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주한미군에 입대한 입양아가 수소문 끝엔 아버지를 찾았는데 그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였다면...? 어렵게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재회의 정을 쌓아가고 있는데 유전자 검사 결과 친부가 아님이 밝혀진다면? 과학적 물증 앞에서도 아들은 그를 아버지라고 확신하며 여전히 사랑을 거두지 않으려 한다면?
4년 전 방송을 통해 화제가 되었던 입양아 애런 베이츠의 실화가 영화화 되었다. 드라마틱한 배경현실도 그렇지만 DNA 검사결과가 불일치해 친부가 아닐 확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친아버지라고 믿으며 모든 사랑을 다하는 애런의 선택은, 인간의 뿌리에 대한 근원적 갈망, 가족의 의미와 사랑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재였다.
이 특별하고도 희귀한 부자간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려는 시도를 탓할 수는 없지만 제작사는 그 과정에서 중대한 실수를 한다. 아니 실수라기보다는 도덕적 윤리와 상업적 이윤추구 사이에서의 선택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제작사는 사전에 피해유가족을 찾아 양해를 구했어야 했지만 일부에게만 양해를 구했을 뿐 정작 중요한 피해자의 아들을 찾지 않았고 - 제작사는 찾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찾아간 피해자의 아들이 상영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을 강행한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피해자 가족은 당시의 끔찍한 가족사가 다시 세상에 공개됨을 고통스러워했다. 더군다나 토막 살인범의 부성애를 다룬 영화라니... 그러나 제작사는 이제 와서 백지화할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결국 상영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제작사측에서 내세운 홍보문구를 보니 ‘올 가을, 눈물로 다가올 감동 실화’라고 적혀있다. 사실 영화자체로만 본다면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연기도 훌륭했고 연출도 깔끔했다. 실제의 사건을 모르고 그저 ‘실화였구나’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감동적일 수도 있는 영화였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을 알고 본다면 오히려 감동은 불편함으로 변한다. 더군다나 만약 실제의 사형수가 자신의 죄를 회개한 게 아니라 뿌리찾기를 갈망하는 순수한 청년을 이용하여 감형이라는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한 목적이었다면 영화 속 사형수의 부성애는 분명 미화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영화는 개봉되었고 영화에 감동을 표하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다. 그 감동의 동심원이 커지면 커질수록 유가족은 고통의 추석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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