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식 장난감 로봇을 가지고 놀던 소년들의 한결같은 바람이 바로 그 로봇을 실제로 움직여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년들은 이런 로봇을 타고 세상을 구하고 싶어 하는 망상을 희망으로 품고 자란다. 그 덕에 로봇 연구가 조금씩 진화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인공지능 로봇을 향해 인류는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트랜스포머는 스크린을 통해 바로 그런 소년들의 소망을 현실로 옮겨 놓았다.
달리던 자동차의 바퀴가 들리는가 싶더니 한순간 발이 나오고 손이 나와 로봇이 된다. 로봇들이 나타나 시내 한복판을 질주하고 치고받는 싸움을 펼치기 시작하면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다. 환호성이라도 지르며 그 싸움에 동참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장난감 완구를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말이다. 트랜스포머는 이처럼 변신로봇들의 싸움을 실사로 그린 SF 블록버스터다.
인류를 지켜야 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로봇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하는 모습엔 무선 교신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어진다. 어린 시절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종횡무진 우주를 날았던 상상력이 스크린에서 실제처럼 펼쳐지는 이 광경은 남자들을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마디로 이성이란 논리적인 사고체계를 무장해제 당하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 꿈이라 믿었던 상상의 세계가 이렇게 눈앞에 펼쳐지다니 마치 한편의 꿈을 꾸는 듯 흥분을 감출 수 없다. 한마디로 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로봇 장난감에 대한 판타지를 영화로 옮겨 놓았다.
로봇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상상속의 로봇들이 격투를 벌이기 때문에 정의와 악당이 맞서는 대립구도만 있으면 된다. 정의의 편에 선 로봇은 비록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인간의 조종을 당하더라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착한 놈은 우리 편 나쁜 놈은 악당이란 이분법적 논리가 철저하게 적용되는 게 바로 로봇들의 세계다. 그러다보니 소년들은 로봇을 가지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정의가 승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고, 로봇을 직접 조종하며 그 정의를 실현해보려는 꿈을 간직하게 된다. 소년들이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 곧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