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최고의 공포는 역시나 [전설의 고향]이었습니다. ‘내 다 리 내놔’와 ‘구미호’ 에피소드는 단연 최고봉이었죠. 보고나서 방으 로 돌아와 불을 끄고 가만히 누워있다면 정말 왠지 모를 섬뜩함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습니다. 창밖에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시계가 돌아가는 소리마저도 신경을 바짝바짝 조이는 거 같았죠. 지금 생 각해보면 텔레비전의 귀신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무 서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니까 그때 기억이 떠오르더라구요. ^----^*
어느 사회든 에너지는 항상 제일 큰 문제거리인가 봅니다. 괴물사 회도 그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죠. 괴물세상의 가장 큰 동력원 은 꼬마 인간들의 비명소리고 몬스터 주식회사는 그런 비명을 모으 는 걸로 전통과 규모를 자랑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거 원 세 상이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니 비명을 모으는 게 예전만큼 쉽지 않 고.... 게다가 인간과 접촉했다가는 맹독성으로 위험해질 수 있는 위험부담까지 안고 일을 해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죠. 하지만, 어 떤 회사나 그렇듯 어떤 고난과 위험 속에서도 영업 성적 최상위를 달리는 괴물 콤비가 있었으니 바로 설리반과 마이크입니다. 날마다 기록 갱신의 역사를 쓰고 있는 환상의 콤비에겐 2등인 랜달의 시 기질투야 가벼운 농담거리죠. 적어도 부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전에 문화론 수업 때 여러 가지 중에 하나가 바로 금기였죠. 금기 라는 게 흡사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사회와 개 인의 안전을 위한 매우 오묘한 뜻이 숨어져 있거든요. 인간과 접촉 하면 맹독 때문에 위험하다는 괴물사회의 금지사항은 이런 맥락 속 에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만약 인간과 친근해지면 당장의 에너지원 의 고갈은 둘째치고 그들의 사회 자체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으니 까요. 사실 인간이란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정한 요소인지 역사를 통해 우리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죠. 아이들의 공포로 유지되 던 사회에서 공포가 사라지만 뭐가 남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입니다. 물론 알아볼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까지의 안정을 버리고 새로운 위험에 도전할 사회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설리와 부의 우 연한(?) 만남같은 계기가 없었다면 아마도 영원히 두려워하고 도외 시하며 잊으려 했을 뿐이겠죠.
동화속 주인공이 아니라 괴물로 이야기를 보여준다? 뭐 벌써 드림 웍스의 [슈렉]이 단물 쓴물 다 빨아먹은 뒤인데 뭐가 다를까 했습 니다. 하지만 몬스터 주식회사의 환상의 콤비가 나타나자 그런 생 각은 잠시 접게 되더군요. 괴담 속 시베리아 눈괴물에게 염색시켜 놓은 듯한 설리나 우리나라 몽달귀신처럼 보이는 마이크 등등 온갖 다양한 괴물이 등장하자 그 상상력과 기술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 더군요. 특히나 눈바람에 흩날리던 설리의 털은 만져보고 싶어질 정도였죠. [슈렉]이 세상 무서운 걸 알게 된 어른을 위한 흥겨운 놀이판이었다면 [몬스터 주식회사]는 그래도 환상을 믿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였습니다. 물론 이런 기술력으로 씌워진 캐릭터들을 살 아있는 괴물로 만들어준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대단했습니다. 왠지 저희 집엔 벽장이 없는 게 무척이나 애통해지더라구요. ^^;;
[몬스터 주식회사]에 대해 그동안 부진했던 디즈니의 와신상담이라 고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몬스터 주식회사]는 그냥 픽사에서 내놓은 또 하나의 멋진 작품일 뿐입니다. 그것도 나날이 놀라워지 는 기술력을 지닌 픽사의 작품이죠. 전에 스탠드 가지고 온갖 재주 를 보여주었던 픽사는 이번에도 잊지 않고 새를 훌륭하게 조리해서 맛깔스러운 전채요리부터 대접을 해주더군요. 이거 안 보시고 늦게 가셔서 [몬스터 주식회사]만 보신다면 영화표값 본전뽑기는 애초에 텃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v