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시리즈는 아무리 인기가 천문학적으로 치솟더라도 무한정 찍어낼 수 없는 프랜차이즈다. 물론 작가가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학사과정을 한 50학년 정도로 정해놨다면 장수 프랜차이즈가 되겠지만 작가는 7학년까지라고 못을 박아놓았고, 그런 이상 해리와 친구들이 7학년을 마치고 졸업하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거기다 해리와 친구들은 한 권 한 권 나올 수록 한 살 씩 나이를 먹기까지 한다. <짱구는 못말려>나 <포켓몬스터> 속 주인공들처럼 해리와 친구들은 10년이 지나도 똑같이 11살 1학년일 수 없다.(찾아보니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리뷰 때도 이 이야기를 써먹었더라. 사과드리는 바이다.) 그만큼 생각도 바뀌고, 만나는 현실도 점점 만만치 않게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전작들에 비해 더 어둡다는 건 굳이 딴지 걸 것 없이 당연한 일이다. 이제 호그와트 5학년. 서양식 나이로 15살이고 우리 나이로 따지면 17살, 정신적으로 알 건 다 알고 신체적으로도 2차 성징은 족히 지나고 남았을 나이다. 주인공 아이들이 이렇게 모두 훌쩍 커버린 상황에서 1편처럼 화사한 마법의 세계와 꿈과 희망만을 웃으며 논하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한 걸음만 나가면 현실과 바로 연결되는 곳. 머리가 자란 만큼 아이들은 이제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곳에 마술 지팡이를 겨누기 시작했다.
5학년이 된 해리(대니얼 래드클리프)와 친구들(루퍼트 그린트, 엠마 왓슨). 해리는 4학년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동료였던 케드릭 디고리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린다. 자꾸만 볼드모트(레이프 파인즈)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듯한, 혹은 자신이 볼드모트가 된 듯한 꿈을 꾸는 해리. 그러던 어느날 방학 기간 더즐리 숙부네 집에서 머물던 중 디멘터들이 나타나 해리와 두들리를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고, 일단은 살아야겠기에 불법이지만 어쩔 수 없이 패트로누스 마법을 써 위기를 넘긴다. 그러나 마법부가 여기에 딴지를 걸고 해리에게 퇴학 조치를 내리며 청문회로 소환한다. 다행히 해리는 볼드모트와 싸우기 위해 덤블도어(마이클 갬본)이 조직했던 "불사조 기사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도움을 얻고 마법부의 결정도 기각되어 다시 학교에 들어가게 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로 새로 부임한 마법부 소속 돌로레스 엄브릿지(이멜다 스턴튼)가 대놓고 호그와트 내 규정에 간섭하기 시작하고, 점점 그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학교 내 학생들과 교수들의 숨통을 조여간다. 게다가 안그래도 볼드모트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마법부는 이 사실을 은폐하려고만 들고 엄브릿지는 실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만 가르치고 있다.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해리와 친구들은 배울 수 없다면 스스로 익히자고 다짐하고 아이들을 모아 방어 마법을 배우는 일명 "덤블도어의 군대"를 조직한다. 그러는 와중에 볼드모트는 끊임없이 해리의 의식에 침투해 혼란을 일으키고, 해리는 정신적으로도 큰 위기에 봉착한다. 이제 진짜 부활한 볼드모트. "불사조 기사단"과 볼드모트의 추종자들인 "죽음을 먹는 자들" 간의 대결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해리는 과연 자기 힘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천문학적 경쟁률을 뚫고 1편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뒤 어느덧 6년이 지나 5편까지 함께 해 온 세 배우들, 대니얼 래드클리프와 루퍼트 그린트, 엠마 왓슨은 이제는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정신적으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해리 포터 역의 대니얼 래드클리프의 연기는 다시 보일 정도다. 단지 해리 포터 역할에만 매달리지 않고 연극 출연 등 배우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해서 그런지 완벽하진 못하더라도 많이 노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시로 볼드모트에게 의식을 지배당하면서 정신적 혼란을 겪는 모습, 주변으로부터 점점 고립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에 외로움과 분노를 느끼는 모습 등 만만치 않은 내면 연기를 요구하는 부분을 꽤 말끔하게 소화해냈다. 어색한 대사와 감정 처리에서 벗어나 성장기의 질풍노도스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이 뱉어내는 청소년의 모습을 적절히 반영해서 결말부 볼드모트와 정신적 대결을 펼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정서적 감흥을 꽤 이끌어낼 정도가 되었다. 그저 유명 캐릭터를 대표하는 아이콘 수준이 아닌 독립적인 배우로서 꽤 가능성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외 론 위즐리 역의 루퍼트 그린트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의 엠마 왓슨도 여전히 믿음직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루퍼트 그린트는 전작들에서처럼 유달리 설치거나 하진 않아도 특유의 살짝 얼빵한 구석을 여전히 잘 살리며 감초 역할을 했고(다만 원작에서의 퀴디치 팀 참가 부분이 좀 드러났더라면 더 활약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엠마 왓슨은 모범생이라 철저히 원칙주의라 해도 그런 만큼 바람직하지 못한 현실에는 생각을 굽힐 수 없다는 신념을 굳게 품은 캐릭터로서 아주 야물딱진 호감 캐릭터로서의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비단 이 삼총사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건 너무 매정한 처사다. 이들 외의 배우들을 살펴보면 <해리 포터> 시리즈는 편을 거듭할 수록 어느덧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시리즈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갬본, 매기 스미스, 이멜다 스턴튼, 앨런 릭맨, 엠마 톰슨, 로비 콜트레인 등 호그와트 식구들에서부터 게리 올드먼, 브렌단 글리슨, 데이빗 튤리스, 줄리 월터스 등 불사조 기사단 멤버들, 레이프 파인즈, 헬레나 본햄 카터, 제이슨 아이삭스 등 어둠의 세력들까지, 영국 출신의 내로라 하는 배우들은 총집결시켜 놓은 듯한 캐스팅에 이들이 서로서로 뽐내는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그 중에서도 다른 배우들은 모두들 여전히 제 역할에 충실한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가정할 때 새로이 등장한 캐릭터들에 자연스레 주목하게 되는데, 그 중 단연 돋보이는 배우는 당연히 돌로레스 엄브릿지 역의 이멜다 스턴튼이다. 처음에 캐스팅을 두고 "소설 속 외모랑은 영 거리가 멀다", "<베라 드레이크>에서의 지극히 선한 이미지와는 너무 대조된다"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제대로 비호감인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녀는 역대 시리즈 사상 가장 화려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연구실을 가지면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촌스러운 패션을 선보인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 소름 끼치게 하는 웃음소리와 가식으로 가득찬 미소, 그리고 겉으로는 온갖 매너를 다 갖춘 듯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온갖 횡포를 서슴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까지, 비록 외모는 원작에서 묘사된 "두꺼비"에 가깝진 않더라도 내적인 모습만은 소설 속에서 상상했던 그 짜증나면서도 우스꽝스런 비호감 이미지 그대로였다. 관객들에게 이러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니, 이멜다 스턴튼의 엄브릿지 교수 역 연기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할 만하다. 죽음을 먹는 자들 중 한 명인 벨라트릭스 레스트랭 역의 헬레나 본햄 카터 역시 이번 편에서 새롭게 등장했는데, 출연 장면은 많지 않았지만 캐릭터 특유의 "똘끼"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향을 역시 많이 받아서인지 다크 포스를 잔뜩 머금은 연기로 짧고 굵은 활약을 해 주셨다. 더불어 역시 새롭게 등장한 루나 러브굿 역의 이반나 린치의 연기도 만족스러웠다. 역시 처음 캐스팅되었을 때 "루나 러브굿 치고는 너무 예쁘다"는 등의 반론이 만만치 않았는데, 시종일관 붕 뜬 듯 몽롱한 발성이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표정 등은 원작 속 루나 러브굿의 이미지에 꽤 잘 맞았다. 물론 도수가 심한 안경을 쓰는 등 원작에서의 보다 과장된 모습은 피한 듯 하지만.
사실 4편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원작을 읽을 때 "이거 영화로 만들어지면 스케일 제대로겠다"라고 생각한 반면 이번 5편의 원작을 읽으면서는 "이건 영화로 만들어지면 그리 스케일이 크진 않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만큼 이번 영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은 4편에 비해서는 스케일 큰 볼거리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4편이 트리위저드 시합과 퀴디치 월드컵이라는 빅 이벤트가 있어서 유난히 스케일이 컸던 것이지 <해리 포터> 시리즈가 그렇게 스케일로 승부걸기 보다는 캐릭터와 크리처들의 환상적인 면모와 이야기의 아기자기함으로 승부를 거는 시리즈가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이번 5편이 전편에 비해 볼거리가 적다느니 스케일이 작다느니 하는 불만은 그리 유효하지는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주요 장면들을 상당히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 같았다. 땅 속에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단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마법부의 풍경은 생각했던 것과는 살짝 다르면서도(개인적으로는 흰색 톤의 분위기를 생각했었다) 규모는 더욱 극대화시켜 독자들의 입맛도 만족시킬 만한 멋진 비주얼을 보여준다. 빗자루와 세스트랄(죽음을 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동물)을 타고 런던의 야경을 질주하는 장면은 마냥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듯했던 판타지가 현실과 만나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듯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해주었고 더불어 런던의 유명 장소들이 나타나며 비추는 한밤중의 불빛들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더불어 자칫 반복되어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는 "덤블도어의 군대" 마법 훈련 장면은 방 안을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그 속에 수놓이는 여러 마법 현상들 덕분에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묘사되었다. 또한 클라이맥스에 가서 펼쳐지는 유리구슬 방에서의 추격신, 불사조 기사단과 죽음을 먹는 자들 간의 마법 대결신, 볼드모트와 해리, 덤블도어 교수가 펼치는 마법 대결신들 역시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것보다 더 규모가 크고 힘있게 묘사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인원수가 많아 자칫 정신 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장면을 역시 카메라의 유영을 통해 롱테이크로 촬영한 점이 돋보였고, 흑과 백의 색채 대비, 물과 불의 이미지 대비를 통해 두 세력 간의 팽팽한 대결을 시각적으로 효과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았다. 또한 해리와 볼드모트 간의 의식을 통한 대결에서는 사실 그렇게 큰 볼거리를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지난 장면들이 스피디하게 스쳐가고 그 속에 현재의 인물들이 불쑥불쑥 끼어드는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하면서 그 불꽃튀는 신경전에 절로 집중하게 한다. 더불어 이 기술이 상대의 생각 또는 기억에 침투하는 만큼 해리가 지나 온 과거의 시간들이 꽤 등장하는데, 1편의 모습까지 등장하는 걸 보니 금세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생각에 괜시리 뿌듯하고 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1편과 2편을 볼 때까지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화판을 보는 이유가 책을 읽으며 머리 속으로 상상했던 것이 어떻게 영상화되었을까를 확인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영화의 제작 방향도 이런 쪽에 가까웠다), 3편부터는 책을 읽으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숨겨진 면, 이야기가 품고 있는 함축적 의미를 다시 찾아내는 재미로 영화를 봤다. 이번 5편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도 마찬가지다. 3편부터 매편 감독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원작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혹은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특정 부분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이 때문에 원작 팬들은 그만큼 원작의 내용들 중 만만치 않은 부분이 잘려 나갈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이번 5편에서도 제법 비중을 차지했던 론의 퀴디치 에피소드를 과감히 삭제해서 벌써 소설 팬들의 원성이 나오고 있긴 하다) 나 역시 원작의 팬이기도 하지만 영화 또한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영화가 영화 나름대로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5편의 차별화도 꽤 마음에 든다.
5편의 주된 주제는 마법 세계를 주름잡는 권력의 생리다. 그것은 호그와트와 마법부, 아이들과 어른들로 대표된다. 미래의 마법사들을 가르치는 신성한 교육의 장인 동시에 교장인 덤블도어의 영향력이 상당했기에 마법부가 웬만해선 접근할 수 없었던 호그와트. 그러나 해리의 입에서 볼드모트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뒤 마법부는 갑작스레 호그와트 내 사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깨진 평화, 이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권력의 전복을 우려해서다. 마법부는 해리의 목숨을 위협하면서까지도 그가 볼드모트에 대해 발설하는 것을 막으려 애쓰고, 호그와트에 엄브릿지를 교수로 "심어" 놓으면서 그 영향력을 더욱 확장시킨다. 엄연히 참혹한 현실이 점점 눈 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도 마법부는 그 현실에 집중하지 않고 끝까지 눈과 귀를 막고 있으며, 그 덕분에 해리와 덤블도어는 음모론자 취급을 받고 호그와트 내에 있는 어린 학생들만 더욱 위태로워진다. 결국 치졸한 권력 다툼이 끼어든 호그와트 내에 이전에 볼 수 있었던 교수님들의 속깊은 교육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마저 위협하려는 규칙들이 등장해 해리로 하여금 숙부 집에 있을 때보다 더욱 고립감을 느끼게 할 만큼 학생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이렇게 영화는 이전 같았으면 여전히 꿈과 환상으로 물들었을 것 같은 호그와트가 답답하기 그지 없는 권력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가는 모습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씁쓸하게 묘사함으로써 어쩌면 현재 학교 혹은 사회에서 보이는 어른들의 치졸한 권위의식,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되어가는 순수한 꿈과 희망에 대해 비판어린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이는 영화 도중에 유난히 신문 기사 클로즈업 장면이 많이 나타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4편에서 별 말같지도 않은 기사들을 양산하기로 유명한 기자 리타 스키터의 등장으로 "예언자 일보"의 "찌라시스러움"을 비판한 바 있는데 이번 5편에서는 볼드모트의 부활 이후를 놓고 호그와트와 마법부가 벌이는 실랑이를 보도하는 모습을 통해 언론으로서 중립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권력에 쉽게 휘둘리는 나약한 언론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해리와 덤블도어의 위치가 위태로워지면서 엄브릿지가 점점 득세하는 과정에서 나열되는 신문 기사들, 결말에 가서 다시 새로운 내용으로 나열되는 신문 기사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이쪽 계열을 공부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느덧 권력을 비판하는 도구가 아닌 권력을 대표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린 현대 언론의 모습을 반영한 듯해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호그와트와 마법부 간의 대립 내에 보다 치열하게 도사리고 있는 갈등 구조가 바로 아이들 대 어른들이다. 3편까지는 그래도 해리가 아무리 홀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어른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4편부터는 그런 어른들의 손길이 점점 드물어지기 시작했고, 5편에서는 더욱 그 정도가 심하다. 물론 초반과 종반에 볼드모트와 맞서 싸우기 위해 조직된 불사조 기사단이 나타나 지원군이 되어 주긴 하지만 해리가 호그와트로 들어와 친구들과 함께 겪는 답답한 심정은 이전까지의 어른들의 도움은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극심해진다. 마법부의 힘을 단단히 업은 엄브릿지의 횡포 앞에 그 든든하던 덤블도어 교수도 마땅히 손을 쓰지 못하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학교 생활의 즐거움을 잃어가는 가운데 마법부는 신이 나서 호그와트를 자꾸 건드린다. 극에 달한 어른들의 권위 앞에 그렇게 생기발랄하던 호그와트의 풍경은 건조하기 그지없는 공간으로 뒤바뀐다. 결국 이러한 사태의 흐름은 아이들로 하여금 어른들에 대한 불신을 유발하고 이제 남은 길은 자신들끼리 힘을 모으는 것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한다. 이제는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위협하며 막으려는 장애물이 되어버린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은 암묵적 반란을 시도한다. 엄브릿지의 권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며 학교 한쪽 벽을 가득 메우는 규칙이 쓰인 액자들, 그리고 프레드 & 조지 위즐리 쌍둥이의 활약을 통해 거침없이 무너지는 이 액자들의 모습이 이러한 아이들과 어른들 간의 "권위"와 "권리"를 놓고 벌이는 갈등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이처럼 영화는 어른들의 권위의식과 그 속에서 그 속에서 펼쳐지는 아이들의 권리찾기를 대비시킴으로써 사회적 메시지와 성장영화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한다.
이렇게 그저 환상적이고 자유로운 마법의 세계만 있을 줄 알았던 호그와트가 점점 현실과 직접적으로 부딪치게 되면서 해리와 친구들은 또 한번 성장통을 겪는다. 그것은 앞서 말했던 고립감에 관한 것이다. 이제 머리도 클 만큼 큰 이 아이들에게 더 이상 지원군은 의미가 없다. 권력이라는 막대한 무기 앞에서 선뜻 용감하게 나서는 어른은 없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속에서 수반되는 정신적 압박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함을 알게 되며, 목숨이 걸린 중요한 순간에도 결국 최악의 상대와 맞서야 하는 건 오직 자기 자신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더구나 4편에 이어 또 한번 누군가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게 되면서(더구나 해리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 그를 서포트해 줄 사람이 또 한명 사라졌다는 것, 그만큼 더욱 다리에 힘을 주고 홀로 버텨야 함을 인식하면서 느끼는 현실에서의 절망감은 더 극심하다. 해리가 발을 딛고 있는 마법의 세계가 온전히 현실과 유리된 곳이 아니라 현실과 맞닿아 있는 곳인 이상, 그가 마주해야 할 현실은 꿈과 환상으로만 가득찬 게 아닌 좌절이 만만치 않게 도사리고 있는 곳임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리가 현실의 냉혹함을 서서히 인식해 가는 과정에는 점점 그 강도가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마법의 면면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중요한 상징성을 갖고 있는 것이 맞는 즉시 숨을 거두는 "아바다 케다브라" 주문이다. 이 주문을 맞는 사람은 흔히 다른 사람들이 죽음을 맞을 때처럼 최후까지 숨을 붙들려 안간힘을 쓰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할 여분의 시간 따위는 주지 않는다. 그저 5초도 안되는 시간에 숨이 멎어버린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죽은 거 맞아?"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갑작스럽고 또 그만큼 극심한 절망을 불러 온다. 이렇게 삶과 죽음을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라놓는 무시무시한 마법의 세계를 전편에 이어 두 차례나 직접 확인하면서, 해리는 이 세계가 결코 동화같은 세계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워 마법을 펼친다는 것은 유치하게 보일지라도 이것은 천국과 지옥을 순식간에 결정할 수 있는 삶의 예측 불가능한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해도 될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다섯 권 분량의 원작을 2시간 20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압축해 놓는 와중에도 이렇게 원작이 품고 있던 혹은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현실적 메시지에 충분히 힘을 주고 있는 듯 했다. 어느 기사에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 마법봉을 휘두르는 게 참 우습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걸 읽고 상당히 기분이 상했다. 판타지는 이렇게 자칫 유치하게 보일 수 있는 환상 속 이미지들에도 은근히 삶의 소름끼치는 단면을 심어놓는 어찌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장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
상당히 많은 기사에서 이 영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전작들에 비해 급어두워졌다고 "지적"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엇때문에 이들이 언제까지나 밝은 분위기로만 나아가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 해리와 친구들은 몇십년이 지나도 자라지 않을 짱구나 포켓몬 친구들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사고방식이 결정지어지는 10대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면서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즐기던 아이에서 차가운 현실을 깨닫고 거기에 맞설 준비를 하는 어른이 되어 간다. 4편에서부터 각 시리즈가 더 이상 해피엔딩이 아닌 것도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크게 부담을 가지실 필요 또한 없다. 책이 품고 있는 특유의 넉넉한 유머 감각 또한 여전히 곳곳에서 터뜨려주고 계시고, 해그리드의 동생의 등장, 켄타우로스, 세스트랄 등 신비로운 판타지 속 존재들도 여전히 상상력을 키워주기에 충분하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영화는 가족영화는 될 수 있어도 아동영화는 아니라는 것, 꿈과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갈수록 칙칙한 현실과 가까워지는, 하지만 그 속에서 여전히 꿈틀거리며 일어서려는 젊음이 지닌 의지에 주목하는 판타지 영화라는 것이다. 지금 이 정도 갖고 너무 우울하다고 불평하진 마시라. 이들의 모험담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점점 더 절망적으로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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