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바빠서.그렇게 풍요롭지도 않다. 직장에서 쫓겨나 마누라 눈치 보는 백수 신세이거나 택배와 대리 운전을 오가며 근근하게 가족을 부양하거나, 어린 자식들 외국 유학길에 마누라까지 보낸 채 홀로 돈 벌어 부치는 기러기 아빠로 살아간다.
잊거나 잃어버린 낭만을 탈환하고자 한다.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잊거나 잃었던 대상은 이 시대의 중년이요, 아버지이며, 그들이 잊거나 잃었던 낭만은 락밴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낭만을 잊거나 잃어야 하는가. 그들은 자신의 낭만을 추구하기엔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덕분이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삶의 본능을 일깨운다. 그 본능은 ‘뭔가 내 몸 속에서 부글대는 것이 있었던’ 시절의 낭만이다. 그래서 반갑지만 한편으론 낯설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전작들에서 남성들의 놀이판을 한차례씩 벌렸던 이준익 감독의 사적 욕망에 가깝기도 한 탓이다. 사실 <즐거운 인생>은 이준익 감독의 전례들에 비해 가장 무성의한 놀이판이다. 인물들의 일상은 종종 일방적인 동정심을 유발시킬 정도로 도식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의 장기는 여실하다. 놀 줄 아는 배우들은 멍석만 깔린 영화에서 알아서들 잘 놀기도 하며 비중과 관계없이 개별적인 인상을 남긴다. 흔히 말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속성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배우의 매력을 캐릭터에 접합시키는데 능숙한 감독의 역량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왕의 남자>를 통해 이준기라는 배우를 끌어낸 것처럼 장근석을 얼굴 마담격 이상의 배우적 캐릭터로 승화시킨 것도 성공적이다.
인생이 묻어있는 담담한 대사와 캐릭터들의 진솔함이 단연 매력적이지만 현실을 간과한 것마냥 무의식적으로 낭만에 도취되는 영화적 몰입은 어딘가 석연찮은 것도 사실이다. 그건 낭만으로 간과되기엔 현실이 만만치 않음을 누구나 알고 있는 지리멸렬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즐거운 인생 그 지리멸렬한 이유를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감을 느끼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