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파리, 피아프의 목소리....
한시간 반동안 피아프의 노래만 듣고 온다고 해도 괜찮을 가을날.
기대하지 말고 편안한 맘으로 감상에 푹 빠졌다가 오자, 생각하고 영화관에 앉았다.
피아프의 노래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좋아했었다.
엄마가 듣던 노래테입을 뭔지 모르고 듣기시작했을때 거기 삐아프의 목소리가 있었다.
내겐 멜랑콜리한 노스텔지어로 남아있는 목소리.
프랑스 사람들에겐 전혀 다른 노스텔지어를 남긴 목소리겠지만
내겐 막 사춘기가 시작될때의 삭막한 시골마을을 잊게해주던 낭만적인 목소리.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난 후 뭔가 맹숭한 기분.
내가 에디티 삐아프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프랑스감독이라면 무엇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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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이 힘없이 무너지는 순간을
영화를 보며 확인해야만 했다.
난 그랬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를 만들었을거다.
이미 그녀에 대해 나온 극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다큐등등 많을거다. 워낙유명인사니까.
어쨌건
거친다큐가 그녀를 보여주기엔 더 적합했을거같다.
에디티피아프라는 이름과 그녀의 노래만으로도 극적인 드라마가 모두 포함되어있기때문에.
거기에 극을 더하니까 아이러니하게 극이 깨지는 느낌이다.
그녀를 위해선,
죽어버린 시간을 잠깐동안 되살릴수 있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관객에겐 그녀를 상상할 시간이 필요했다.
라비앙로즈에서 좋았던 건 초반의 구성, 마리옹 꼬띠아르라는 배우의 연기, 좋은 음질로 들리는 삐아프의 노래였다.
그러나 유명인사의 전기영화가 그렇듯 영화는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허덕허덕 그녀의 일대기를 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으로 영화는 끝났다.
도대체 왜 전기영화들은 모두 그의, 그녀의 죽음으로 끝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오늘같이 온순하고 따뜻한 날 괜히 까칠해지지 말자.
에디티삐아프의 페활량좋은 노래를 감상한 것만으로 만족하자.
에디티 삐아프는 정신없이 힘차게 부른다.
147cm의 키로 등을 구부린 채 어디서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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