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키드, 그의 꿈과 열정을 사랑한다.
평론가든, 전문가든 그들 집단은 영화 정보를 전달하여 영화 관람객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는 집단일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영화평론가 집단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관점을 강요하는 권력 집단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러한 권력 집단으로서의 힘은 영화의 많은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전쟁으로 비유될만한 ‘D-War'에 대한 논쟁은 기자, 평론가와 같은 전문가 집단의 객관성을 무장한 주관적 비난으로부터 야기되었다. D-War에 대한 평론가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영화를 영화로서 얘기해야 하며,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인 노이즈 마케팅과 애국심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 한국인의 한국 영화 사랑을 집단적 광기, 혹은 흔한 팬덤 문화의 한 현상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셋째, B급 장르 영화도 분명 영화의 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B급이라는데서 기인하는 저급성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넷째, 코메디언 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는 저급하다는 사회적 인식을 기반으로 'D-War'라는 영화에 대해서 평가한다. 다섯째, 영화 평론가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지식 집단이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것은 항상 옳다라는 관점을 주입시키려 한다. 그래서 영화를 사랑하는 매니아적 입장으로 이 다섯가지에 대해서 얘기하려 한다.
1. 영화를 영화로서 얘기해야 한다
D-war에 대한 논쟁을 하면서 평론가들은 영화를 영화로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관객이 좋아하지 않으면 안된다", "관객의 눈은 무섭다", "한국 영화의 힘은 한국 영화를 보러 와주는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와 같은 발언을 수도없이 생산해왔다. 그런데 왜 “D-War"에서는 애국심을 자극하는 애국심 마케팅이 문제가 되는 것인가? 이미 그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 사랑이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부여하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려 노력했다. 영화 개봉과 맞춰 다양한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배우들을 보내며 스타 마케팅을 했으며, 의도적인 노이즈 마케팅 기법을 사용하여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 하였다. 이러한 방법에 대해 모르고 있는 관객은 없다. 그저 영화를 홍보하려는 마케팅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렇게 홍보를 해도 관객들은 재미없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영화 홍보를 위한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나온 심형래 감독의 발언을 통해 주류와 비주류를 싸움 붙여 노이즈 마케팅을 시도했다고 호도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그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한 감독의 진실한 눈물을 보게 되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SFX 영화의 꿈을 위해 20년이라는 시간동안 노력해온 감독으로서의 심형래를 찾아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심형래 감독을 사랑하는 것은, D-War라는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한 영화 감독의 진실한 눈물에 감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2. 한국영화 사랑을 집단적 광기로 매도한다.
평론가들은 한국 영화 사랑을 집단적 광기 혹은 팬덤 문화의 부정적 현상으로 매도하고 있다. 언제는 한국 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그렇게 사모곡을 부르짖더만, 정작 사랑해주니 왜 사랑해주냐고 따지고 있다. 물론 그들이 영화 말미에 삽입된 아리랑을 내세우며 미흡한 서사 구조나 연기력을 민족주의라는 정서에 호소하여 극복하려 한 것에 대한 지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블럭버스트 영화에서 서사구조가 완벽한 영화는 손을 꼽는다. 전체 영화에 1%도 안된다. 하지만 영화 전문가은 이 1%도 안되는 영화에 기준을 맞춰 "이러한 영화가 있지 않는냐? D-War는 뭐냐"라는 식으로 부정적 여론 몰이를 한다. 서사구조가 엉망인 다른 블록버스터에서 영화에서도 그렇게 처참하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영화 잡지를 꽤 오래 봐왔지만. 이렇게 모든 평론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처참하게 평가한 경우는 본적이 없다. 영화의 전체적인 평은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몇 명은 영화를 옹호해주고 애정을 보여줬다. 그것이 의도적으로 형평성을 맞춘 것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균형있게 평가했다. 하지만 D-War에 대한 평가는 처참하리만큼 잔혹했으며, 전문성과 객관성으로 무장한 충무로의 부라퀴 군단은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을 짓밟았다. 또한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려는 한국 영화을 할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이 부르짖는 한국 영화 사랑은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질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 영화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다. 공허한 메아리보다는 집단적 광기가 더 낫다.
3. B급 영화라는 것을 전면에 내세워 영화를 질을 평가한다.
B급 영화, 영화의 장르가 무슨 죄인가? B급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저급함이라는 냄새를 강요하고 싶은 것인가? 하지만 세계 영화사를 통틀어 B급 영화이기 때문에 그 영화가 저급하다고 하는 비평가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영화 평론가의 평가는 어떠한가?
“어차피 외국 애들 눈높이에 맞춘 B급 아동영화, 한국 어른들이 좋아라하긴 힘들다.”
B급 아동영화, B급 영화가 분명히 하나의 영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보기에는 수준이 낮은, 그래서 한국 어른들은 좋아하지 않아야 하며, 좋아하면 너의 영화보기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이다라는 것을 은연히 강요하고 있다. B급 영화 분명 그것은 하나의 영화 장르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B급 영화의 시작이 1930년대 헐리우드에서 스타 위주의 A급 영화들이 개봉되는 도중에 ‘끼워 넣는’ 저예산 영화로 시작되었지만, B급 영화는 B급 영화의 대부라 불리는 로저 코만이 등장함으로써 변화를 맞게 되었다. 50~60년대 로저 코만은 수많은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면서 프란시스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존 세일즈, 제임스 카메론, 로버트 드니로, 잭 니콜슨, 데니스 호퍼 등과 같은 대감독들과 배우들을 키워냈다, 이 힘을 기반으로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를 필두로 ‘에일리언’, ‘터미네이터’를 만들어냈다. 당신들의 B급이라서 영화가 저급하다고 하면 죠스나 에일리언, 터미네이터 또한 저급하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평론가들의 시선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D-War'를 비교했을 때 극명해진다. 괴수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괴물‘이나 ’D-War'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이야기 구조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첫째, 거대한 괴수가 등장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사람들은 도망친다. 둘째, 군대가 출동하여 괴수의 파괴를 저지한다. 세 번째, 인간의 힘으로 괴수를 물리치거나 혹은 인간의 편이 되는 새로운 괴수가 나와서 악한 괴수를 물리친다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러한 괴수 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 ‘D-War'의 서사 구조가 엉망이다라며 전문가인척 하는 사람은 영화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아마추어일 뿐이다.
과연 평론가들이 이러한 괴수 영화의 서사 구조를 모르고 있었을까? 절대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D-War'라는 영화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잣대가 이중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정말로 괴수 영화의 공식을 모르고 있었는가? 모르고 있었다면 얘기해라. 책 한권 사줄테니까.
4. 코메디언 출신 감독, 당신의 출신 성분을 제대로 알고 행동해라
당신은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봤는가?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왜 코메디를 저질이라고 폄하하는가? 영화 평론가, 당신들에게 묻는다. 개그(gag)에 대해서 아는가? 물론 당신들은 그 정도는 알기 때문에 평론가 혹은 기자라는 명함을 내미는 것이라 생각한다. 연극이나 영화, TV에서 관객을 웃기기 위해 끼워넣는 즉흥적인 대사나 우스갯짓을 의미하는 개그가 찰리 채플린이나 키튼 등의 작품을 통해 빈정거림이나 풍자 등 풍부한 내용을 담는 웃음으로 발전되었다는 것, 잘 나신 전문가 분들이시는 분명하게 알 것이라 생각한다.
“심형래 감독이 차라리 코미디언으로 다시 돌아가서 밝은 웃음을 다시 주는 건 어떨까 싶다”
영화를 소개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심형래를 평가하지 않고, 과거에 코메디언으로 돌아가라는 발언을 통해 사대주의와 엘리트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전문가 집단을 속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사대주의와 엘리트 지상주의를 들켜버린 전문가 집단이 “영화를 영화로서 평가해야한다”며 스스로 자기 모순이라는 함정에 걸어들어가는 바보스러운 한 편의 코메디를 보게 된다. 아마도 당신들이 코메디언이 된다면 정말로 재능있는 코메디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얼마나 재능있는 코메디언들인가?
5. 나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내 의견은 옳다. “닥치고 내말을 따르라.”
TV 토론회에서의 진중권씨의 발언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괴수 영화의 기본 서사 구조도 모른 체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 이론으로 ‘D-War’를 분석하는 무대뽀(?) 정신을 보면서 한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치는 교수인가 의심하게 되었다. 서사의 기본 구조을 다룰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과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맨 처음 배운다. 전자는 감동과 재미를 주는 구조적인 형식의 의미로서 분석되며, 후자는 위장과 속임수라는 서사의 본질적 접근으로 분석된다. 즉 아리스토 텔레스의 ‘플롯’은 서사 구조를 흐름을 만들어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으며, 프로이드의 ‘무의식’ 이론은 그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채워 넣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중권씨가 얘기한 아리스토 텔레스의 ‘플롯’은 어떻게 하면 관객을 사로잡고, 절정에 이를 때까지 긴장을 고조시켜 가장 극에 달했을 때 방출시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하느냐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카타르시스는 모든 서사의 오르가즘이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이러니, 혹은 반전이나 발견이라고 표현했다.(반전이란 이제까지 서사를 정반대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며, 발견은 지금까지 알아온 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풀어서 얘기하면 여러 가지 인물들이 등장하여 서로 얽혀 복잡해지다가 숨었던 진실이 드러나면서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 이르면 카타를시스를 맛본다는 말이다. 괴수 영화는 분명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한 그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괴수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 사회의 문제가 발생하고, 점점 많은 피해를 당하다가 혹은 도망다니다가 괴수를 물리치거나 혹은 다른 착한 괴수의 도움을 받아 물리치는 과정을 통해 관객은 카타르시스틀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진중권씨의 아리스토텔레스 얘기는 정말 그가 미학을 알고 있는가라고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과연 그는 대학에서 어떤 미학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관객의 느끼는 카타르시스, 이는 페이소스라는 단어와 연결지을 수 있다.
“디워는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페이소스가 있다”
페이소스는 동정과 연민의 감정, 혹은 애상감, 비애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어 파토스(Pathos)에서 유래되었다. 파토스(대중 관객)가 특정한 시대 지역 집단을 지배하는 이념적 원칙이나 도덕적 규범을 지칭하는 에토스(Ethos)(충무로 평론가 집단)와 대립되는 말이라는 사실을 볼 때, 지금의 D-War는 파토스와 에토스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파토스와 에토스가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했을 때 그 의미하는 바는 크다. 브레이트는 변증법이 “굳어진 관념들을 해체하고,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해서 실체를 관철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지배자가 제시하는 허위 의식, 관객과 동떨어져 있는 평론가들의 공허한 주장, 즉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이나 굳어진 관념의 실체를 드러내도록 하여 관객 혹은 독자들이 스스로 올바른 결론을 내리는데 변증법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즉, 지금 우리는 D-war라는 영화를 통해 영화 평가를 지배하는 평론가들의 허위 의식이나 관객과 동떨어져 있는 굳어진 관념을 깨드려 새로운 한국 영화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6. 우리는 따뜻한 온정으로 D-War를 평가한다.
평론가들의 시선에는 따뜻한 온정이 없다. 차가운 시선을 냉철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영화를 사랑하는 일반 관객들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허위 위식과 관객과 동떨어져 있는 공허한 주장만을 남발하며 스스로 관객들과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이 애국심, 민족주의라고 비난해도 따뜻한 온정으로 D-War를 감싸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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