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된 영화였다. 원래 일본영화를 좋아하고 따로 가리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몇 장면이 지나가고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바로 여주인공의 이름, 시즈루.
내가 이 이름을 듣고 놀란 것은 과거 어떠한 계기로 내가 이 이름을 상당히 좋아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시즈루...설마 그 시즈루겠어? 그런데 정말로 그녀의 이름은 사토나카 시즈루.
게다가 남자 주인공은 세가와 마코토였다. 이 두 이름은 내가 몇 년 전 마츠다 류헤이와 히로스에 료코가
주연한 <연애사진>이라는 영화의 남녀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물 설정을 제외하는 전혀 다른 에피소드의 이야기였다.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영화 <연애사진>의 원작자 이치카와 타쿠지가 <연애사진> 이후에
쓴 같은 주인공의 다른 줄거리를 가진 <연애사진, 또 하나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주 흥미롭게 되었다.
<연애사진>이라는 영화를 보고 여주인공 사토나카 시즈루의 이름까지 사랑하게 된 나였으니까.
한 장면, 한 장면을 두 영화 사이에서 오가면서 보는 느낌이랄까, 꽤 신선했다.
<연애사진>에서는 남자 주인공 마코토(마츠다 류헤이 분)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었다.
신선하고 예쁘고 눈에 띄는 여주인공 사토나카 시즈루에 의해서 자극받고,
그 때문에 성장하게 되는 마코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반대로 여주인공 사토나카 시즈루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아니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성장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시즈루.
미야자키 아오이가 아니라면 누구도 소화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스스한 단발머리에 말도 안되는 레이어드 스타일, 거기에 뿔테 안경까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해대는데다 때때로 너무나 솔직하게 마코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애초에 두 영화는 서로 가는 길이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애사진>을 다 봤을 때, 나는 그 영화가 사랑에 관해서라기 보다는 성장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마코토가 시즈루를 잊지 못하고 결국에는 몇 년만에 온 편지때문에 뉴욕으로 간 것은
대학시절부터 자신을 속박하던 시즈루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에서 마코토를 뉴욕까지 이끈 것은 그러한 호기심이 아닌
바로 시즈루에 대한 사랑때문이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주제가 달랐던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다소 주관적인 영화평이 되버렸지만(ㅠ.ㅠ)
그래도 이 둘 중에 한 영화만 본 사람이라면 나머지 한 영화도 꼭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