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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없는 듯 하지만 영리하다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jimmani 2007-07-24 오전 4:53:00 1849   [7]

벼라별 사람들이 다 스타가 되는 시대다. 인터넷이 발달한지는 10여년이 지난데다 UCC라는 인터넷이 만들어낸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고, 비단 TV를 통해 유명세를 얻는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재능과 특징으로 웬만한 스타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때론 "저런 경우는 굳이 스타로 떠오르지 않아도 되는데" 싶은 논란을 불러 일으킬 만한 경우도 생긴다. 단순히 현상수배 전단지에 나온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강도 얼짱"이라는 당황스러운 유명세를 얻는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만큼 맘만 먹으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게 된 지금, 사람들은 또 다른 새로운 스타를 찾느라 부산하다.

막말로 재앙스런 길을 밟을 줄 알았던 영화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이하 "꽃미남")은 놀랍게도 이러한 현실에 주목한다. 10명이 넘는 대규모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나오는 영화를 그 그룹 소속사에서 제작한다는 소식을 불과 개봉 한달 전에 들었을 때, 아이돌 그룹이 영화에 출연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스쳐갔다. 젝스키스가 출연했던 <세븐틴>, H.O.T가 출연했던 <평화의 시대>, 유명가수들이 한 무더기로 나왔던 <긴급조치 19호> 등 인기 그룹 멤버들이 함께 출연한 영화는 보통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재앙스런 평가를 받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꽃미남>의 제작 및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본 느낌은, 일단 영화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만듦새에 꽤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몇몇 고등학교들을 둘러싸고 의문의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각 학교에서 독보적인 꽃미남으로 명성을 펼치던 이들이 매월 14일마다 한밤 중 귀가길에서 인분 테러를 당하는 것. 얼마 전 학생회를 나온 모범생 기범(김기범)은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신의 블로그에 나름 이 사건에 대해 집중탐구하는 내용의 포스트들을 올리게 된다. 이내 이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은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최대의 화제로 떠오르고 기범의 블로그도 연달아 높은 방문자 수를 기록한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사건의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다음 피해자가 누구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테러를 당한 이들이 명실상부 인정받은 꽃미남으로 급부상하며 큰 인기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기범의 추측으로 다음 피해자는 기범이 다니는 늘파란고등학교의 트로이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나올 것 같은 학생회장 시원(최시원), 학교내 댄스그룹 울트라주니어 멤버로 춤 실력에는 살짝 의문이 가지만 외모가 되는 희철(김희철), 메다꽂기가 최대 주특기인 유도부 주장 강인(김영운)이 지목된다. 테러 피해자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에 혹한 세 사람은 테러를 피하기보다 오히려 테러를 당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과연 다음 피해자는 누구이고 범인은 누구인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영화에 출연할 경우에 흔히 지적되던 점 중 첫번째는 바로 연기력이다.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형식을 지닌 한 꼭지에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한 시간 반짜리 영화를 온전히 짊어지고 가기에 이들은 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도 심지어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도 있기에 그 실력이 의심가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그 내용이 사뭇 진지하다면 더 그렇다. 사실 <꽃미남>에 출연하는 슈퍼주니어 멤버들의 연기력도 썩 출중한 건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내용부터가 진지하기보다는 가벼운 코미디를 지향하기 때문에 연기에 있어서 크게 깊이를 요구하진 않는다. 더구나 12명이나 되는 멤버가 80여분 되는 영화에 출연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따져봐도 한 사람 당 출연시간이 6~7분, 그만큼 배역의 비중이 분산되어 있어서 이 정도 분량 만으로 연기력을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제작사도 분명 이 점을 노렸을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연기는 생각보다 무난한 수준이다.(거기다 다행이 김희철, 최시원, 김기범 등 연기 경력이 있는 멤버도 몇 있다)10명이 넘는 멤버들이 여러 역할을 나눠 맡고 있지만 그 중에서 학생회장 시원의 오른팔을 연기한 김려욱의 연기가 주목할 만하다. 12명의 출연진들 중에서 가장 망가진 모습으로 나오는 김려욱은 기존의 이미지에 어느 정도 정형화된 안전한 연기를 보여주는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기존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개성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단연 눈에 띄는 역할을 한다. 대사 처리는 자연스럽지 못하지만 표정이나 제스처 연기는 팬 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이라도 꽤나 웃음을 이끌어낼 만하다. 김희철과 강인이 보여주는 "자기 잘난 맛에 살지만 사이다만 먹고도 취할 만큼 어리버리한 구석도 있는" 모습도 제법 웃음을 자아낸다. 김려욱 외 다른 멤버들은 자신들이 지닌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안전한 이미지 연기를 하기 때문에 진부하지만 안정적이다. 더불어 미공개 배역으로 등장한 박정수가 몸짓 만으로 보여주는 연기도 톡톡한 양념 역할을 한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지적받는 두번째 사항은 어울리지 않는 무게감이다. 기존의 영화들은 그룹 멤버들을 출연시켜 그들에게 이전까지는 별로 보여주지도 않았던 진지한 고민의 모습을 떠안기고, 어차피 멤버들의 매력만 부각시킬 거면서 제대로 파고 들어가지도 못할 그런 고민들에 함부로 손을 댄다. 그러나 <꽃미남>은 이러한 노선을 따라가지 않는다. 영화는 애초에 무게를 버리고 한없이 가벼운 분위기로 나아간다. 고등학교 꽃미남들에게 테러가 발생한다는 인터넷 소설스러운 설정에서 출발해 만화적인 과장과 오버로 가득한 멤버들의 연기를 수놓고, 그 속에 적당한 웃음을 더한다. 감동 따위도 의도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돌 그룹이 펼치는 한바탕 신나는 쇼처럼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연기가 익숙하지 않은 인기 그룹 멤버들이 전면에 나선다는 위험한 밑바탕 위에 오히려 제대로 진지한 영화 만들어 보겠다고 섣불리 무게를 실었다간 오히려 더 깊은 낭떠러지로 빠지기 십상이다. 때문에 아예 작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움을 유지하자는 <꽃미남>의 기조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보자는 시도로 꽤 적절해 보인다.

그렇게 가벼움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생각보다 현란한 기술을 구사한다. 일단 화면의 때깔부터가 오히려 정식 배우들이 나오는 다른 코미디 영화들보다도 오히려 더 공을 들인 듯 유려하다. 소녀팬들을 잔뜩 거느린 꽃미남의 모습을 산더미를 이룬 초콜릿,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소녀팬들, 부담스러울 정도의 후광을 내뿜으며 나아가는 모습 등을 통해 만화적으로 희화화시키는 모습은 CG를 통해 지극히 유치하지만 꽤 봐줄 만한 색감을 자랑한다. 더불어 학생회장의 뇌구조를 분석하는 장면, 무언가 결정적인 순간에 효과음을 글씨로 표기하며 만화책 효과를 내는 장면, 사건의 개요를 현란한 그래픽과 빠른 편집으로 소개하는 장면들에서도 오히려 진지한 영화들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신선한 비주얼을 선보이며 영상에 꽤 공을 많이 들였다는 인상을 충분히 준다.

저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가 싶을 만큼 과장된 설정들도 연이어 펼쳐진다. 곰을 메다꽂을 만큼 힘이 세다는 뜻인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진짜 곰과 같이 생활하는 유도부의 모습, 학생 대표로서의 카리스마를 빗댄 표현인지 상당한 손가락 염력(?)을 지닌 학생회장 시원의 모습 등 기본적으로 학원물을 표방하면서도 그 속에 현실적으로 전혀 말이 안되는 여러 설정들을 집어넣음으로써 황당한 웃음을 안겨준다. 오히려 어설프게 현실적이려 하지 않고 대놓고 현실을 벗어나기에 더 유쾌하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요소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CG를 이용한 과장된 캐릭터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곳곳의 설정들, 거기에 나가는 순간까지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듯 엔딩을 장식하는 전 멤버의 뮤지컬과도 같은 퍼포먼스 장면까지, 영화는 일본 코미디물스런 면모를 곳곳에서 풍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작정하고 가벼운 모드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영화는 자신이 10대의, 10대를 위한, 10대에 의한 영화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으며 10대들의 고민을 잔잔히 풀어나간다. 테러당한 꽃미남에 우루루 몰리는 10대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벗어날 길이 없는 학교에서의 틀에 박힌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의 일탈을 꿈꾸는 10대들의 심리를 쫓아간다. 비록 이미 지나온 시점으로 봤을 때 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그 속에 있는 순간만큼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만큼 기나긴 수험생의 나날을 지나고 있는 10대들의 모습은 영화 시작부터 펼쳐지면서 어느 정도 공감을 자아낸다. 그 뒤에 등장한 꽃미남 테러 사건의 전말은 앞서 나왔던 수험생의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기범의 나레이션이 펼쳐지면서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앞서 얘기했듯 온갖 매체에서 스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도 끊임없이 우상 혹은 의지할 대상을 찾아다니는 10대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나름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어른들은 가능성이라 하지만 우리에겐 불안"이라고 10대 시절을 정의하는 기범의 나레이션을 통해 영화는 이 사건들이 지극히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인 판타지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다 못해 똥맞은 꽃미남에게도 목을 맬 만큼 선망의 대상, 환상을 품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는 10대의 심리가 반영된 현실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지한 얘기들은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기범의 나레이션으로만 따로 얘기되는 듯한 아쉬움을 준다. 오히려 주책스럽게 맘껏 뛰노는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 장난스럽게 이러한 메시지들을 집어넣었다면 더욱 유쾌한 청춘영화가 되었을 수 있겠지만, 이들의 가벼운 모습은 따로 배치하고 뒤이어 나오는 진지한 기범의 나레이션은 마치 영화 분위기와는 다소 동떨어진 해설같은 느낌을 준다는 게 아쉽다.

또한 앞서 이 영화가 아이돌 그룹 기획사로부터 나온 상품 치고는 꽤 볼 만한 만듦새를 갖추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그렇다고 이 그룹의 팬이 아닌 관객들, 10대가 아닌 성인 관객들까지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만큼 영화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출연한 영화로서의 한계점 또한 분명히 지니고 있다. 영화 내내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꽃미남 이미지"가 극대화된 만화적 장면들은 팬들은 몰라도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래도 역시 이 영화가 슈퍼주니어의 팬들을 노린 상품이긴 하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더불어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는 인분 테러에서부터 시작해 내용 전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각종 화장실 유머들은 아무리 영화가 극한의 가벼움을 지향한다고 한들 이 정도의 찝찝한 유머까지 집어넣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안겨준다. 80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상영시간동안 펼쳐놓는 이야기들의 전개가 급작스럽고 사건의 전말이 보여주는 개연성의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 또한 영화가 갖고 있는 한계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꽃미남>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긴급조치 19호> 등 인기 그룹이 출연한 숱한 실패작들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을 것이라는, 우려 수준도 아닌 핀잔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꽤 능력 있는 연예 매니지먼트사이기도 한 이 영화의 제작사는 <꽃미남>을 대책없는 듯 하면서도 은근히 영리한 영화로 만들어냈다. 10대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출연한 영화를 온전히 10대들이 선호할 만한 취향으로 만들어냈고, 그 범위 안에서 꽤 다양한 테크닉을 펼쳐 보였다. 짧은 시간에 만든 영화치고는 외양이 꽤 매끈하고, 박연선 작가가 쓴 이야기는 막 나가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꽤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사를 던진다. 섣부른 무게감을 가지려 애쓰지 않고 10대들을 위한 영화 그만큼의 경쾌함을 지켰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10대들을 위한 안전함을 노린 "기획상품"이라는 점에서 허점은 곳곳에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은, 적어도 이 영화가 12명 멤버들의 유명세만 믿고 따라가진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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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 연쇄 테러사건(2007)
제작사 : SM픽쳐스, 폴룩스 픽쳐스 / 배급사 : 영화사청어람, 엠엔에프씨
공식홈페이지 : http://www.flowerboy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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