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좋은 슬픈 공포.....
분명히 한국시장을 고려한 듯한 한국에서의 풍경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한국에서 남자친구 위와 함께 생활하던 핌은 엄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타이로 돌아온다. 어린 시절 샴쌍둥이로 보냈던 큰 저택에서 머물게 된 핌은 돌아온 직후부터 어린시절을 떠올리는 동시에 분리 수술 도중 죽은 플로이의 혼령에 시달리게 된다.
영화는 평생 한몸으로 살자고 약속했던 핌과 플로이의 행복했던 한 때와 병원에서 알게 된 위가 핌을 좋아하게 되면서 둘 사이가 벌어지는 과정을 담담한 음악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플로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핌이 위와 사귀기 위해 분리수술을 원했으며, 수술 과정에서 플로이가 죽게 됐다고 말한다. 따라서 영화의 중반부까지 보이는 몇 번에 걸친 쌍둥이 혼령에 의한 공포는 핌의 죄책감에 의해 발생되는 것으로 관객은 이해하게 된다.
샴쌍둥이는 그 사례가 처음 타이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니깐 타이산 공포영화로는 그 소재 자체가 아주 적격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공포영화로서 <샴>이 주는 공포장치는 기발한 것도 아니고, 참신한 것도 없다. <샴>에서의 공포장면은 장르영화에서 너무 익숙하게 보아오던 그런 장면들이다. 거기에 영화 안에서조차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가 흐르다가 혼령이 나타나고, 깜짝 놀라 남자친구에게 안기고, 다시 돌아보면 아무 것도 없게 되는 상황. 오히려 영화는 혼령이 등장하는 장면보다는 옷장에 보관 중인 옆구리가 붙은 옷, 두 개의 거울, 두 개의 인형 등과 같은 인물을 감싸고 있는 배경이 더욱 음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물론, 공포 장면이 익숙하다고 해서 이 영화의 장점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보다 좋은 이야기에 있다. 중반부까지 별로 무섭지 않게 반복되는 공포 설정은 아마도 후반부의 반전을 위한 의도적 느슨함이라 할 수 있다. 관객에게 핌의 자책감에 기인한 공포라고 믿게 하다가 사실은 공포의 실체가 다른 곳에 있다며 눈앞에 펼쳐놓는 이야기는 드라마로 제작해도 될만한 꽤나 안정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반전이라고는 해도 영화를 집중해서 보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려운 미션도 아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핌 옆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앉지를 않는다. 그런데 비어있는 옆자리의 위치는 영화를 통해 알게된 정보와는 다른 위치라는 것 등등. 한국공포영화의 단점으로 누누이 지적되고 있는 게 이야기의 허술함이라는 점에서 <샴>은 그 좋은 본보기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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