 인한 카타르시스로 작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경함이 근원의 친숙함을 가로막을 순 없는 법이다.
아쉽게도 모래알 같은 말 한마디가 죽음을 불러오고 복수를 야기한다는 설정은 과거 한국영화 ꡐ손톱ꡑ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는 별로 중요치 않다. 그저 하나의 흥행적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 영화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는 다른 데 있다. ꡐ복수가 다하면 복수심이 다하면 숨어있는 고통이 찾아온다ꡑ 오대수는 복수의 고리를 끊으려고 하는 듯 괴물적 자아를 떠나 보내기 위해 최면술에 의지한다. 그러나 오대수의 딸 미도는 오대수에게 사랑을 속삭임으로써 복수의 고리는 끊기지 않는다. 복수의 고리에 관한 박찬욱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박찬욱 그는 누구냐? 다시 한번 되묻고 싶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