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햇수로는 7년째, 그리고 시리즈상으로는 5번째에 해당하는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이 드디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대단원의 마지막 편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도들' 이 2주후 발매를 남긴 시점에서 개봉하는 것이라 전세계의 이목이 그 어느때 보다 집중되어 있다.
이름조차 거론되는 것이 두려운 '그' (볼드모트)의 귀환을 부정하고 싶은 '마법부'는 정치적인 혼란을 막기위해 내부 인사인 엄브릿지 교수를 학교로 파견하여 학생들의 마법 실기수업을 금지 시키고 이론수업만을 강요하게 된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볼드모트의 존재에 대한 혼란은 가중되고 우리의 '해리포터'는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외로운 왕따 학생이 되어 간다. 게다가 엄브릿지 교수의 정책은 사사건건 학교와 부딪히고 결국 압력을 견디지 못한 학생들은 해리포터를 중심으로 마법방어술 실기를 연마하기 위해 그들만의 스터디 그룹을 결성하여 볼드모트에 대항할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데...
보통 4권으로 이루어진 전 편들과는 달리 한권이 더 많은 최장편 '불사조 기사단'이 역대 해리포터 영화 중에 가장 짧다는 것은 이번 영화가 어찌보면 가장 원작에 불성실 하다는 것을 드러내 놓고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항상 '좋은게 좋은것' 이라는 가족 영화만을 만들어온 1편의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이후에 문제의식 있는 감독들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이끔으로서 이 영화가 단순한 시리즈 물이 아니라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남기를 원하는 대중들의 기대를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 만족시켜오고 있다.
이번 편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생소하기 짝이 없는 데이빗 예이츠는 영국에서 최근에 정치적인 문제들을 가장 잘 다루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번편에서 '자유로운 사상을 가로막는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맞서는 저항정신'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멋진 포부를 밝혔지만 원작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인물간의 관계설정이나 에피소드를 생략함으로서 해리포터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만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 일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해리포터의 단짝인 '론'의 성장과정을 애정있게 그린 부분을 완전히 생략한것은 이 시리즈의 '캐릭터'를 사랑하는 섬세한 팬들에게는 감독의 제작 의도와 상관없이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무성의 하게 보일 것이다.
전편들에서 해리포터가 퀴디치 게임에 나가고 학교별 대항전에 나가고 수업을 받고 과제를 풀고 교수들의 보호를 받는 '어린이' 였다면 이번 5편의 해리포터는 위치적으로는 앞으로 단 두권만을 남긴 방대한 시리즈의 결말로 달려가는 본격적인 장(章) 이면서, 성장단계로는 어른의 사회와 부딪히는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어와 있다. 또한 기성세대의 기득권력층을 상징하는 마법부의 전횡에 그냥 손을 놓고 당하기만 하는 무감각, 무비판 에 빠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지가 법을 어겨놓고 '악법도 법이다'라고 외쳤던 소크라테스 아저씨의 해괴한 논리를 거부하고 스스로 사내강사, 아니 교내강사를 역임하면서 반정부 세력(?)의 선두에 서게 되는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다.
덤블도어 교장 또한 예상과 달리 마법부의 구속영장에 썩소를 날리며 '내가 순순히 잡혀갈 것 같냐?' 라는 연세에 안어울리시는 반항과 함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화려한 노익장 불사조 마법을 시전 하며 탈출해버린다. 이는 정부의 강압적인 탄압이 비록 적법한 들, 적합하지 않고 진실을 외면한 것 이라면 의식있는 젊은이와 지도자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싸워 물리쳐야 한다는, 지극히 참여주의적인 민주주의 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어른과 청소년들에게 모두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소설임을 감안할때 5편 '불싸조 기사단'은 개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몰개성주의 기성세대에게 따끔한 불을 막 쏴대는 "불싸줘" 정신을 고취 시키는 동시에 그들 스스로 뜻을 일으켜 몸소 돌파해 나가는 입지자적인 성장기를 보여줌으로서 해리포터가 이제는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치적인 줏대를 지킬 줄 아는 리더쉽이 강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외로 머리아프고 상당히 부담스러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눈이 시리도록 가슴 아팠던 장면은 '덤블도어 군대' 로 명명된 해리포터와 학생 일당들의 방어술 실습 장면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궁극의 마법이라는 '익스펙토 패트로눔'을 연마할때 이다.
시리즈 3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처음으로 해리가 외쳤던 ‘익스펙토 패트로눔’은 가장 강력한 마법사들만이 할 수 있는,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는 주문이다. ‘익스펙토(Expecto)’는 라틴어로 ‘기다린다’라는 뜻이고 ‘패트로눔 (Patronum)’은 '수호자' 라는 뜻을 가진 '패트로누스'의 준말이다. 그러니까 이 주문은 '나를 보호해 줄 막강한 힘' 을 소환하는 마법인데, 이 주문을 하는 요령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욱 어렵다.
과거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그 다음, 그 기억에 온 마음을 집중해 '익스펙토 패트로눔!' 을 외치면 된다. 이 마법을 최고 경지의 마법사들만 쓸 수 있다는 말은 ‘가장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찾아 내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마법 지팡이 에서 뿜어져 나온 '패트로누스'는 은빛 광선을 내뿜는 유령 같기도 하고 동물 같기도 하지만 해리포터의 패트로누스의 이미지는 해리 포터에게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자신의 아버지가 학창시절에 자주 변신했던 '사슴'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그것은 해리포터 자신의 긍정적인 의지 그 자체다. 그 긍정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친구들과의 강한 유대감, 자신을 아끼는 주변 사람들을 향한 애정 들이 한데 어울려 볼드모트라는 거대한 악의 영혼을 내면에서 몰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과거로 돌아가 보면 해리처럼 강렬하고도 행복한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를 보호해 줄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행복한 기억과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의 결합으로부터 온다. 그런 면에서 ‘익스펙토 패트로눔’은 행복해지고 싶은 자신의 꿈과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의 선언'과도 같다.
베개에 고개를 묻고 나 스스로 묻는다. 나는 나 자신만의 "극강의 주문"을 가지고 있는지. 그 수많은 행복한 기억들을 스스로 지켜나가고 또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지.. 하루하루 죽어가는 세포들과 죽어가는 꿈들의 시체를 부여잡고 있으니 눈물이 흐른다. '지켜야할 친구들과 꿈을 가지지 못한 볼드모트가 가엽기만 하다' 라고 말하던 해리포터의 자신있는 목소리가 하루종일 귓전을 울린다.
나도 한때는 정말 해리포터 였는데... "익스펙토 패트로눔!!~~~~'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는구나...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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