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적 차이를 넘어 사랑할 수 있을까???
최근 잉꼬부부로 알려졌던 연예인 부부의 불륜과 관련한 뉴스 기사가 그득하다. 아내의 불륜 대상이 남편도 잘 알고 지내던 후배라니 그 장면만 떼어 놓고 본다면 영락없이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를 연상하게 한다.
두 쌍의 젊은 부부가 있다. 이들은 민재의 친구이자 영준의 선배(최재원)가 개업하는 카페에 왔다가 우연히 동석하게 된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유나(엄정화), 민재(박용우) 부부와 누가 봐도 냉랭해 보이는 영준(이동건), 소여(한채영) 부부. 패션 컨설턴트인 유나는 그 자리에서 대형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영준을 새로운 고객으로 맞이한다. 그리고 호텔에서 일을 하는 민재는 조명 디자인 업무로 홍콩에 출장가는 소여의 숙소를 잡아주기로 한다. 이 두 커플은 서로 상대를 맞바꾼 채 홍콩과 서울에서 동시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민재와 소여가 격렬하고 진정어린 사랑에 빠져든 반면, 영준과 유나의 연애는 싸우듯 장난치듯 아슬아슬 경계선을 타고 넘는다.
이 영화의 느낌은 몇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4분할된 화면처럼 전체적으로 대단히 잘 빠지고 매력적이다. 분명하게 불륜을 다룬 영화인데도 구질구질하다거나 조마조마한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깨끗히 배설해 버린다. 그리고 대단히 정형화된 느낌을 준다. 정형화 또는 도식화의 느낌은 무엇보다 주연을 맡은 네 명의 배우 캐릭터의 정형화에 기인한다. 엄정화, 박용우, 이동건, 한채영, 이 네 명의 배우가 맡은 역은 그 동안 이들이 주로 맡았던 역할의 재연에 다름 아니다. 영화는 매우 안전한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선 사랑이 가져오는 미묘한 변화였다. 냉랭한 영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소여는 민재와 홍콩에서 밀회를 즐긴 후 남편에게 "나 머리를 묶는게 좋아요?"라고 묻는다. 물론 이 질문은 민재 때문이다. 그냥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해버려도 될 작은 표현에 반응하는 감정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용감해진다고 했든가. 소여는 뒤늦게 찾아온 사랑을 잡기 위해 남편에게 들킬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남자 화장실에서 민재에게 사랑을 애원한다. 그런데 소여의 불륜은 나름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대화도 섹스도 없는 건조한 부부생활. 사랑하지도, 아무런 관심도 없는 남편. 반면, 민재는 오랫동안 믿고 친구처럼 지내온 유나가 있다. 그래서 민재는 새로운 사랑을 포기하려고 하지만 이미 마음은 소여에게 넘어가 있다. 그래서 술에 취해 비에 젖은 채 침대에 누워 유나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털어 놓는 대화 장면은 불륜이 넘쳐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애닯은 부분이다.
한편, 유나는 민재가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영준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실은 자신이 전적으로 민재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기가 민재를 떠날 수 없음을 알게 된 유나는 아마도 새로운 여자가 생긴듯한 민재와의 관계 복원을 위해 아기를 가지면 어떨까 하는 하는 바람을 비추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민재의 진심만을 확인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뻐보이는 사랑은 (불륜이란 조건을 제외한다면) 민재와 소여의 사랑이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후일담이 가장 궁금한 건 영준과 유나의 사랑이었다. 둘은 극과 극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떠받들어지며 살아온 영준과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생활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유나. 이 둘의 사랑은 분명 계급을 초월한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이 깊어져도 그 간극이 좁혀진다는 느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건 주로는 영준 때문인데, 영준과 유나가 탄 두 대의 차가 마치 폴카를 추듯이 광화문 서울시립미술관 앞을 뱅뱅도는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영준은 운전하지 않고 뒷좌석에 앉은 채 운전하는 유나를 바라보고 있다. 과연 이 둘은 계급적 차이를 극복하며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글쌔, 난 좀 부정적이다. 알고보면 사랑으로 시작한 영준과 소여의 부부관계도 냉랭해졌듯이.
암튼 이 영화는 불륜을 그리면서도 보는 사람들을 그다지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건 두 커플, 네 명이 모두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짐으로서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라든가 죄책감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새로 사랑을 시작한 연인이라든가, 신혼의 달콤함에 빠져 있는 신혼부부들이 보기엔 좀 거시시하다.
그런데, 민재와 영준, 이 두 남자의 진심이 드러나는 최재원의 결혼식 에피소드는 너무 가식적이고, 의도적이고 급작스럽다. 아마 두 남자의 진심이 극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장치를 고민하다 선택된 장면인 듯 한데, 최재원의 주사 및 폭로는 영화에서 쭉 보여줬던 최재원의 캐릭터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모습이라 현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하는 느낌이었나. 그리고 일종의 하일라이트인 그 에피소득 직후 별다른 전개 없이 끝나는 영화의 마무리도 너무 후다닥 끝낸다는 느낌이었다. 뭐가 그리도 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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